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가, 젊은 날의 선택] 수행자의 길 걷는 자등 스님

  • 새해특집
  • 입력 2021.01.05 11:01
  • 수정 2021.01.05 16:22
  • 호수 1568
  • 댓글 6

“열심히 정진해 많은 이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죠”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포교당 다니면서 불교와 깊은 인연
대학 시절 수행에 심취…각묵 스님 은사로 27살 때 출가
승가대학 대신 기본선원 선택…안거 때마다 선원서 정진

사미계를 받고 지금까지 오후불식하며 수행자의 길을 걷는 자등 스님은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사진=신용훈 기자
사미계를 받고 지금까지 오후불식하며 수행자의 길을 걷는 자등 스님은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사진=신용훈 기자

“스님, 부디 열심히 수행해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스승이 되어주세요.”

산문에 든 지 꼭 6개월 만이었다. 삭발한 머리에 승복을 입은 아들이 낯설 만도 했지만 어머니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제 막 사미계를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간절함을 담아 또박또박 말을 건네고 있었다. 출가자로 살아가는 동안 어찌 그 당부를 잊을 수 있을까.

2015년 8월30일 출가하던 날, 남원 실상사까지 함께 가겠다며 먼 길을 따라나섰던 어머니. 남들처럼 취업하고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평범한 삶은 이제 기대할 수 없었다. 일평생 진리의 길을 걸으며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는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겠다고 다짐한 아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절에 두고 발걸음을 돌리는 어머니 마음은 어땠을까. 자등 스님은 어머니의 당부를 돌을 쪼아 글을 새기듯 가슴 깊이 새겨 넣었다.

세상의 자식들에게 그렇듯 자등 스님에게 어머니는 각별했다. 불교와 인연도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 인천 부평에서 성장한 스님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머니를 따라 포교당에 다녔다. 포교당이 뭐하는 곳인지 어머니가 왜 그곳에 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가 좋았고 편안했다. 중·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 활동이나 절에 다니지 않았지만 스스로 불교신자라고 여겼다. 늘 기도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불교에 대한 신뢰도 무한히 깊어졌다.

대학에 입학한 뒤 스님은 나란 어떤 존재이며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쌓여갔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와 맞물리면서 그를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그 무렵 필연처럼 다가온 게 수행이었다. 미얀마 스님이 지도하는 선원에 다니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불교는 세상 어떤 이론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이었으며, 번뇌를 여읜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일러주고 있었다.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결과가 분명하다는 것도 불교의 매력이었다. 초월적인 존재나 우연의 일치, 혹은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한다면 인생이 억울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불교는 달랐다. 자신의 행위에 따라 지옥과 천상이 주어지고,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위없는 진리를 깨친 부처님도 될 수 있었다.

스님은 메마른 대지가 단비를 빨아들이듯 수행에 심취했다. 스스로를 제어하고 다스리는 힘이 생기고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직접 체험해본 수행의 세계는 미묘하고 심오했다. 일생에 걸쳐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다. 어머니가 오랜 세월 수행하며 깊은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것도 영향을 주었다.

처음 그는 세간에 머물며 공부와 수행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출가해 마음껏 정진해보고 싶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러했듯 모든 번뇌를 여의고 지혜와 자비를 갖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도 싶었다. 출가를 결심한 날 곧바로 어머니에게 그 뜻을 알렸다. 적극 지지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의외로 신중했다. 행여 아들이 가볍게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얼마 후 아들의 뜻이 확고함을 안 어머니는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었다. 출가 전에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뒤늦게 아들의 출가 결심을 전해들은 아버지도 침묵으로 승낙했고, 동생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한다고 했다.

그는 인연 있는 작은 암자로 향했다. 스님과 둘이 지내며 절 생활을 자연스레 익히고 스스로 출가의 결심을 가늠해보았다. 두 달이 지나 암자에서 내려온 그는 가장 중요한, 어느 분을 은사로 출가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마음의 스승이 있었다.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이었다. 방송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는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에 두루 밝을 뿐 아니라 수행에도 조예가 매우 깊었다. 무엇보다 법을 향한 열정과 진중함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각묵 스님은 상좌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님의 책을 읽고 강의하는 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스님과 얘기할 기회도 생겼다. 출가 상담까지 받았지만 정작 스님에게 출가하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 서울 불광사에서 스님 강의가 개설됐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그곳에 갔다. 강의 마지막 날이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부딪혀보자는 각오로 어머니까지 모시고 가서 출가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난감해하던 스님은 남원 실상사로 내려와 얘기하자고 했다. 며칠 뒤 실상사에서 각묵 스님과 마주앉은 그는 다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스님은 번역에 집중하다보니 집도 절도 없고 상좌를 둘만한 여력도 없다고 했다. 스님이 손사래 칠수록 더 절박해졌다. 스님 지도로 공부와 수행만 할 수 있으면 된다며 물러나지 않았다. 한사코 거절하던 스님도 스물일곱 젊은이의 간절함과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상좌 하나에 지옥이 하나라던데….” 스님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출가를 하면 은사든 누구든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를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아 진리의 길을 가라”고 일렀다. 법명도 스스로[自]를 등불[燈] 삼으라는 의미로 ‘자등’이라 지어주었다.

자등 스님은 실상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출가 전과는 크게 다른 삶이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스님들이 정겹게 대해주었지만 출가자도 재가자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서 오는 외로움이 적지 않았다. 반면 매일매일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고 새로운 사실도 하나둘 알아나갔다. 절이라고 하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떠올렸고 스님들은 외부와 단절한 채 조용하니 무채색으로 지낼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개성이 분명한 다채로운 이들이 어우러진 공간이었고, 외부와의 교류도 의외로 활발했다. 고요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쳐나는 곳이 절이었다. 고되지만 뜻깊은 6개월의 행자기간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았다. 행자복 대신 승복으로 바꿔 입은 모습은 자신에게도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에게도 생소했다.

2016년 봄, 스님은 강원도 백담사 선원으로 향했다. 사미·사미니가 이수해야할 기본교육 과정으로 승가대학 대신 기본선원을 택한 것이다. 애초 수행에 뜻을 둔 데다가 출가 후 10년간 선원에 다녔던 은사스님의 “마흔 살까지는 꼭 선원에서 수행에 매진하라”는 당부를 허투루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스님은 백담사 기본선원에 들어가면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마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옛 수행자들이 그랬듯 오후에는 일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몸무게는 많이 줄었으나 의식은 명료해졌다. 인욕하는 힘이 강해지고 스스로 다스리는 능력도 좋아졌다. 마음이 유연해지면서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좀 더 느긋이 받아들이게 된 것도 출가와 수행이 가져온 변화였다.

세간의 인간관계가 그렇듯 유독 개성이 강한 수행자들 속에서 서로 모난 부분을 탁마해가는 과정은 힘겹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살아온 궤적과 나이는 달라도 서로 의지하고 힘이 돼주는 도반들과 정진하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은 출가했기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점이었다.

스님은 정진하는 일이 버겁고 지칠 때, 마음이 약해지고 나태해질 때면 항상 되뇌는 구절이 있다. 부처님이 반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셨다는 말씀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백담사 기본선원에서 4년간 이론과 실참교육을 마친 스님은 이제 명실상부한 수행자다. 이번 동안거는 곡성 동리산 태안사 원각선원에 방부를 들여 긴 겨울 가부좌를 튼 채 내면의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말하는 스님은 출가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출가의 삶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공부에 장애도 생기기 나름입니다. 그렇지만 출가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집니다. 그 공부는 나만 이로운 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이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출가하는 인연은 부처님도 수많은 생애에서 몇 번 안 될 만큼 귀한 인연입니다. 출가해서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일생의 기회를 부디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