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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젊은 날의 선택] 동국대 불교학부 학인 자운 스님

  • 새해특집
  • 입력 2021.01.05 11:09
  • 수정 2021.01.05 16:22
  • 호수 1568
  • 댓글 0

“출가자에 대한 환상이 깨졌을 때 더 많은 길이 열렸어요”

“남을 돕는 사람 되고 싶다” 막연한 이상만 품고 스무 살에 출가
수행자·포교사·봉사자·사회인이기도 한 ‘스님의 삶’ 비로소 보여
“불교의 행복은 내가 찾는 길…고민·도전은 젊은 출가자의 특권”

스무살이던 2015년 출가한 자운 스님은 “출가 해야만 찾을 수 있는 불교 안의 행복이 있다”며 “요즘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을 볼 때마다 출가하라는 말이 자꾸 나온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스무살이던 2015년 출가한 자운 스님은 “출가 해야만 찾을 수 있는 불교 안의 행복이 있다”며 “요즘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을 볼 때마다 출가하라는 말이 자꾸 나온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저의 장래 희망은 ‘큰스님’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민수의 대답에 교실이 술렁거렸다. 선생님은 민수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수에게 ‘큰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른스님들 대화 속 오가는 ‘큰스님’이라는 표현을 들으며 훌륭한 누군가를 말하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민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함께 학교를 다니는 언니들이 있었고 아침마다 ‘오늘은 머리를 어떻게 묶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저 다른 점이 있다면 주지스님을 어머니라, 노스님을 할머니라 여겼고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절에 놀러 오면 스님들이 간식을 챙겨주는 정도였다. 기억나는 가장 어린시절부터 대구 화성사는 민수의 집이었다. 노스님이 가끔씩 “너는 커서 꼭 큰스님 되라” 당부하시곤 했지만, 새벽예불 모시라고 깨우지도 않았고 출가하라고 등 떠미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고3이 되고 친구들을 보면서 좀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 보다는 대학을 가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것 같았어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죠.”

하지만 학교는 그런 고민을 함께하기에 너무 숨 가쁘게 입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잰걸음에 휩쓸려 확신도, 소신도 없이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해 시줏돈을 쓸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오롯이 스스로의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꼬꼬마 어린시절부터 주지 종묵 스님은 어디든 어린 민수를 데리고 다녔다. 절에 가는 것도 좋았지만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봉사활동에 열심인 스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출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주지스님이나 먼저 출가한 형님들처럼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함께 자란 ‘언니들’ 중 누군가는 출가를 했고 또 누군가는 평범한 사회인이 되기도 했다. 그 중 한 스님이 민수의 고민을 들어줬다.

“불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있어. 출가해야만 만날 수 있는 행복이지. 네가 출가하게 된다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도 만날 거야. 이 길이 좋지 않다면 권하겠니?”

출가를 권했다. ‘불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 그 한 구절에 마음이 흔들렸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은 2015년 2월, 삭발했다. 어머니라 여겼던 종묵 스님은 은사가 되었고 ‘언니’들은 ‘사형’이 되었다. 민수는 그렇게 자운 스님이 되었다.

동화사 양진암에서 행자생활이 시작됐다. 절에서 자랐으니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행자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동자승 경험이 있어 삭발한 머리는 그리 어색할게 없었다. 하지만 오렌지빛 행자복은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문 밖으로 외출할 일이 없는 행자지만 사미니계 수계 전 건강검진을 위해 딱 한 번 대구 시내로 나갔다. 때마침 절에 49재가 있어 동행해줄 사람도 없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 동안 낯선 행자복을 입고 삭발한 앳된 얼굴에 버스 안 승객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비로소 출가자가 됐구나를 실감했죠. 왠지 부끄럽다고 느꼈던 건 그때까지만 해도 출가에 대한 스스로의 당당함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낯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불문’부터 ‘반야심경’까지 절에서 접하는 모든 경전과 의식문도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귀로는 수없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도 배운 적 없는 한문들이 줄줄이 펼쳐지니 까막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 은사스님께서 날 너무 곱게 키우셨구나 싶었죠. 막상 출가하니 은사스님도, 형님들도 더 엄격해지셨구요. 처음엔 서운했죠.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렇게 다잡아주신 덕에 무탈하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사미니계를 받고 운문사승가대학에 다니며 그 어색함,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던 부끄러움도 사라졌어요.”

출가 전 막연히 그리던 ‘스님’은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님이 되고 싶었다. ‘불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도 그 속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승가의 일원이 되고 나니 ‘스님의 삶’이 보다 선명히 보였다. 스님은 수행자이자 봉사자였고 포교사였다. 출가자인 동시에 사회 깊숙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일원이었다. 스스로 기도하고 수행 정진하는 가운데 누군가를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도 했다. 혹은 사회인들보다 더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형들만 봐도 그랬다.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도 있지만 유치원장, 방송진행자도 있었다. 출가자의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역동적이었다. 그 가운데서 ‘나의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껏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여고시절보다 더 깊은 고민이었다. 답을 찾을 사이도 없이 승가대학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 후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도 뚜렷하지 않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법륜 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스스로를 먼저 채우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내 안을 충만히 채웠을 때 그것을 회향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조언도 주셨어요. 부모없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고, 자식없는 이들의 자식이 되고, 도움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동국대 진학을 결심했다. 수행은 지혜를 증장시켜가는 과정이니 비록 지혜는 부족할지라도 우선 불교에 대해 좀 더 배운다면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운문사승가대학 재학 시절 사찰 안내를 하며 불교와 불교문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절감한 것도 계기가 되었다.

대학생활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이자 더 많은 세상의 편견과 맞닥뜨리는 과정이었다. “스님이 왜 핸드폰 쓰세요”라는 질문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난 이상적인 잣대를 갖고 은근히 스님들을 비판하는 시선을 만날 때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물론 모두는 아니겠죠. 불교나 스님, 수행이나 출가에 대해 세속을 벗어난, 이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런 막연한 편견이 불교를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종교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스님들을 재단하는 부작용도 낳는 것 같습니다. 스님이 이어폰 쓰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그런 편견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과감히 도전해 볼 생각이다. 자운 스님 스스로도 세속을 떠나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출가일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그 편견을 깨고 비로소 더 많은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출가는 더욱 큰 기쁨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볼 시간이다. 젊은 날의 출가자에게는 시간을 조금 더 넉넉히 누릴 수 있는 혜택과 특권이 있지 않을까.

자운 스님은 이제 많은 선배스님들이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안다. ‘불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 또한 그 과정에서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누군가 출가를 고민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출가는 결코 무릉도원에 도인처럼 앉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출가해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고요. 이상만 갖고 출가한다면 ‘왕창’ 깨지는 과정도 겪겠죠. 하지만 그 다음엔 막연한 이상을 좇기보다는 하루하루 내 안을 채우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잘하는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출가는 선방에 앉아있는 것만이 아니에요. 물론 수행을 원한다면 그 길도 열려있어요. 부처님 가르침을 지침 삼고 대중을 스승 삼아 나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 출가라고 생각합니다.”

자운 스님은 이제 불교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행복의 길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개척해가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가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다. 그 속으로 더욱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길, 자운 스님의 첫걸음은 이제 시작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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