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난 불교문화재 발견에서 회수까지
1. 도난 불교문화재 발견에서 회수까지
  • ​​​​​​​이숙희
  • 승인 2021.01.11 16:14
  • 호수 15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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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불교문화재 109점, 어떤 연유로 떠돌이 됐을까?

문화재청·조계종·경찰청 공조수사로 문화재 회수율 ‘3배 증가’
박물관장 개인수장고부터 논바닥 묻는 방법까지 도난수법 다양
문화재 절도범들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문화재 세탁과정’ 거쳐
사진1)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689년, 높이 51cm.

2010년대는 잃어버린 불교문화재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어느때보다 활발했다. 문화재청과 대한불교조계종,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정보를 공유하며 공조수사를 해 도난불교문화재를 되찾았다. 게다가 사찰이나 문중 등에 설치된 CCTV와 국공립 박물관, 문화재 매매업체를 대상으로 도난 문화재 확인 안내문을 발송하는 등 문화재청의 지속적인 노력도 있었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조사한 5년 간의 통계를 보면 불교문화재는 45건 3186점 도난됐고 이 가운데 14건 1832점을 되찾아 회수율은 57.5%에 이른다. 약 17%에 불과했던 1985년부터 2014년까지의 회수율에 비하면 세 배나 증가한 수치다. 성과가 꽤 좋은 편이다.

최근 도난 불교문화재가 버젓이 경매시장에 나오면서 도난된 지 20여년만에 그 실체가 세상에 확인됐다. 2014년 6월2일 서울 관훈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아트 옥션 경매에서 도난문화재가 발견돼, 이를 시작으로 모두 31건 48점을 되찾았다. 서울 한 사립박물관장이 개인 수장고에 보관해온 것으로 유례없는 최대 규모의 도난문화재를 회수했다. 시·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충북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상<사진1>과 경북 청도 용천사 영산회상도, 청송 대전사 신중도, 강원 삼척 영은사 영산회상도 등 도난문화재 4점이 처음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사립박물관의 현장조사가 본격 이뤄지며 공개되지 않았던 도난 불교문화재들이 상당수 발견됐다. 이중에는 전주 서고사 나한상 4구와 복장물을 비롯해 고성 옥천사 나한상 2구와 청도 대비사 영산회상도, 예천 보문사 아미타불도 및 삼장보살도, 경주 금정사 지장시왕도, 순천 송광사 지장시왕도 등 보물급 문화재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후 경찰수사로 도난 문화재가 경매에 나오게 된 경위와 장물 유통과정 등이 일부 드러났고, 문화재 절취 후 손상, 은닉, 매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2016년에는 도난 문화재였던 완주 위봉사 관음보살입상 및 지장보살입상, 해남 대둔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순천 선암사 영산회상도, 안동 용담사 감로도 등 18건 29점이, 2020년에는 구례 천은사 나한상 및 제석천상, 해남 미황사 목조동자상, 강진 백련사 삼장보살도<사진2> 등 17건 32점이 추가로 회수됐다. 

사진2) 강진 백련사 삼장보살도, 1773년, 156×312.2cm.

2010년대 되찾은 불교문화재는 109점에 이른다. 이들은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 연쇄적으로 도난당한 것이다. 복장물이나 화기(畵記: 봉안처·제작시기·불화승 등을 적은 기록)로 봤을 때 대부분 조선후기의 불상과 불화였으며, 불화의 경우 화기가 잘려 나갔거나 개채돼 훼손됐다 하더라도 화면 구성이나 특징, 기법에서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가 될만한 작품들이 여럿이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1988년부터 2004년 사이 도난돼 오랫동안 은닉돼 온 109점의 불상·불화. 그 당시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또 어떤 연유로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됐던 것일까? 어떻게 개인 소장가의 손으로 들어가 대중에게 잊혀진 채 20여년이 흐른 후에야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 

도난 문화재는 도난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도난 시기나 과정, 범인이 누군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962년 1월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됐다. 이에 1980년대엔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각종 도난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특히 불상, 복장물, 불화 등 불교문화재가 집중적으로 도난됐다. 불화의 경우 불상이나 석탑, 석등과 같은 유물에 비해 무게가 가볍고 부피가 적기에 크기가 작은 불화에서부터 규모가 큰 후불탱화까지 쉽게 훔쳐갈 수 있었다. 

특히 1990년대에는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이야기가 떠돌며 불교문화재 도난과 불법거래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 시기에는 사찰이 한적하고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보안 장치가 전혀 없어 능묘 앞을 지키고 있던 문인석·무인석·석호·석양·동자석 등 석물도 도난의 대상이 됐다.

신문기사를 통해 도난 문화재의 피해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일보’ 2005년 4월1일자 기사에 따르면 경찰에 잡힌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은 2004~2005년 크레인이 장착된 2.5톤 트럭을 몰고다니며 전국 향교·서원·사찰에서 문화재급 불상·불화·사천왕상·현판·고문서 등 값이 나갈만한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이들이 훔친 문화재들은 대략 2300여점, 시가로는 80억원에 해당한다. 도난 문화재 가운데 최대 규모의 일대 사건이었다. 이렇게 훔친 문화재는 장물 알선책인 고미술상 창고에 보관했으며, 사천왕상처럼 부피가 큰 물건은 대구 근교의 논바닥에 묻어뒀다.

문화재 절도범들은 주로 행동대원, 장물아비, 유통업자로 구성된 점조직 단위로 활동했다. 문화재 거래도 아주 은밀하게 이뤄졌다. 전국 향교·서원·사찰 정보를 수집한 후, 행동대원이 목표 대상물을 훔치면 장물아비가 개인 수집가나 골동상에게 팔아넘기고 남은 물건은 전국 골동상에서 유통되면서 ‘문화재 세탁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처럼 도난 문화재가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출처가 모호해지기에 설령 찾는다고 하더라도 되돌려 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2007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돼, 도난문화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구매한 경우라도 선의의 취득을 인정하지 않게 됐다. 매매 행위가 일어나면 언제든지 처벌을 받아야 하며 원 소유주는 문화재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연재는 지난해에 이어 2010년대에 되찾은 불상·불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잊혀버렸던 도난 불교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면서 도난 문화재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리들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잊지 않고 알고 있다면 언젠간 모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69호 / 2021년 1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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