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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사랑 ⑤

기자명 박희택

갈애를 깊게 통찰하면 해탈로 승화

사랑은 탐욕에 의한 번뇌심
순응하지 않으면 원망 생겨
미움과 사랑만 털어버리면
매임 없는 해탈문에 들게 돼

사랑을 인(仁)과 애(愛)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듯이, 붓다는 자애(慈愛)와 갈애(渴愛)로 변별하여 설하였다. 법정 스님이 ‘불교의 명언들’이라는 부제로 1982년 ‘샘터사’에서 출간한 ‘말과 침묵’에는 갈애를 대하는 법이 이렇게 안내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 그러므로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 사랑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을 넘어선 사람에게는 근심이 없거니, 또 어디에 두려움이 있으랴.”

스님은 동반자의 장에서 ‘법구경’을 원출처로 하여 붓다의 진실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데, 곧 ‘법구경’ 호희품(好喜品) 제2~4장의 말씀이다. 팔고 중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가 있거니와, 갈애에 빠지는 것은 증오(憎惡)에 젖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삶에 마장이 된다. 그렇기에 제3조 승찬대사도 ‘신심명’ 들머리에서 “다만 미워하고 사랑함만 떨치면 통연히 명백하다(但莫憎愛 洞然明白)”고 하였던 것이다.

‘원각경’ 정제업장보살장은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명을 키우기에 도를 계속하여 구하여도 모두 성취할 수 없다(爲憎愛心 養無明故 相續求道 皆不成就)”고, “만약 구하는 곳에서 따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낸다면 청정한 원각의 바다에 들어갈 수 없다(若於所求 別生憎愛 則不能入淸淨覺海)”고 설하고 있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증애심이 무명을 키운다는 말씀은 정적 번뇌인 증애가 지적 번뇌인 무명으로 연결됨을 말해 준다. 왜 그런고 하면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내가 좇아서 순응하나, 나를 좇아서 순응하지 않는 이에게는 내가 미워하여 원망하기 때문이다(有愛我者 我與隨順 非隨順者 便生憎怨, 원각경 정제업장보살장).” 우리는 거심동념(擧心動念)하는 존재이기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냄으로써 맹목적으로 수순(隨順)하고 증원(憎怨)하는 생각에 휘둘리게 되니, 이것이 곧 무명을 키우는 것이다.

증오를 비워내야 스스로 얽매이지 않게 되듯이, 갈애를 넘어서야 비로소 해탈문에 들게 된다. 해탈의 당체는 자리적으로는 자수법락(自受法樂)을 향유하는 한편, 이타적으로는 이 법락을 대중들로 하여금 향유하게 한다. 이타적 타수용(他受用)을 자애라 부른다.

앞서 음미한 ‘대지도론’ 제72권 대여품의 논석 가운데 “사랑한다는 것은 탐욕에 의한 번뇌심이니 응당 행하지 말고 마땅히 자애심을 행하여야 한다”는 말씀을 통하여서도 자애는 갈애의 승화(긍정적 전환)임을 확인하게 된다. 경전에 따라서는 자애를 법애(法愛), 갈애를 욕애(欲愛)라 칭하기도 한다. 수행자는 욕애에 머물지 않고 법애의 삶을 살아간다.

12연기의 제8지(支)인 애(愛)가 곧 갈애이다. 갈애는 수(受, 느낌)를 조건으로 일어난다. 느낌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등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또한 이 세 가지 느낌에는 각기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느낌을 증대시키려는 잠재성향(anusaya, underlying tendency)이 내재되어 있다. 일묵 스님이 공력을 들인 ‘사성제’(2020)에는 이에 관한 붓다의 말씀이 소개되어 있다.

“도반 위사카여,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貪]의 잠재성향이 내재해 있고, 괴로운 느낌에는 분노[嗔]의 잠재성향이 내재해 있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무명[癡]의 잠재성향이 내재해 있습니다(맛지마니까야44).”

세 가지 느낌과 각 느낌의 잠재성향이 모두 자애의 발현을 가로막는다. 다만 세 가지 느낌의 잠재성향이 항상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니며, 내재해 있다고 하더라도 수행자가 탐욕과 분노와 무명의 탐진치를 지혜롭게 통찰한다면 잠재성향이 소멸하면서 그 느낌이 갈애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갈애가 자애와 해탈로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승화함을 뜻한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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