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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제56칙 조계의지(曹溪意旨)

차가운 허공에는 분별 따로 없고 주객 선택도 없다

조계의지의 뜻은 선종의 종지
선문답에서 꽤 일반적인 질문 
여러 문답으로 후대까지 전승 
질문 답 같아도 의미 다 달라

승이 앙산탑용에게 물었다. 조계의 의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앙산이 말했다. 하나의 쇠사슬을 끌고 차가운 허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원주(袁州)의 앙산은 앙산의 남탑광용(南塔光湧, 850~938)인데 흔히 광용이라고 부른다. 오대(五代) 때 강서성 풍성(豐城) 출신으로 속성은 장(章)씨이다. 후에 앙산혜적에게서 심인을 얻었고, 앙산이 입적한 이후에 광용은 손가락을 연비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였으며, 앙산의 남탑에서 주석하면서 종풍을 발양하였다.

조계의 의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선문답에서 예로부터 가장 일반적인 질문이었다. 그것은 조계혜능(曹溪慧能, 638~713)의 의지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조계의 의지란 선종의 종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선종의 정통성을 보증해주는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일찍부터 많은 문답으로 전승해 내려왔다. 조계의 직계 제자에 속하는 청원행사(靑原行思 ?~740)와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의 문답에도 등장한다. 거기에서 행사는 신회 그대 자신의 안목을 가지고는 행사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진금을 조금도 나누어 받을 수가 없다고 평가한다.

그와 달리 본 문답은 이후 이백여 년이 지난 후에 한 승과 남탑광용 사이에서 동일한 문답으로 제기된 것이다. 질문은 동일할지라도 그에 대한 언설의 답변은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선문답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고 특징이며 풍모이다. 설령 언설의 답변까지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그 답변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제각각 천차만별로서 결코 정해진 것이 없다.

본 문답에서 제시된 조계의 의지란 위에서 언급한 신회와 행사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곧 조계가 전승한 교외별전의 종지가 무엇인가를 물은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광용은 조계의 의지는 바로 하나의 쇠사슬을 끌고 차가운 허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답변한다. 조계가 보여준 교외별전의 종지는 선종의 근본적인 이념으로서 언설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분별사식의 사유로는 접근할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교외별전은 어디까지나 달마가 전승해준 정법안장으로부터 결코 벗어나 있지도 않고 오히려 항상 정법안장을 현창해주고 있건만 그것을 자각하는 것은 용이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승은 자신이 그 동안 경험하고 자각한 깜냥으로 들이밀어 그것이 정작 조계의 의지와 부합되는가 아닌가를 헤아려보려고 질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승의 입장에 대하여 광용은 참으로 단출하게 답변을 제시해주고 있다. 하나의 사슬과 차가운 허공이 바로 그것이다. 광용이 말한 하나의 쇠사슬이란 달마의 정법안장과 결부된 가르침으로서 세존으로부터 가섭을 거쳐 달마와 조계 및 광용 자신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단절된 적이 없음을 상징하는 비유이다. 정법안장은 사람을 말미암아 발생하고 소멸되는 것인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말미암지 않으면 결코 전승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고 만다. 따라서 정법안장을 수용하고 전승하며 활용할 줄 아는 안목의 소유자가 되지 않으면 정법안장은 존립할 수가 없고 더욱이 가치도 없어지고 만다.

그와 같은 안목의 소유자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출현하지 않으면 불법은 단절되고 말기 때문에 불교에서 모든 출가자의 본분이란 바로 불조의 혜명을 계승하여 이 땅에 영속하도록 주지(住持)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광용이 제시한 답변은 바로 안목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엿볼 수가 없는 까닭에 분별과 집착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차가운 허공 바로 그 가운데 직접 들어가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차가운 허공에게는 분별이 따로 없고 주객의 선택이 없다. 광용의 답변을 들은 승에게 과연 조계의 의지가 얼마나 적확하게 부각되었을까.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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