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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소(버펄로)

사나운 마음 인욕으로 이긴 물소 왕

사납게 날뛰는 본성 가진 물소
진정되면 자연스레 주인 찾아
마음 다스리기는 통제가 아닌
바라보는 긍정의 지혜 가르침

인도에서 소는 가장 신성하고 유용한 동물이다. 힌두교 대표신 쉬바는 흰 소를 타고 다니고, 목동의 신 크리슈나는 모든 소를 보호한다. 종교적 이유로 힌두교도들은 소를 살해하거나 먹지 않지만 모든 소가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버펄로(Buffalo)라고 불리는 큰 뿔의 검은 물소(Bubalus bubalis)는 식용고기로 사용되거나 수출된다. 인도나 네팔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값싼 스테이크가 바로 물소 고기다. 초식동물인 소는 성품이 순하여 길들이기 쉬운 동물이지만 물소는 야생성이 강하고 성미가 사나운 맹수로 꼽힌다. 인도신화에서 신들이 보호한 신성한 소가 암소라면 지옥신 야마가 타고 다니는 부정한 소가 물소다. 물소는 두르가 여신이 쳐부수는 악신 아수라로도 악명 높다. 해마다 열리는 두르가 푸자 축제기간에 힌두교도들은 두르가가 아수라를 참수하는 신화적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물소의 머리를 잘라 전시하기도 한다.

부처님 전생이야기에도 물소가 등장한다. ‘마히샤 자타카(Mahisa-Jātaka)’에 나오는 물소(Mahisa)의 왕이 바로 부처님이다. 물소왕은 본성이 사나운 다른 물소들과 달리 언제나 온화하고 인내하며 선한 행위를 하여 모든 이가 그를 따랐다. 하지만 이를 시기질투한 사악한 원숭이 한 마리가 물소왕의 등에 올라타 배설물을 묻히고, 풀을 먹지 못하게 뿔과 꼬리를 잡아 괴롭혔다. 하지만 물소왕은 묵묵히 인욕하며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숲에 사는 나무 정령은 원숭이의 악행과 무례함에 벌을 주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물소왕은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벌을 주지 않아도 과보를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답한다. 어느 날 자비로운 물소왕이 떠난 자리에 다른 물소가 머물게 된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원숭이는 이 물소에게 무례한 행위를 똑같이 거듭한다. 화가 난 물소는 원숭이를 땅에 떨어뜨려 뿔을 심장에 꽂고 발굽으로 눌러 죽인다. 부처님의 전생인 물소의 왕은 물소의 사나운 본성을 인욕(忍辱)의 수행으로 이겨낸 보살의 삶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명상가이자 호주의 불교승려인 아잔 브람(Ajahn Brahm)의 저서 ‘사라짐의 기법(The Art of Disappearing)’은 ‘성난 물소 놓아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되었다. 불교에서 마음의 산란함을 도거(掉擧, uddhacca)라고 한다. 도거라는 들뜨고 불안정한 마음을 우리는 보통 억제하고, 멈추고, 통제하려고 한다. 아잔 브람은 도거를 ‘물소 마음’이라고 부른다. 한 사내가 물소를 몰고 풀을 먹이러 가던 중 갑자기 물소가 날뛰기 시작한다. 그는 물소를 진정시키기 위해 밧줄을 움켜쥐지만 오히려 밧줄에 걸려 있던 손가락 절반이 잘리고 만다. 어리석은 마음은 억누를수록 더 성나서 춤을 추게 된다. 성난 물소의 마음은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한다. 즉, 도거를 통제하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기법이 바로 ‘성난 물소 놓아주기’이다. 줄을 잡아채는 것은 물소 마음에 강요와 탐닉이라는 먹이를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물소 마음이 사납게 날뛸 때 그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마음은 내 것이 아니고, 문제가 아니며, 업연(業緣)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너그럽고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정사유(正思惟)를 떠올리라고 말한다.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물소를 가축화시키는데 성공하여 대부분의 농부들이 물소를 기른다. 물소는 갑자기 성나서 날뛰지만 이내 마음이 진정되면 자연스럽게 주인을 찾는다고 한다. 아잔 브람은 물소 에피소드를 통해 도거를 쉽게 설명해 준다. 물소는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순간 스피드가 코끼리나 코뿔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지옥에서 온 악마’, 혹은 ‘미친 소’라고 불린다. 우리 안의 물소 마음은 이처럼 야만스럽고 난폭하며 급작스럽다. 물소는 우리 마음이 사납게 날뛰는 본성을 나타내며, 그 마음 다스리기는 억누르거나 통제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놓아주고 바라보는 긍정적인 지혜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78호 / 2021년 3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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