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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 바른 신행을 위하여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의 삶과 관계없는 불교의 교설은 아무리 심오하다 할지라도 중생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불교의 교설은 불자의 삶과 연결되어야 하며 이것이 불교의 신행생활이다.

그러나 많은 불자들은 불교적 신행생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더구나 불교의 가르침이 중층적 체계를 가지고 있어 신행생활 또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신행생활의 바르고 그른 구분은 쉽지 않다.

불교는 자력적 신행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미타신앙, 관음.지장신앙 등 타력신앙 중심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문제는 불교가 부처를 믿는 신불지교인가 아니면 부처가 되는 성불지교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또 불교신행의 궁극적 목표가 선업을 지어 선한 과보를 받느냐, 아니면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느냐, 그것도 아니면 정토에 나는 것이 목표냐에 따라서 그 신행방법이 달라진다. 그러나 일반 불자들의 신행은 이런 열반이나 성불, 왕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신행생활에 임하고 있느냐에 따라 바른 신행생활이 되기도 하고 잘못된 신행생활이 되기도 할 것이다. 불자들이 부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느냐에 따라 신행생활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깨달음을 대중에게 가르쳐 주시는 위대한 스승으로 대하느냐, 초인적 능력으
로 중생의 행복과 불행을 다루는 위신력의 갖춘 구제자로 대하느냐도 신행생활이 달라진다. 아함경의 가르침은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대승불교는 구제자로 나타난다.

수많은 불보살들을 신앙대상으로 삼은 것도 불자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혼란을 준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만 있을 뿐이며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교뿐만이 아니라 관음보살의 불교, 지장보살의 불교가 혼재해 있다.

이러한 문제는 불교학에서 교리적으로 설명되지만 학문적 측면과 현실적신행생활의 측면은 명확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중생의 근기가 다양하므로 불교적 교설이나 신행방법도 달라야겠지만 그것은 방법상의 문제이지 궁극적 목표와 불교의 본질이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불교적 성격을 띤 민속.무속신앙과 산만하리 만치 다양하게 행해지는 불사도 불자들의 신행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불사의 동참은 불교도의 의무이자 신행의 한부분은 될 수 있지만 전체는 될 수 없다.

이상에서 거론된 몇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신행생활인가를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심도있게분석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른 신행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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