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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생명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몇 해 전에 서울대학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신장이 나쁜 아버지에게 자기의 신장 하나를 떼어 주기 위해 딸이 입원을 했다. 그런데 그딸이 수술을 앞두고 밤중 내내 울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간호사나 의사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정말 괜찮겠느냐"고 신장 하나를 떼어 준다음에도 자기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아름다운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은 탓인지 이제 나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별 감동을 받지 않는다. 일종의 미담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 들은 이 불효막심한 이야기는 오히려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까지 남을 위해 자기의 장기를 기증한 그 수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오히려 이 속된 이야기 앞에 빚을 잃고 마는 것 같았다.

왜 이 이야기가 나를 이토록 엄숙하게 만드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신문에 보도된 아름다운 이야기 보다도 이 딸의 이야기가 `인생의 참모습'을 더 잘 보여주었고 또한 이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생명이 무엇인가'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생명은 물건이 아니다.

생명이란 주고 싶다고 선뜻 내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거늘 왜요
즈음 자기의 생명을 선선히 내주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가. 드디어 성자의 시대가 도래했는가? 아니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과장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모두들 종교적인 최면에 걸렸기 때문인가? 최면상태에서 하는 일이란 아무리 잘 한 일이라도 진정한 의미의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설사 좋은 일을 못하더라도 또릿또릿한 자기 정신으로 인생을 살아야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 정신으로 살다가 실수도 하고, 넘어지고, 깨지고, 얻어 터지고, 고민하고,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사람은 깨치게 되는 것이리라 믿는다. 어떤 형태로든 제 정신 놓고 하는 짓에 우리는 큰 박수를 보낼 수 없다. 거기에는 고민이 없고 깨침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말도 잘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한다. 그러나 그 좋은 일들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이 딸 만큼 충실했는지 의심스럽다. 은행에 돈도 넣어 놓지 않고서 마구 수표를 끊어 주는 것 같은 불안감이라 할까, 수학문제를 풀때 답은 맞았는데 그 답이 나오기까지의 수식이 틀려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쓰기 어려운 말들을 너무 쉽게쓰는 종교인들, 하기 어려운 일들을 너무 쉽게 잘 하는 종교인들에게 이 딸은 큰 법문을 한 것 같다.

자기의 장기를 내주기 전에 온 밤을 울음으로 지샜다는 이 딸의 이야기를 듣고 불효막심이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받게되는 것은 그 딸의 효행과정에 조작이 없고 속임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얼핏 보기에 수준높게 보이지만 실은 가짜에 불과한 것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수준미달처럼 보이는 보통사람들이 해내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있다.

애써서 번 돈을 은행에다 넣어 놓고 수표를 한장 한장 조심스럽게 쓰는 보통사람들처럼, 종교인들도 말을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해야할 것같다.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들이 먼저 문제가 무엇인가를 똑바로 이해하고 차근차근 수식을 풀어 가는 것 처럼 우리 종교인들도 그렇게 차분하고 진실하게 인생을 살아 가야겠다.

밤중 내내 우는 딸을 보고 누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입을 열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이 딸을 불효자식이라 욕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딸이 마침내 자기의 장기로 아버지를 살려 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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