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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를 찾아서 12 - 임종게 下

기자명 김종만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自己回歸의 禪旨로 別離 통보

'잘들 있게' 기막히게 멋들어진 여운-원오극근
평소 一圓相 가르침 입적시 그 자세-앙산혜적

중국 선종의 법맥을 잇는 이름있는 선사들의 임종게는 저마다 독특함이 있다. 오조법연의 악랄한 지도가 곧 자기를 위함인줄 알고 각고정진해 법을 이은 원오극근(ㅊ悟克勤 1063∼1135). 그의 임종게는 평소 보였던 후학의 제접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 것도 해놓은 것 없거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가 없네
오직 인연에 따를 뿐이니
모두들 잘 있게.

已徹無功 不必留頌
聊爾應緣 珍重珍重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해놓은 것이 없어 특별히 따로 임종게라고 남겨 놓을 이유도 없다고 밝히고 있는데 당시 원오극근이 누구인가. 휘종 고종의 두터운 존경을 받고 있었고 대정치가 장상영이 그의 도력에 탄복해 교유했으며 《벽암록》10권을 편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이름이 높았다. 가는 곳마다 학인이 운집했고 그가 머물던 장산에는 학인을 수용할 자리가 없을 만큼 빽빽이 후학이 찾아들었다. 그런 그가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다고 하니 지극히 겸손한 태도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전의 그의 성품을 들여다보면 겸손함과는 거리가 있다. 호방한 남성선(男性禪)을 특질로 하는 중국선에서 겸손함은 가당치 않다. 그렇다면 원오의 임종게는 무엇을 말하려 함인가. 마지막 구절의 '모두들 잘 있게'를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세상인연 다했으니 가려는 것일 뿐 굳이 형식적으로 무엇무엇을 따로 남기고 할 이유가 없다. 다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다. '잘들 있게' 이 한마디가 기막히게 멋들어지고 여운을 길게 남긴다. 원오의 깨달음은 미진함이 없다는 반증이며 그것으로써 '지도(至道)'의 큰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원오는 간화선의 거두이자 임제종에서 많이 애송된 《벽암록》의 편저자. 다음의 임종게는 이와는 반대로 묵조선의 제창자이자 자신이 중흥시킨 조동종에서 널리 읽힌 《송고백칙》의 저자 천동정각(天童正覺 1091∼1157)의 것으로 좋은 대비가 되고 있다.


꿈같고 환영같은
육십칠 년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

夢幻空花 六十七年
白鳥煙沒 秋水天連

임종게로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혀진다. 원오가 '이철무공'으로 자신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다면 정각 역시 '몽환공화'로 67년 세월을 회고한다. 정각도 원오와 마찬가지로 그의 문하엔 늘 1천명이 넘는 선객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도풍에 감복한 사방의 선객이 몰려들어 제접에 어려움이 있어 분좌(分坐)가 불가피했을 정도다. 그런 그도 자신의 평생을 '몽환공화'로 고백하고 있다. 다만 정각의 임종게가 원오와 다른 것은 바로 '이미지어'를 내세워 상징법을 쓰고 있다는 점. 여기에서 '흰 새'는 '지적인 번뇌'(迷理惑)를, '물안개'는 '감정적인 번뇌'(迷事惑)를 의미한다. 그 흰새가 날아가고 물안개가 걷혔다 함은 '확철대오'했음이다. 결론적으로 원오와 정각은 모든 것을 여읜 '각자의 세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그들이 세상인연을 떠나가는 터에 보여주는 것은 원오가 '잘들 있게'라는 말로 담담함을, 정각은 '가을 물이 하늘에 닿았네'라는 상징수법으로 '깨달은 이가 돌아가야 할 길'을 암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보다 앞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임종게는 후사에 대한 염려가 묻어나 주목된다.

어찌해야 도의 흐름 그치지 않게 하리
진여 비춤 가없어서 그에게 설해 주되
명상을 떠난 그것 사람들이 안받나니
취모검 쓰고 나선 급히 다시 갈라고.

沿流不止問如何 眞照無邊說似他
離相離名人不稟 吹毛用了急還磨
정각은 임종게를 남기기전 글로 대혜선사에게 후사를 부탁했다. 임제는 후사를 대중앞에서 임종게로 대신했다. 열반할 때가 되었음을 안 임제선사는 마지막으로 법좌에 올라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나의 정법안장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
정법안장이란 불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 자체요 선의 법통이다. 그러자 삼성이 앞으로 나서 말한다.
"어찌 스님의 정법안장을 없어지게 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임제선사가 묻는다.
"이후에 누가 나타나 정법안장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말하겠느냐?"
그순간 삼성의 입에서 할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임제는 탄식하듯 말했다.
"누가 알았으랴. 내 정법안장이 이 눈먼 노새 손에서 멸망할 줄이야."

이 임종게는 임제선사가 이런 직후 읊은 게송. 그리곤 바로 앉은 채 입적했다고 전해진다. 임제는 후대의 원오극근 천동정각과는 달리 정법안장의 면면한 계승을 걱정하고 있다. 임종게는 이같은 그의 염려가 진하게 배어있고 그에 대한 절절한 당부를 함축된 선지로 설파하고 있다. 임제라면 할로 유명하거니와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논리로 온전히 자재한 경지를 구축하라고 가르친 대선사다. 그런 그가 입적을 앞두고 정법안장을 존속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생전의 '할'대신 '취모검' 한자루를 놓고 떠난다. 취모검은 터럭마저도 닿기만 하면 금새 베어진다는 예리한 칼. 임제는 그 칼로 부처와 조사를 모두 베어버리라고 선동하고 있는 셈이니 그 가르침의 격함이 생사의 기로 따위완 아무 상관이 없다. 그의 입적이 역설적으로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위선(正位禪)으로 무설토 유설토의 선지를 드러내 후세에 '소석가(小釋迦)'라는 칭호를 받은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의 임종게도 평소 그의 사상이 농축돼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진다.

일흔 일곱 나이 차니
무상이 오늘에 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뜬 정오
양손으로 세운 무릎 휘어잡고 오른다.

年滿七十七 無常在今日
日輪正當午 兩手攀屈?

앙산도 임제와 마찬가지로 정오가 되자 법좌에 올라 대중에게 이별을 고한 후 이 게송을 읊고 입적했다고 한다. 일흔 일곱의 나이가 '찼다'함은 생존의 충만 충족을 뜻한다. 무상이 오늘에 있다 함은 생사에서 해방됐고 절대적 진리 속에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가는 날을 '무상'으로 뜻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에서 깊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무상은 역설적으로 '영원한 지금'일 수 있다. '영원한 지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깨달은 이의 눈으로선 중생을 일깨우기 위해 이런 표현을 빌어올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일륜정당오'를 통해 알 수 있다. 앞서 수산성념의 임종게에서 살펴본 '일륜당오'의 뜻과 맥을 같이하는데 당오란 온갖 사물이 털끝만한 그림자도 수반하지 않은 채 그 진상을 확연히 드러내는 순간을 말한다. 그 순간에 그는 마지막 구의 표현처럼 '양손으로 세운 무릎 휘어잡고 오른다'처럼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 자세는 일원상의 모습이다. 그는 생전에 '일원상'의 가르침을 폈다. 평소에도 앙산은 일원상을 그려놓고 그 속에 여러 가지 글이나 상징물을 그려넣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일원상의 가르침을 몸소 체현해 보이며 그렇게 갔다.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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