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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의 의미

기자명 황태연
재벌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역사적 의미 부여를 둘러싸고 두 신문(재벌 소유 신문과 모재벌로부터 무이자 500억 금전 지원을 받은 신문)이 재벌비호를 위해 한판 난리를 벌였다. 이 통에 '재벌'의 의미조차 애매해지는 혼돈이 일었다.

먼저 우리는 재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우리 재벌보다 30배 더 큰 독일의 메르츠데스 벤츠사는 '재벌'이 아니다. 또 대부분 족벌경영을 하는 중소기업이 '재벌'인 것도 아니다. 재벌의 본질은 총수 1인이 기업간 교차투자, 순환투자, 복수투자 등을 통해 자기의 작은 소유지분(주식의 평균 5%)을 초월하는 100% 전권으로 국민의 대규모 재산을 전횡적으로 주물럭거리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권위주의적 지배체제의 대기업군이다. 민주국가에서 국가원수는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내우외환의 범죄를 저지를 때는 국회의 탄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재벌은 아무런 책임도 탄핵도 모르는 봉건적 군왕이나 황제처럼 무책임하고 자의적으로 군림한다.

재벌의 이 무책임한 전횡적 경영체제는 '황제경영체제' 또는 '왕조체제'나 다름없다. 책임이 없는 곳에는 자의적 투자결정과 비효율이 판을 친다. 기존의 생산라인조차 풀 가동되지 않는 나라에서 퇴행적 과잉·중복투자가 성행했다. 피땀어린 국민의 재산이 신속히 21세기 산업분야에 대량 투하되어야 할 판국에 마냥 퇴행적 방향으로 투하되었던 것이다.

재벌이 전횡적으로 통제하는 국민의 대규모 재산은 소액주주들의 주식과, 은행이 재벌에게 꾸어 준 국민의 어마어마한 은행예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벌은 주주와 채권은행들에 대해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되레 배짱을 놓아 왔다. 낡은 '大馬不死'의 신화를 확신하며 재벌은 과잉·중복투자로 인해 부실해지면 은행과 정부에게 돈을 더 꾸어주지 않으면 부도낸다고 협박해 왔다. 이를 통해 재벌은 여러 정권의 개혁정책을 무력화시키며 수명을 연장해 왔다.

그러나 DJ 정부는 재벌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도 높게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 때문에 두 재벌비호 신문이 생트집의 굿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OECD 國家群에서 재벌이 존재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1920∼30년대에 독일과 일본에 재벌이 지배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이 나라들의 재벌을 강제 해체하였다.

우리 나라 재벌도 이런 식으로 탄생하였다. 권위주의 정권과 줄이 닿아 사업하는 자들은 모두 재벌이 되었다. 이제 이런 정권은 사라졌지만, 권위주의의 마지막 잔재로서 재벌은 오늘날도 남아 있다. 따라서 재벌개혁은 권위주의적 발전양식의 역사적 종식이라는 정치사적 의미도 담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의 功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일한 논리로 어떤 이들은 재벌을 비호한다. 물론 다른 나라의 권위주의 정권들에 비하면 한국 권위주의 정권은 그래도 경제를 발전시킨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 말이 오늘날 저 권위주의 정권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말이 아니듯이 재벌이 과거에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오늘날 재벌의 존속을 비호할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환란은 재벌이 수명을 다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적신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대통령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 체하지만 돌아서서는 보이지 않게 재벌비호 언론, 교수, 야당, 지역감정 등 총력을 동원하여 저항하고 있다. 재벌은 과거에 살벌한 國保衛의 재벌개혁 프로그램도 로비로 무력화시킨 바 있다. 정권은 임기가 있기 때문에 재벌은 시간만 벌면 된다. 따라서 죽은 재벌체제와 '진검승부'를 벌이려는 정권 차원의 결단만이 재벌개혁의 성공을 보장한다.

재벌개혁의 방향은 전횡적 황제지배구조에 기초한 선단식 경영체제를 개혁함으로써 재벌가문의 소유권만큼만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하여 경영책임이 분명한 현대적인 대기업군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좌경'이니 '사회주의적 발상' 운운하는 것은 재벌비호 세력의 반역사적 언동일 따름이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완용 손자의 재산권도 보호하는 나라에서 재벌의 '사회주의적' 재산권 침해란 있을 수 없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경영권을 이들의 소유권(5%) 수준으로 재조정하여 재벌황제에 의해 유린된 국민(소액주주와 예금주들)의 소유권을 복권하려는 것이다.

재벌개혁은 재벌황제를 제외한 전문경영인, 재벌기업 종업원, 중소주주, 예금주, 은행, 소비자, 국가 등 모든 집단에 이익을 준다. 재벌개혁은 부실한 재벌의 낡은 선단식 대기업군을 경쟁력 있는 초현대적 대기업군으로 살려내 일자리를 튼튼히 지키고 더욱 늘리려는 데 목적이 있다. 모든 국민은 이 점에 주목하여 개혁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황태연/논설위원·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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