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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숨결따라 새로 쓰는 성지순례기 (7)-첫 설법지-녹야원

기자명 윤청광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첫 설법 팔정도를 설하신 사슴동산
박물관에서 처음 만나뵌 부처님상은 젊고 아름다웠다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 길상초를 깔고 앉아 명상에 잠긴지 7일만의 새벽, 구도자 싯다르타는 문득 형언할 수 없는 희열에 넘치기 시작했다.

이 세상과 우주의 모든 이치가 확연히 그 앞에 드러나 보였다. 어찌하여태어나고, 어찌하여 늙고 병들며, 어찌하여 죽게 되는가. 무엇이 괴로움의뿌리이며, 온갖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모든 의문들이 일시에 풀리는 순간,구도자 싯다르타는 실로 출가 6년만의 고행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었다.

이제 부처님에게는 생사의 의문도, 인간적인 번뇌와 고통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이르지 못했고, 그동안 어느 수행자도 경험하지 못했던 큰 깨달음의 경지를 부처님은 스스로 얻은 것이었다.

부처님은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서 7일을 머무시며 선정에 드신 후, 당신이 깨달은 바를 이 세상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전해 해탈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기로 결심했다.

바로 이 역사적인 부처님의 결심으로 중생제도의 지혜와 자비가 온 세상에 번지게 되었다.

생노병사를 비롯한 천가지 만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이 진리의 길을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 부처님은 구도시절 한때그들 밑에서 수행했던 아라라와 웃다카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알고보니그들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다음 부처님은 나이란자나 강건너 가야산에서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생각했다. 그들 다섯 수행자들은 구도자 싯다르타가,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마시는 것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그를 혼자 남겨둔채 녹야원으로 떠나버렸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깨달음…진리의 길을 전해주기 위해 녹야원을 향해 보드가야를 떠났다.

보드가야에서 녹야원까지는 장장 250여km나 되는 멀고먼 길… 부처님은이때 열 하루를 걷고 걸어서 하루에 한끼씩만 음식을 얻어자시며 녹야원으로 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이 당시 부처님은 보드가야를 출발하여 라즈기르, 나란다를 거쳐 파트나에 들른 다음 간지스강을 건너 바라나시에 이르렀고, 바라나시에서 쉰다음 바라나시의 동문을 나와 녹야원에 당도했다.

부처님이 녹야원에 이르렀을 때,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수행자들은 그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육신을 괴롭히는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 다섯 수행자 가운데 누군가가 먼저 가까이 오고있는 부처님을 발견하고 급히 말했다.

“저기 좀 보게나. 고행을 포기했던 수행자 고오타마가 이리로 오고 있네.”
“그렇구먼. 우리는 고오토마가 가까이 오더라도 모른척 하기로 하세.”
“그렇게 하도록 하세. 그는 타락한 수행자니까 아는 척 할 필요도 없지.”

다섯 수행자들은 모두들 그렇게 약속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그들 곁으로다가오자 그들은 그만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들 약속이나한듯 머리를 깊이 숙여 부처님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그렇게 하기로약속이라도 했던것처럼 부처님께 앉을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부처님은 편안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신 뒤, 다섯 수행자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다. 하나는 육신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쾌락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육신을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허나, 모름지기 수행자는 그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수행자는 두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나는 바로 그 중도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열반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그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가지로 되어있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명상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첫 설법이다.

팔정도(八正道)를 말씀하신 이 최초의 설법을 들은 다섯 수행자들은 기쁨에 젖어 부처님께 감사의 예배를 올리고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 바로이숲에서 살고 있던 사슴들이 떼지어 몰려나와 부처님의 설법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 부처님이 최초의 설법을 펴셨던 바로 그 자리, 최초의 다섯 수행자를 제자로 삼았던 바로 그 자리에 `다메크 탑'이 근엄하게 서있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돔처럼 보이는 이 `다메크 탑'은 부처님의 첫 설법지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아쇼카왕이 기원전 3세기에 세웠던 것을 훗날 굽타왕조시대에 증축한 것인데, 탑의 직경은 28.5m, 높이는 42m, 큰 밥그릇을엎어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다메크'라는 탑이름은 원래 `진리를 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이 최초의 설법을 펴셨던 바로 그 성스러운 자리에 세워진 `다메크'탑을 돌고돌면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며 부처님의 은혜를 기리고 있다. 가장 많은 참배객은 단연 한국의 불자들, 그리고 태국,일본, 티베트에서 온 불자들도 지극한 정성을 바치고 있다.

1300여년전 이곳을 참배했던 당나라 현장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다음과같이 당시의 모습을 기록했다.

“바라나시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십여리를 가면 녹야가람이 있다. 건물은하늘높이 솟아있고, 사방으로 긴 복도가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1천5백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소승 정량부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다메크'탑 참배를 마치고 옛 가람터에 가보면 1천3백여년전 무려1천5백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었다는 바로 그 자리에는 벽돌로 쌓은 법당과 승방들의 기단부만 남아 있을 뿐 현장스님이 목격했던 전각들은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1천3백년 전에만 해도 1천5백명 스님들의 독경소리와 예불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는 옛 승당터 벽돌기단에 앉아 있자니, 때마침 찾아온 한국의불자들이 옛 스님의 설법장에서 법회를 열고 낭낭한 우리 목소리로 삼귀의를 올리고 반야심경을 합송하고 있다.

녹야원 넓은 벌판에 줄지어 남아있는 벽돌기단 사이를 한동안 거닐다가서쪽문을 나서니 바로 거기에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하마터면 `다메크'탑만 보고 떠날뻔 했는데, 사실 단체 성지순례단으로 녹야원에 가는 경우,십중팔구는 이 박물관 관람을 못하고 오기가 쉽다. 그러나 녹야원을 참배할경우 바로 이 박물관 관람을 못하고 온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른다.

박물관 안에는 뜻밖에도 눈이 번쩍 뜨이는 소중한 유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날 인도 정부의 국장(國章)으로 사용되고 있는 저 유명한 아쇼카 돌기둥 맨위에 서있던 사자 머리상이 원형 그대로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사자의 얼굴,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듯한 사자의 갈기털, 약간 내밀고 있는 혀. 2천3백여년전,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성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아쇼카 석주의 돌사자 머리상은 지금 보아도 명작임에 틀림이 없다.

석사자상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부처님상이모셔져 있는데, 만일 내가 이 부처님상을 뵙지 못했다면 녹야원 참배는 말짱 헛일이 될뻔했다.

5세기경 굽타왕조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이 부처님상이 바로 `초전법률상'. 부처님께서 다섯 수행자들에게 최초의 설법을 펴시는 모습을 그대로 조성한 것인데 최초의 설법을 상징한 법륜과 설법을 듣고 있는 다섯 수행자들과 사슴들이 모자상(母子像)과 함께 새겨져 있다.

부처님의 젊고 아름다운 얼굴 모습과 거기서 번지는 맑은 미소. 나는 아직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불상은 만나뵈온 일이 없었다.

“부처님의 얼굴을 왜 이리 젊게 했을까요?”

박물관 안에 있던 한국의 한 불자가 나에게 물었다. 당연한 의문이리라.그동안 우리는 50대 이후의 근엄한 부처님만 보아왔으니까.

그러나 녹야원 박물관에 모셔진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셨던 35세 시절의부처님 모습이니, 젊고 아름다운 청년의 얼굴. 아, 정말, 이 불상을 뵈온것은 큰 행운이었다.


윤청광/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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