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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31 - 번뇌(煩惱)

기자명 목석
불교의 말 가운데 ‘중생’이라는 말과 함께 ‘번뇌’라는 용어만큼 귀에 익숙한 말도 없을 것이다. 중생이란 남이 아닌 나 자신이고, 중생에게서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번뇌, 즉 괴로움은 바로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 만큼 절실할 수 밖에 없다. 이 번뇌를 불교적인 해석을 가하자면 매우 복잡 다단하다. 그러나 간단히 묶어보면 내부에 의해서나 외부에 의해서 우리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모든 작용의 총칭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번뇌는 육체적인 괴로움보다는 정신적인 괴로움에 가깝다. 예를 들면 육체에 병이 생겼거나 상처가 났을 때는 이는 번뇌가 아닌 고통이다. 그러나 환자가 그 병과 상처로 인해 육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그 불편함이 마음으로 서서히 전달되고 마침내 마음은 그것을 괴로움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가까운 사람이 찾아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는 자신의 불편함 내지 괴로운 생각도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즐거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것은 괴로움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의 병이나 상처가 아닌 정신의 고통으로 번민에 휩싸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의 배신, 또는 사실이 아닌 오해나 모함을 받았을 때는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이 크다. 이로 인해 몸져 눕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것이지 세상이 함께 그를 동조해서 괴로워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옛날 그대로 해가 뜨고 질 뿐이다.

여기에서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갈라진다. 자기에게 닥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환경을 지혜롭고 성실하게 해결하는 사람과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한사코 거부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차이이다. 다시 말하자면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조건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그것에 포로가 되었을 때 마음은 갈등으로 소란해져서 결국 괴로움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것이 번뇌이다. 여기에서 지혜로운 자는 그 괴로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직시함으로써 남보다 먼저 자유로워진다. 괴로움은 거의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자체는 즐거움 보다는 괴로움의 굴레에 싸여 있다. 부부와의 불화, 직장에서의 갈등, 동료간의 반목, 사업의 부진과 실패, 연인과의 이별, 시기, 질투, 불만족 등등 괴로움의 원인을 껴안고 사는 것이 우리의 삶 자체다. 우리는 죽음이 오지 않는 한 괴로움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고 있다. 단지 그 많은 괴로움들을 순간순간 몸과 마음으로 겪으면서도 의식, 무의식적으로 흘러보내고 있고, 또 웬만한 괴로움도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 소멸되어 오히려 그 때를 행복한 회상으로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괴로움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마음의 눈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세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가 곧 보리(지혜)라는 말을 강조한다. 번뇌가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면 그 어리석음을 제거하면 어리석음이 바로 지혜로 변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널리 알려진 비유이지만 유리컵에 반이 담긴 물을 보고 ‘물이 벌써 반이나 없어졌어’의 부정적인 시각은 번뇌이고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로 보는 긍정적인 시각은 지혜이다. 다시 말해 ‘벌써’의 부정적인 시각을 ‘아직’의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외부의 환경이나 사물을 바꿀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바꿔야 한다고 고집할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거기에 대응하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실수가 괴로움을 낳지만 우리는 그 실수의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시각을 바꿔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목석/그림·안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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