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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정론 - 시간이 멈춰있는 나라

기자명 시명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세다곤 황금대탑을 랭군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는 나라. 국민대다수가불교신자이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 온 세계가 개방의 물결에휩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쇄를 고집하면서 자신의 옛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라 미얀마. 8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극히 제한된 일부 사람에게만 문을 개방하고 있는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방콕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얀마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땅거미가지고 있는 저녁 무렵 공항 대합실의 모습이 70년대 우리의 시골버스대합실을 연상시켜서 실망과 정겨움이 교차함도 잠시, 사회주의체제라 공항입국수속이 몹시 까다로울까봐 붉은 완장찬 사람만 보아도 방공영화에서 본공산당원이 연상되어 괜히 으시시했다. 그러나 입국수속은 너무나 간소하고 친절했다. 한국승려들이라고 하자 합장을 할 만큼 친숙하게 대해주었다.

서울과의 비교때문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어둡고 우리를 데리러 온 관광버스는 에어콘도 없고 냄새가 지독한 고물버스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세다곤 황금대탑도 만달레이의화려한 왕궁도 아니고 파간의 불탑유적지였다. 파간은 경주와 같이 최초의통일왕국이었던 파간왕조의 흥망이 숨쉬고 있는 고도였다. 이라와시강변에서있었던 크고 작은 수많은 탑과 아난다 사원의 황금불상 그리고 탓비인유사원에 올라가 조망해본 석양무렵의 파간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히려가슴이 저리고 슬펐다.

한때 그토록 화려했을법한 4만여기의 탑과 금빗으로 빛났을 사원들.수많은 승려들과 왕궁이 있었을 고도 파간.

네차례의 지진으로 비운을 맞아야했던 왕궁의 퇴락과 더불어 파손된탑에서 떨어져내린 벽돌들이 잡초속에서 함부로 나뒹굴고 순례자의가슴속엔 시간의 무상함이 떨어지는 석양과 더불어 한없이 슬펐다.

그곳에서 맨발로 탑에 예배하면서 느낀 감회는 미얀마 사람들은지나치게 내세 중심으로살고 우리들은 지나치게 현세 중심으로 살고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불교는 생활 그 자체였다. 최소한의 먹을 것만 있으면모든 것을 사원과 불탑에 갔다 바치는 삶을 살고 있는듯 사원과 탑은어디에나 금빗으로 찬란하고 그 규모 또한 굉장하였다.

그들의 삶의 목표는 종교적인 공덕을 쌓아 보다 나은 내세를 보상 받으려는 신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과를 철저히 믿고 조급하지않고 기다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따라서 정치적인 질곡이나 빈부나 귀천이 숙명처럼 윤회의 굴레속에있다고 믿기때문에 우리들처럼 그렇게 아둥바둥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가난이나 불행이 통치자들의 부정부패나 독재, 사회의 구조적모순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질러놓은 업보의 결과라고 믿고있는태평스럽고 순명적이고 천연덕스러운 그들의 성정이 한편으로는 부럽게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겐 어두운 구석이 없어보였다. 구걸하는 아이들이나장사하는 아낙네들이나 모두 한가지로 삶에 찌달리고 배고픈 처지에있으면서도 결코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영악한 눈빛이나 불량하게보이질 않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심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국민적 정서가숨쉬고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군부독재는 이러한 국민정서를 역이용하여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 폐쇄를 고수하면서 그들의 고혈을 짜먹고 있는것은 아닌까 하는 자유주의적 못된 분별심이 자꾸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파간에서 비행기 고장으로 10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비행기가 고쳐지지않자 다음 여행지인 안달레이로 서둘러 버스라도 타고 밤중이라도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일행들은 불평 한마디를 하면서도 사실 우리네의 조급하고 치열한 삶의 방식에 더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였다.

미얀마는 시간이 멈추어져 있는 나라였다. 세계가 모두 개방의 물결이다. 경제 전쟁이다 무엇이다 하면서 빠르게 더 빠르게 외치고 있는 데그들의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멈추어져 있는 그들의 시간이 때로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삶이부러워지는 것은 왠 아이러니일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각박하고 여유없는 우리들의 꽉 짜여진시간표를 보고 그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빨리빨리를 외치며 꽉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우리들이 결국얻는 것은 무엇인가? 경제적 이유, 문명의 이기, 신형 자동차, 냉장고,텔레비젼… 등등이 얻어는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로 남겨진 환경오염,각박한 인심, 끝없는 경쟁, 불안 초초…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어서앞으로도 걸국 남는게 이런 것들이라면 나는 차라리 움직이지 않는그들의 시간을 택하고 싶었다.


시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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