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스승의 날은 아마 기억하기로는 이 날이 생긴 이래 가장 쓸쓸하고 스산스런 하루였던 것 같다. 유명인들의 일일 교사활동 말고는 어떤학교는 아예 학부모의 학교 출입을 막고자 이미 정해진 일일교사를 취소해버렸는가 하면, 학생들에게 꽃 한송이도 못 가져오게 한 학교도 있고, 어떤학교는 제발 아무런 행사도 말고 교사들끼리 조용히 쉬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는 뒷이야기다.
그럴만 하다. 교사가 촌지로 사회 전체의 피고석에 올라 연일 언론매체의동네북이 되어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은 바깥 사람들의 시선으로도 차마 그치욕을 떨칠 수 없게 느껴진다.
`촌지'로 말하면 세상이 다 알 듯이 그 으뜸은 공직사회와 관련된 각종비리와 이권이겠고, 그 다음으로는 언론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글쎄,통계가 불가능해 모르긴 하지만 한때는 봉급보다 촌지가 더 많았다는 시절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특정 부서의 공직자나 땟물 좋은 출입처의 언론인이두루 해당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 등 반정부사건이 아닌 부정부패에는 비교적으로관대하여 웬만한 화폐단위는 세인들의 관심도 못 끌기 마련이었는데, 유독교사들의 촌지에 대해서만은 몇 만 단위로 축소지향화되어 면밀조사가 실시되는가 하면 그 벌칙 또한 가혹한 파면 조치급이기 일쑤다. 촌지의 처벌 형평성에 비춰 본다면 거래된 화폐의 단위와 함께 `대가성 여부'가 관건인데일선 교사들에게 건네는 수준이 고작 `인정적 수준'이거나, 대가성이라는 것도 교사의 그 얄팍한 권한으로 무슨 특권을 행사했을지 심히 의문인데, 언론은 교묘하게도 모든 교직자를 `미필적 촌지 수수자'로 내몰아 세우는데일단 성공하여 마치 우리나라의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교사인양 전도되어 버렸다.
왜 하필 교사가 촌지 규탄의 제일급 대상이냐고 묻는다면 교육은 국가백면지대계로 너무나 중요하다는 등 할 말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 교육의중요성을 안다면 이를 맡고 있는 교사의 실력과 권위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지 벌칙을 강화하는 것이 뭐 화급할까 싶기도 하다. 교사로 하여금 바른교육을 소신껏 실천할 수 있게끔 환경과 조건을 확보해 주는 것이 먼저고처벌은 뒤가 되는게 순서임은 모든 이치의 원리일 터이다.
말하자면 국가와 사회 체제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구호에도 나타나 있듯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체제인데도 유독 교육에서는 `평준화'의 구호로 경쟁력 탈색의 교육을 시도하면서 입시조차도 생활기록부 의존도를 높여가는 추세이다. 입시제도로 말하면 또 문제가 복잡해지니 그건 차치하고 촌지문제에만 국한시켜 말한다면 생활기록부 의존도가 높을수록 교사의 판단 재량권은 높아지고 그럴수록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은 거세질수 밖에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나는 “촌지 없는 학교”라는 구호가 지금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구호에만그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데, 그건 교사의 자질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국민 다수가 지닌, 경쟁에서 이기기의 전략적 차원의 문제이라는 판단에서기인한다. 학부모의 학교 출입을 철저히 막으면 앞으로 모르긴 하지만 아마교사에 대한 촌지의 단위가 높아져 웬만한 서민들은 정말 자기 아이를 맡긴교사에게 애틋한 `인정'조차 베풀 기회가 없어지고 특권층만 `뇌물'을 감쪽같이 바치는 풍조가 되지 말란 확신이 설 수 있을까 싶다. 더구나 학교 운영위원회니 뭐니 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학부모의 학교 경영참가는 권장되고 있는 판국이고 보면 간접적인 `뇌물성' 부작용은 오히려조장될 우려조차 없지 않다.
철저한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학생의 평가제도가 확립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떤 개혁이나 자율화도 결국은 집단적 혹은 직능별 이기주의로 흘러 합법적인 부정이 정착화 해버릴 소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자조적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우리 국민 다수는 아직은 미국식 자율화에 익숙치 않는데, 그건저간의 독재정치 지상주의가 빚은 결과 때문이리라.
촌지를 근절시키는 최상책은 교사로 하여금 직분에 충실해 학생을 평가하는데서 `사심'이 끼어들 틈이 없어 어떤 학부모도 불이익을 받을수 없도록제도화하는 것이리라. 촌지를 줄 필요도, 줘봤자 아무런 효험도 없도록 만드는게 시급하며, 그럴 즈음의 `촌지'는 `인정'으로 승화되어 찬양받는 사회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때 후보자들은 거의 모두가 존경받는 교사를 만들겠다고했는데, 이것은 처우와 권위가 함께 개선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공약이실현되어 `촌지 교사상'이 `존경받는 교사'로 바꿔져 내년에는 웃음과 희망이 활짝 핀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다. 교사의 권위와 사기와 웃음을 확보해주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음을 우리 모두가 깨닫는 일이 교육개혁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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