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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을 찾아서-"돈오 이루겠다"50년 장좌불와:대담=지명

기자명 이학종
불교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불교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해인총림 방장 혜암스님을 가야산 해인사 원당암으로 찾았다.


-큰스님께선 16세때 일본에 유학을 하셨지요. 그때 발심을 하신 것으로알고 있습니까.

..학교에 다닌 것은 아니고 일종의 사설학원같은 비밀 연구부에 들어갔지요. 거기서 공부를 하며 기독교 유교 불교서적들을 접할 수 있었지.문득 조사어록을 보다가 깨달음의 경지에 대한 말을 읽고는 갑자기 도닦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져요.

얼마나 간절했던지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 병을 얻을 정도였어요. 그래일본 절에가서 계를 받겠다고 하니까 한국의 절에 가서 출가를 하라고그길로 한국에 나와 백양사로 갔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백양사에서 출가하러 왔으면 이리 원불교나 합천 해인사로 가라고 그래요.

그래서 원불교에 가서 책 3권 빌려 읽어보곤 바로 해인사로 왔지.


-그때가 언제입니까.

..1945년입니다. 해인사에선 처음엔 스님을 안만들어 주려고 합디다.한 1주일 한 데서 자며 투쟁을 한끝에 서암스님이 인곡스님을 소개해주어서 출가를 하게 됐지. 그때가 음력 7월15일입니다. 그러니까 은사는인곡 스님, 계사는 효봉스님이셨지요. 두분은 서로 형제처럼


-은사 인곡스님과 처음 만났을 때 일화는 없습니까.

..왜 있지요. 인곡스님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내리쳤지. 그러니까 "성은 무엇이냐"고물어요. 그래 허공에 원상을 그렸지. 그러니까 또 말씀하시길 "우리집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윗집 말이 배탈이 났다. 고명한 의사를 불러 말의병을 고치라고 하니까 아햇집 돼지 넓적 다리에 뜸을 떴다. 이 이치를알겠는냐"고 해요. 그래서 주먹을 앞으로 쑥 내밀었지. 그러니까 나의머리를 만ㄹ져주시더군.


-큰스님께선 출가후 주로 참선공부를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전국의 대중선방을 다 가보았지요. 다만 수덕사는 비구니들이 많이 산다고해서 안갔어.


-당시 이름난 선방은 어떤 곳입니까.

..해인사와 동산스님이 계신 범어사가 가장 큰 선방이었지요. 이밖에도경봉스님이 계셨던 통도사, 전강스님이 주석했던 인천 용화사, 향곡스님이계셨던 관음사가 유명했습니다.


-큰스님께선 토굴생활을 많이 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런 편이지요. 16국사가 나온다는 태백산 동암과 보조국사가 수행했던지리산 상무주에서 토굴생활을 했습니다.


-토굴생활을 잘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까.

..몇가지 갖춰야할 조건이 있지요. 뭔가하면 밤낮을 몰라볼 정도로 수명장애를 극복한 사람, 한 데(바깥)와 방에서의 수행이 차별이 없는 사람,밥을 한 때만 먹어도 배고픔을 가리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면 토굴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입니???


-큰 스님께선 장좌불와로 유명하십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장좌불와 수행을 하셨습니까.

..난 절에 들어오는 날부터 지금가지 장좌불와를 하고 있습니다. 26세때부터 지금까지 장좌불와를 했으니까 한 50년 됐지. 이젠 눕고싶어도불편해서 못누울 정도가 됐습니다.


-장좌불와를 하게된 동기가 있습니가.

..어록에 보니까 깨치는데 3일, 5일, 7일이면 만족하다는 내용이 나와요.그 어록의 말씀을 믿고 시작한 게지. 지금도 그 마음으로 수행을 하고있어요. 그러나 장좌불와 하고 잠을 안잔다고 해서 화두가 잘들어지는것은 아닙니다 내가 해보니가 그래요.


-정말로 잠을 한 잠도 안주무십니까.

..잠은 다 헛 것이야. 나는 `돈오'를 이루겟다는 원력으로 장좌불와를하고 있습니다. 번쩍하는 그것을 알려고 수행을 계속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잠을 안자게 되더군. 나는 잠을 항복받은 사람입니다. 잠귀신은 내게 못온다 이말이요.


-큰스님께선 장좌불와 뿐만 아니라 장기간 서서하는 수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눕지도 앉지도 않고 일종식(한끼만 식사)을 하며 6개월과 1년을 살았지요. 월정사와 적멸보궁을 오가며 작대기 하나 들고 정진을 했었습니다.


-큰스님께선 성철스님과 함께 돈오돈수법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점수법과 돈수법에 차이가 있습니까.

..초견성이란 말이 있지요. 이것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초견성이있다면 견성은 또 무엇입니까. 초견성과 견성이 둘이라는 이야기입니까.그게 아니지요.우리가 흔히 쓰는 초견성이란 경계일 뿐이지 견성은 아닌 것입니다.견성 보림과 경계를 혼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견성은 하면 별도의 수행이 정말 필요없는 것입니까.

..절대 필요없지요. 견성이 성불이고 성불이 무사인인 것입니다. 반야삼매와 증오와 돈오와 무사인은 모두 한 말입니다.


-큰스님과 성철스님과는 돈독한 인연을 갖고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성철스님과 교분을 갖게된 동기를 소개해 주시지요.

..내가 성철스님을 항상 가까이한 것은 성철스님의 주장이 다른 분들과달랐기 때문입니다. `무량법을 닦는 데 점수법은 외도'라는 말씀을 듣고함께 수행을 했습니다. 어록에도 점수법은 소승법이고 방편법이며 교는장엄물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선은 최상승법이고 최상승법은 단박깨치는 것이라는 나의 견해와 상통하는 부분이 성철스님과 나의 관계를이어준 것이지요.


-큰스님께선 혹시 오도송을 가지고 계십니까.

..있기야 있지만 나는 남의 살림살이 말하지 않기위해 말하지 않습니다.남의 법문을 빌어다 하는 오도송은 하지 않겠다 이말입니다.


-금오스님과의 일화가 있습니까.

..재미있는 일이 있었지요. 한번은 금오스님께 내가 물었어요. "내가조주 무자 화두를 들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것입니까?" 그랬더니 금오스님께선 "네 고향이 어디지?"해요. 그래 재차 물었지요.

그러니까 금오스님은 "그런줄 알아. 그러나 고향이 어디냐?"하며 다시묻더군요.

그래 할 수 없이 "큰스님이 제일 나쁜 개똥쇠요"했지. 이말에 금오스님은


-효봉스님과의 인연도 깊으시요.

..그렇습니다. 효봉스님은 무자 화두를 들고 계셨습니다. 나와 같은 화두였지요.


-큰스님, 오랜 수행생활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면 한가지만 밝혀주십시요.

..출가한지 얼마 안되서 공양주를 하고 있을때 일입니다. 문득 "내가출가한 것은 은사를 정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대중생활을 하기 위한 것도아니다. 성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요. 그길로 밥주걱을 솥단지에 꽂아놓고 화장실에 간다며 가야산으로 도망을 쳤지. 1주일며 서암스님에게미음을 쑤라고 해서 나의 기력을 찾도록 해주셨지요. 그리고 대중공사에부쳐서 나를 대중생활하도록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엇그제 중된 사람을대중생활 시켜선 안된다는 반대로 있었지만 내가 용매정진을 계속 하니까 나중에는 대중스님들이 모두들 나를 좋아해게 되었지요.


-큰스님, 수행중 색욕으로 인한 마장은 없었습니까.

..내겐 그런 마가 붙을 겨를이 없어요. 혼자 수행할 때에 이따금씩여자가 찾아온 일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자리를 피해버렸지. 내가어디 그런 병주머니를 차고 있을 사람인가.


-큰스님, 스님만의 독특한 수행지침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다른 게 있나요. 절 살림 안맡고, 상좌 안들이고, 숨어서 공부하는것이 지침이라면 지침이지요. 이중 지키지 못한 것도 없는 건 아니지.


-전강 경봉스님 등 당대의 큰스님들로부터 아낌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나는 조실스님들께 직언을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들께서는 나를 보고 "혜암이는 조실을 가르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했었지요. 허허.


-옛날과 오늘의 선방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지요.

..크게 변했지요. 우리가 처음 중노릇할 때는 구름 바람 새와 동무를했어. 사람들과의 교분은 드물었지. 그러나 지금은 남녀가 깨벗고 다니는세상이고 잘먹고 잘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문제가 큽니다. 가난해야 도심이나오는 법인데 걱정이 많아요. 그래서 나는 해인사방장이 된후 선방에오후불식을 시키고 있어요. 밥을 적게 먹어야 공부가 되는 법이거든.


-공부 잘되는 법이 따로 있습니까.

..있지요. 밥 적게 먹고, 말 적게하고, 잠 적게자고, 돌아다니지 않고,책을 보지않는 5가지 원칙입니다. 이중 밥 적게 먹는게 가장 중요합니다.이것만 제대로 지키면 나머지 네가지는 지키기가 쉽도록 원리가 되어있지요.


-오늘날 종단의 당면과제는 무엇입니까.

..개혁입니다. 이번에도 불교개혁에 실패한다면 조계종은 망하고 맙니다.그래서 지금 추진중인 개혁은 종단과 불교를 살리는 대작불사인 것입니다.


-큰스님 긴시간 말씀 고맙습니다.

혜암(혜암)스님 약력

`1920년 3월 20일 남

`1945년 해인사에서 인곡스님을 은사로, 효봉스님을 계사로 득도

`1993년 11월 해인총림 방장 추대

`1994년 4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추대.



정리=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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