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헌영 칼럼-신앙의 대중화를 위하여

기자명 임헌영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어떤 경제학자는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유로 전당대회를 드문드문 연 사실을 들면서, 기독교의 번영은 매주 전당대회(예배)를 개최하기 때문이라고 웃긴 적이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얼핏 불교는 어떤가 생각해 봤다. 무너져내린 사회주의 나라들의 전당대회 만큼 드물지는 않으나 역시 기독교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 고작해야 초파일 행사인 1년에 한 번 정도 전당대회를치르니 말이다.

어느 특정 종교를 비호하고 다른 신앙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분명 아니니까 오해는 없겠지만 종교마다 그 의식이나 문화적 접근이 다르기에 꼭 어떻게 해야만 확산된다는 식의 주장은 유치할 수밖에 없다. 즉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농담삼아 말한다면 기독교의 세계전파 비결은 예술화의 성공에 있다면 어떨까.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음악분야를 보건데기독교는 고전주의를 망라하는 엄청난 질량적인 압도를 구가하고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찬송가는 차치하고라도 바흐로 상징되는 장엄한 기독교 음악은 서구 관념철학과 함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이에 비해 아예 음악이라고는 없는 회교의 경우는 다른 지역 전파력이 매우 취약함을 부인할 수 없다.

미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 종교의 미술이 압도한다면 다른 종교에서는 편견이라고 하겠지만 기독교 미술의 대중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조각이나 특정 그림에서 불교의 탁월한 작품이 없는 바 아니나 밀레의 `만종'처럼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대중성있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 그림이라고는 없는 회교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이 대중들의 접근이 어려울 것이다.

초파일과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각 텔레비전에서 그 종교 소재 영화를방영하는 것을 보노라면 보편적인 대중성이 어느 쪽으로 쏠릴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다만 세 종교가 비슷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는 사원 건축미가있다. 셋 다 그 웅휘 장중한 사원 건축의 장엄미는 가히 인간에 대한 신의위압감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렀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최근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종교실태와 의식'조사결과를 보고 놀란 사실이다. 신자 수에서는 언제나 1위를 누려왔던 불교가 2위로 쳐지고 1위는 개신교가올랐다. 하루 한 번 기도를 하는 비율은 개신교 64.2%, 천주교 41.2% 불교10.7%인데 그나마도 지난 번 조사 때보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경전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읽는 빈도는 개신교 50.4%, 천주교 33.5%, 불교9.0%이고, 전혀 안 읽는 경우는 개신교 9.8%, 천주교 18.6%, 불교 51.3%라고 전한다.

경전을 얼마나 읽느냐는 문제는 곧 신앙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문학적으로보면 대중성을 얼마나 지니고 있느냐는 쟁점이기도 하다. 종교마다 특성이있는지라 어느 경전이 우수하다는 주장은 불가능하지만 대중화의 관점에서볼때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하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부인할 수없는데다 책의 모양까지 보관, 휴대하기에 편리하도록 되어있다.

성화상 금지와 허용문제도 신앙의 대중화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같은기독교이면서도 그 전파 방법에 따라 동방교회(그리스성교)와 서방교회(로만 가톨릭)는 성상 제작에 대하여 서로 다른 태도를 갖고 있는데 그건 원칙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전도를 위한 방법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 즉 예수이외의 성화상을 금지시킨 서방교회는 사라센 전쟁 등에 참여하여 승리로이끈 소아시아 농민들의 요구로 이뤄진 것인데 비하여 동방교회는 오히려그런 성화상이 여러 가지 있을수록 전도에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논쟁을 거쳐 허용하게 되어 여러 종류의 성화상이 다채롭게 장식되고 있다고 한다.

대중화와 전파력의 관점에서 볼 때 불교예술은 어떤가. 그리고 불교 신앙의 생활화를 위한 각종 의식은 어떤가. 오랜 역사의 풍화작용을 거치면서많은 변화와 개혁을 단행해왔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보자면 더 많은 개혁이요망된다면 지나칠까. 언론매체나 교육기관, 각종 대중용 책자 발간 등등에서 불교는 여전히 질과 양에서 모두 뒤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다 교단 내부의 불화와 갈등은 국민대중들에게 냉담을 부추길 정도로 증폭되고 있다.

최근만 해도 교계의 중진 스님들에 대한 `무더기 중징계'를 둘러싼 논란이 교계 밖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그 내막이야 어쨌든 불교 이미지 형성에 먹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한국불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 힘을 두루 모은다해도 모자랄 것이다. 특히 민족통일을 위한 각종 포교활동과 대북 교류 지원사업은 민족의 전통 신앙인 불교가 주도할 만한 일이건만 뒷전에 밀리고 있는 지경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온갖 분쟁과 갈등을 보듬어 국민대중을 위로해 줘야 할 종교가 도리어 그 갈등에 휘말려 들어 신도들의 근심을 야기한다면 물이 거꾸로 흐르는 말세가 아니겠는가. 자비와 관용과 용서와 이해는 불자들의 자랑인지라 심산에서 도를 닦는 자세로 해결 안될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이번 사태도 그런 극적인 타결로 국민대중들에게 오히려 더 큰신뢰와 희망을 줄 수는 없을지 기대해 본다. 그래서 다음 여론조사에서는 불교가 옛 신뢰도를 회복할 수는 없을지…


임헌영/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