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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의 창-마지막 선물

기자명 이영희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비가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장독대 옆에 심어 둔 포도나무는 더욱 싱싱함을 더한다. 이렇게 커 나간다면 어쩜 올 여름엔 포도를 따 먹을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허무한지. 그 작은 포도나무도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데, 인간은 늙음을 주체 못하고한 번 시들어 떠나가면 다시 오지 못하니 말이다. 그 아이가 작은 나무쯤만되었더라도 아이를 보내고 이렇게 가슴 아파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내게는 아이가 셋이 있다. 한 아이는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지만, 두아이는 내 곁을 늘지켜주고 있다. 며칠 전이 그 아이 진이의 생일이었다. 아이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하게 아파오지만, 슬픔의 감정을잡고 놓지 않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무리 되돌리고 싶어도 억겁을 거치며 이미 그렇게 지어놓은 인연의 굴레를 무슨 재주로 돌이킨단 말인가 ….

한동안은 부처님을 잊고 살았다. 유년 시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던 분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부처님을 다시 찾게 된 건, 순전히 나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진이를 잊을 수가 없어서, 옛 시간을 돌이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내고 난 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아이의 왕생극락을비는 기도와 사경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49제를 보내는 동안 줄곧 시골 절에서 기거했다. 딸과 함께 조석예불을 올리며 기도하는 동안, 난 실로 나 자신과 이제까지의 내 생활을 돌이켜 볼 많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내 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고 난 뒤에야 세상에 변하지않는 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 거다. 사실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많은 게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 조건들은 내 몸 하나 치장하고 가꾸는 데모두 소용되지만, 이 몸 조차도 결국엔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야 할 허상아닌가 ….

나의 기도는 아이를 위한 축원과 나를 위한 다짐이었다. 인연도 윤회도업과 죽음도 법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지혜, 세상의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을 지혜로움을 얻게 해 달라는. 겸손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버려야 한다.

아이가 내게 가르쳐 준 것, 그게 그 아이의 생명과 맞바꿀 만한 가치를지니는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지만, 그 아이가 무지한 엄마에게 주고 간마지막 선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영희/김천 대휴사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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