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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재래식 된장 복원하는 이성운·안화자부부

기자명 이상우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된장만들며 기다림을 배웠지요"



인스턴트 식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경이로움이었다. 물만 부으면, 데우기만 하면 거뜬히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럴 때 느낀감정 속에는 조상들의 전통적인 음식에 대한 야릇한 경멸감이 섞여 있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적인 것의 모든 것은 세련되고 본받아야되고 지향해야 하는 것으로 호도된 가치가 우리 사회를 정신없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김치라는 조사 통계도 있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은 시대착오적인향수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회와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안타깝게도 그러한 정서가 강하다.

인간의 습성 중 가장 보수적인 것이 식성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먹어본 멀건 된장국물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향수를 간직하지 못한 세대들은 척박한 인공 조미료와 인스턴트 식품이 그들이 고향으로 각인되고 만다.

불가(佛家)에서는 논리 이전의 세계를 존중한다. 이른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 염화미소의 세계에 불교 정신이 있다. 우리 선인들의삶의 방식이 그런 것이었다. 명백한 통계와 과학적 분석에는 서툴러도자연과 인간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지혜가 발달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조상들의 지혜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 작업이 곳곳에서 곰실곰실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운, 안화자씨 부부는 이제 꽤 많이 알려진 분들이다. 구례읍에서도 사람을 잘만나면 그들이 사는 곳을 안내받을 수 있고 간전면에서는주민 대부분이 알고 있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례하게 길을묻는 도회지 사람들이 있을까봐 마을 사람들에게 늘 송구스런 마음입니다. 이웃들에게 베풀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남은 삶의 화두일 것같습니다.”

부인 안화자씨가 사장이고 자신은 공장장이라고 밝힌 남편 이성운씨의 말이다.
“안타깝게도 고추장은 대량 생산되는 공장 제품에게 자리를 내주고말았습니다. 반복되는 습관으로 정착되는 것이 식성일테니까요. 된장은그 자리가 아슬아슬하던 순간에 저희들이 복원에 착수한 셈입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전통 음식에 조예가 깊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우연한 기회였고 그 기회가 약간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인연의 뿌리와 과정에 연곡사가 있었고 화엄사와 지장암의이정스님이 있었습니다.”

서로 사장이 아니라고 미루면서 안화자씨는 불가와의 인연, 불은(佛恩)을 이야기했다. 그들 삶의 이력을 소상히 밝히는 것은 이 글의 목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호기심의 충족과 도회인의 감상적 접근은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졌다. 성공한 귀농, 성공한 귀거래로 불리는것을 그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약간의 경제적 보상을 성공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다른 방면으로 보상받을 길이 많았을 것이다. 남편 이성운씨는 16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뉴욕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홍콩에서 8년간 의류유통업계에서 일했다. 88올림픽을계기로 귀국해서 동시통역사, 국제회의 기획, 영문잡지 편집 등의 일에관계했다. 부인 안화자씨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인사동에서 전통공예품점을 운영하며 쪽, 치자, 홍화 등의 식물에서 추출하는 천연 염색에 매료돼 중국에서 1년동안 염색기법을 익히기도 했다. 전형적인지식인, 도회인들이었던 셈이다.

89년 인사동 지인들과 겨울 지리산 산행을 계기로 의기투합하는 도반이 되었다. 피아골 연곡사에서 만난 주지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행복해지려면 둘이 합하라'는 한소식이 결정적인 힘이었다. 앞뒤 재지않고 그렇게 결혼했고 4년 후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도시가 인간을 황폐화시킨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깨닫고 대책없는 산골 살림을 시작한것이다. 입에 풀칠만 하면 된다고 각오했기에 남편은 번역일과 지리산생태계를 사진에 담고 아내는 쪽을 키워 푸른 비단 옷을 지었다.

삶은 필연보다 우연이 지배하는 측면이 강하다. 된장과의 인연 또한그러하다. 구수한 된장 찌개를 먹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직접 장을담그기에 이르렀다. 지식인의 긍정적 장점이 배움에 있어서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웃들의 자문을 구하고 음식 솜씨로 정평이 나있는 화엄사 지장암에 계신 이정 스님의 기술 지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행착오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그들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제는 된장만들기에는 박사가 되었다. 화엄사에서 사찰에 필요한 양을 구입해준 것도 큰 발판이 되었다. 이제는 이들의 삶에 불교 정신과 철학을 담는 것이 남은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나 예술, 문화라는 것은 숙성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 방을 날리는 것에 모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 칼에 모든 것을 얻기를 원하고 물거품같은 현상이 갈채를 받습니다. 즉석 문화의 창궐이 인스턴트 식품, 인공 조미료,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식품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래식 된장은 1년에 한 번만생산할 수 있습니다.”

콩을 수확해서 씻고 불리고 삶아 메주를 만들어 곰팡이가 붙어 발효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더우면 메주가 썩고 추우면 얼어버린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메주를 가족의 일원처럼 군불 때는 방의실겅에 걸어두고 그 꼬롬한 냄새를 그윽한 향기로 여기며 겨울나기를했던 것이다. 장을 담글 때는 금줄을 쳐놓고 부정한 기운을 방지코자했던 노력도 이해가 된다. 장맛을 망치면 1년 농사를 망친 것만큼이나난감한 일이었으니까.

기다림과 숙성의 미학이 이들이 산골 마을에서 얻은 첫번 째 소득으로 이해되었다. 냄비 끓듯이 명멸하는 우리의 사회 현상과 문화라고이름지어진 것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윽한 된장맛이 우러나기까지의과정에서 배워야할 것같다.

“욕심을 다스리는 법을 체득한 것이 된장을 만들면서 얻은 또다른깨달음입니다. 몇년간의 시행착오와 고생 끝에 이제 꽤 알려져서 찾는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태 전에는 수요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과욕을 부려보았습니다. 저희들 힘으로 만들 수 있는 된장의 양이 콩400가마니 정도입니다. 적지 않은 양이지요. 그런데 주문이 밀리고 양이 부족하여 700가마니의 콩을 사들였습니다. 콩을 삶는데만 보통 이틀 걸립니다. 하루 7~8시간씩을 삶는데 조금씩 꾀가 발동했지요. 삶는시간을 단축하고 짚으로 매달아야 하는데 새끼가 부족하여 나일론끈을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잔꾀는 금방 나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몇 가지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 필요 만큼만 가질 것,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할 것, 나누는 것이 즐거움이아닌 생활의 일부일 것-이른바 무주상보시가 아닐까.

한국의 사계는 재래 방식의 된장과 간장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풍토라고 한다. 썩는 것과 발효는 엄청난 차이이다. 방치와 숙성이 전혀다른 현상인 것처럼, 특히 구수한 우리 된장에는 그윽한 맛 뿐만 아니라 이 시대가 두려워하는 성인병 예방과 항암 효과는 알려진 바이다.문제는 방법의 전수화 확산이다. 아파트의 구조란 된장을 담그고 달이기에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그 고민의 작은 부분을 이들 부부는 즐거움과 함께 삭혀가고 있다.

취재수첩-버려야 할 것과 복원해야 할 것

지금은 옛맛을 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남루했다고 여겼던 옛것의 정당함을 인정해야 하는 고통의 시대이다. 옛것들을 지키는 방법과 여건은 생각없이 소멸되어 버렸고 아득한 향수만 먼 그리움처럼 남았다.우리가 방문한 시각에도 여러 사람들이 물어물어 찾아왔노라고 된장마을을 찾아왔다.

노부모를 뫼시고 온 젊은이, 중년의 부부, 봉고차를 타고 온 이들,그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수백 개의 장독이 오롯이 늘어선 장독대였다. 그리고 가벼운 탄성들을 내<&04631>는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쉽게 잊고 팽개쳤던 것들의 집합이었다.

식사 시간이 맞아 떨어진 일부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다. 물론 식탁에는 된장 찌개와 푸성귀와 날된장이 주요 차림이었다. 버려야할 것과 복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며 그들은 멀리 지리산이 보이는 섬진강 어귀에서 햇살이 쬐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독 뚜껑을 연다.그리고 흐린 날이면 뚜껑을 닫고.


이상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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