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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차이야기-[19이규보의 차생활[1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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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시, 거문고를 몹시 좋아해서 삼혹호(三酷好)란 호를 가졌던 이규보는 술 못지 않게 차도 좋아했다. 사혹호(四酷好)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다. 이규보 스스로 차를 일컬어 ‘평생동안 지독히 즐기던 것’이라고 했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차시(茶詩)만도 40수 가까이 된다.

이규보가 살았던 고려는 현재를 제외하고는 가장 차문화가 발달했던 시기였다. 왕실 의식에 차가 쓰였고, 불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지던 사원의식과 스님들은 일상적 차생활도 즐길 수 있었다. 또 중기이후부터는 문사(文士)들의 풍류적 차생활이 발달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이규보이다.

이규보가 차를 그렇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규보는 16세부터 4, 5년 동안 선배 문사 해좌칠현과 교유하며 노장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23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25세 때는 천마산에 들어가 시문을 지으며 세상을 관조했다. 백운거사란 호도 이때 갖게 된다.

40세 때 직한림원(直翰林院)이란 관직을 얻기까지 17년 동안을 무신정권 격변기에 방황을 하며 노장사상과 불교에 심취하고 독서와 시, 술, 차로 소일하며 문인으로서 위치를 굳히기도 했다. 40세부터 70세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씨정권 보호속에서 22번이나 관직에 제수되며 영달의 시기를 살았다.

이규보가 일생동안 차와 밀접하게 생활하게 된 것은, 방황시기에 절을 자주 찾았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스님들과 더불어 차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에, 또 본인 스스로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고 했지만, 국가의 중요 문한직을 두루 맡으며 영화를 누릴 수 있었기에, 당시 주로 상류계층이 향유했던 차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규보의 시세계가 호활하며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것처럼, 그의 차생활도 마찬가지다. 절에 가서 자주 질펀히 술을 마시고 연이어 그 자리에서 술을 마셨는가 하면, 한 찻자리에서는 함께 한 4사람 중에 자신만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럽다고도 했다.

차맷돌을 선물로 받아 스스로도 차를 끓여 마셨는가 하면, 일암거사가 차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는 시에서는 ‘관직이 높아도 검소하기 이를데 없는 나인데, 하물며 선다(仙茶)랴’하며 차를 받고 흔연히 기뻐한다. 〈방엄사〉란 시에서는 ‘산사의 스님을 찾아 함께 차마시고 대화를 하며 점점 현묘한 경지에 들어가니, 어찌 술에 취할 필요가 있으리요’라고 하여 술보다 차를 우위에 놓았고, 여러 명이 절의 누각에서 차회를 여는 자리에서 한 잔의 차로 번뇌를 씻기도 했다. 〈부화(復和)〉 란 시에서는 ‘타오르는 불위의 향기로운 차는 참으로 도의 맛’이라고 해, 차에서 도(道)를 발견한 최초의 차인이었다.

그는 때로는 홀로 앉아 적요의 시간을 즐기거나 사색을 위해 차를 마시기도 했지만, 그의 차시 대부분이 절에 가서 차를 마시고 쓴 것을 보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찻자리를 더 좋아한 듯하다. 그런가하면 풍류적 차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차생활을 정신적 반열에까지 올려놓기도 했다. 우리 차역사에서 다신일여(茶神一如) 정신을 최초로 실행하고, 다도(茶道)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이규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규보 차시(茶詩) 중의 백미는 ‘운봉에 사는 노규선사가 조아차를 얻어 보이고, 유차(孺茶)라 이름 붙이고서 시를 청하기에 지어주다’라는 시를 포함한 그 연작 5편이다.

첫번째 시에는 노규선사가 끓여주는 유차를 대하자마자, 궁궐에 차를 조금이라도 더 일찍 따서 바치기 위해서 맹수도 두려워하지 않고, 험난함을 무릅쓰고 차를 따는 남쪽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읊고 있다. 이 시가 손한장이란 벗에게 전해지고 손한장이 보낸 시에 이규보가 다시 운을 맞춰 써 보낸 4번째 시 ‘손한장이 다시 화답하기에 운을 차하여 기증하다’ 이다.


한국다도연구원 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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