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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기자명 채한기
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화려한 단풍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색의 계절 가을엔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떠난다. 박제영 시인은 혹여라도 가을여행을 감행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가 있을까 싶어 ‘가을에는’을 썼나 보다.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가을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 볼 일이다(박제영 시인의 ‘가을에는’중에서)

가을단풍과 함께 고즈넉한 길을 걷고 싶다면 선암사로 떠나 보라. 유서 깊은 산사의 산길 어디를 걸어도 불향과 함께 전해 오는 산사정취에 흠뻑 젖어봄직 하지만 선암사는 고매한 맛을 더하기에 느껴지는 감흥은 유독히 남다르다. 그래서일까. 정호승 시인은 ‘선암사’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고 한다.”

선암사는 눈물 흘리고 싶어 하는 사람을 아늑하게 안아주는 산사이다. 아니 선암사는 ‘눈물’을 ‘미소’로 바꿔줄 수 있는 그런 산사이다.

<사진설명>선암사 돌담을 따라 걷는 산채로가 아늑하다. 달마전 돌담길은 달마전과 무우전 사잇길과 함께 선암사 경내 최고의 산책로이다.

<사진설명>왼쪽>무우전 뒷뜰에 있는 '돌우물' 국보급이라 불릴 만큼 멋지다. 영화 '동승'에 나온 그 '돌우물'이다.오른쪽>삼인당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만발한 '상사화'는 봄-가을에 만끽할 수 있다.

숲에서 이는 바람 佛音인 듯 ‘청량’

선암사 초입에 들어서면 청량한 바람과 함께 울창한 숲이 맞이한다. 세속 번뇌로 쌓인 마음 속 미진도 깨끗이 씻어줄 듯 맑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길게 드리워진 숲길을 오르다 보면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어 있는 측백나무 사이에 자리한 부도전을 만난다. 선암사 옛 승풍을 느낄 수 있는 이 부도전에는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탑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팔각원당형 부도 외에도 사자가 삼층석탑을 지고 있는 부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도전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장승 한 쌍(1987년 제작)이 길가에 서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장승으로 알려진 장승(1907년 제작)이 선암사를 지키고 있었으나 지금은 설선당에 옮겨져 있다. 이 장승 앞에서 합장을 한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두 장승이 사천왕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암사에는 사천왕상이 없다.

<사진설명>선암사 초입의 부도전.

선암사에는 사천왕상도 없지만 주련도 없다. 그 해답은 바로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 만세루 편액에 담겨있다. 편액에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이 썼다고 전해지는 ‘육조고사(六朝古寺)’가 씌어 있다. 그 뜻을 풀자면 ‘육조혜능 대사가 머문 옛절’로 혜능 대사가 조계산에 주석했던 것에 착안해 쓴 글로 선암사가 한국불교의 독특한 선풍을 간직한 사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선암사 진영당을 들여다 보면 ‘육조고사’란 편액이 허투로 쓴 편액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도화상을 비롯해 도선국사, 대각국사, 호암대사를 비롯해 선암사에 임제선풍을 일으킨 침굉현변, ‘여보살’(如菩薩) 금암천여, ‘부루나’ 환월대사, 교가(敎家)의 노호(老虎) 경운원기, 명강백으로 이름을 날린 금봉기림 스님 등이 주석하며 선교 가풍을 드높였으니 사찰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설명>강선루 전경.


아담한 담길 한없이 정겨워

두 장승을 지나면 곧 긴 타원형의 연못에 알 모양의 섬이 떠 있는 삼인당(三印塘)을 만날 수 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삼법인의 불교사상을 담은 특이한 모양의 이 연못에 떠 있는 작은 섬에는 평생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비련의 꽃 상사화가 만발해 있다. 선암사에는 상사화군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봄, 가을에 만끽 할 수 있다.

삼인당을 지나 돌계단 위 두 개의 배흘림기둥에 올려진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 양식의 일주문 앞에서 합장한 후 범종루 아래로 들어서면 선암사 경내다.

단아한 가람배치에 자리잡은 대웅전과 설선당, 심검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2 개의 삼층석탑(보물 395호)이 동서에 각각 배치돼 있다. 대웅전 윗편으로 올라서면 불조전과 팔상전, 원통전과 장경각이 있으며 원통전 뒷켠으로는 달마전, 진영당, 미타전, 응진전이 있다.

20여 동의 전각은 조계산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으로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모든 전각 앞에는 화단을 마련해 놓아 봄에는 그야말로 꽃의 산사로 불리울 정도다. 전각 주변의 각종 꽃과 감나무, 은행나무는 단풍나무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가을의 자태를 뽐낸다.

선암사 담은 모두 흙과 기와로 쌓은 것이어서 인간미를 더해주고, 빛의 농도에 따른 담의 색 변화도 변화무쌍해 감상할만 하다.

<사진설명>원통전 옆에 내린 빛이 예쁘다.


꽃-감-은행나무도 선문답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달마전 뒷뜰에 가보라. 차밭 땅속을 지나온 물을 네 개의 수조가 받고 있는 이 돌우물은 말 그대로 국보급이다. 산과 하늘의 구름을 멋스럽게 담고 있는 돌우물이 바로 영화 ‘동승’에서 동승이 물을 긷던 바로 그 돌우물이다. 선암사에 가면 꼭 무우전과 달마전 사이에 나 있는 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른편으로는 무우전의 담백한 흙벽과 왼편에 조성된 정원과 달마전이 자아내는 풍경은 단풍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있어 그야말로 선암사 경내 길 중 단연 으뜸이다. 눈물을 머금고 선암사를 찾은 사람 누구라도 이 길을 걷다보면 환한 미소를 띄울 것이다.

<사진설명>선암사 해우소인 '뒷깐'.


순천= 글·사진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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