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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문경 봉암사 조사전(祖師殿)

분별심 깨고 참다운 생명력 갖춰야

송나라 원오극근 선사의 게송
선은 관념 못 깨면 나갈 수 없어
틀에 갇힌 사고 거둬야 꽃 펴

문경 봉암사 조사전(祖師殿)  / 글씨 서암홍근(西庵鴻根, 1914~2003) 스님.
문경 봉암사 조사전(祖師殿) / 글씨 서암홍근(西庵鴻根, 1914~2003) 스님.

井底泥牛吼月 雲間木馬嘶風
정저니우후월 운간목마시풍
把斷乾坤世界 誰分南北西東
파단건곤세계 수분남북서동
(우물 밑에서 진흙 소가 달을 보고 울고 / 구름 사이의 목마는 바람에 우는구나! / 건곤의 세계를 꽉 잡아끊으니/뉘라서 동서남북을 나누겠는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제5권 제172번째 공안의 언어를 살펴보자.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1) 선사가 수시하기를 “언어와 동작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여기에 대해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 선사가 말하기를 “언어와 동작이 아니더라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에 석두가 말하기를 “나의 여기는 바늘로 찌른다고 하여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자 약산이 대꾸하기를 “나의 여기에는 마치 돌 위에 꽃을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그만두었다. 여기에 송나라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선사가 송한 게송이 주련의 내용이다. 게송은 두 구절이 더 있으니 다음과 같다. “직중곡곡중직 요평불평빙칭척, 곧은 가운데 굽고 굽은 가운데 곧으니 고르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하려면 잣대를 믿을지어다.”

이 주련을 이해하려면 조동종 지도법 ‘동산오위(洞山五位)’의 정위(正位)와 편위(偏位)를 알아야 한다. 간략하게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 정중편(正中偏)-평등한 그대로 차별이 있는 것 2. 편중정(偏中正)-차별의 현상 그대로 평등한 법 3. 정중래(正中來)-평등의 본체가 여러 현상의 차별에 응하여 다양한 작용을 일으킴 4. 편중지(偏中至)-차별된 현상의 작용 속에서 현상과 본체가 조화되는 경지 5. 겸중도(兼中到)-정(正), 편(偏), 래(來), 지(至)를 원만하게 총괄적으로 아우르며 걸림 없이 자재로운 경지.

정저는 우물의 밑바닥, 니우는 진흙 소를 말한다. 즉, 정저니우는 틀에 갇힌 사고를 말한다. 수행자가 틀에 갇혀 마치 화석 같은 사고를 낸다면 이는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소는 번뇌에 얼룩진 것을 말한다. 우물 속의 진흙 소는 진흙이 모두 다 떨어져 나간 상태이기에 달을 보고 포효하는 것이다.

“진흙 소도 나무 말도 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에 얽힌 ‘단하소불’이라는 내용이 있다. 몹시 추운 겨울날 단하 스님이 어느 사원을 방문했는데 그 절의 스님은 불상을 몹시 위하면서도 정작 추운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하자 스님은 목불을 들고나와 태워 불을 쬐었다. 그러자 그 절 스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발대발했다. 단하 선사는 천연스럽게 “지금 사리가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한다”고 했다. “나무에 어찌 사리가 있다 하느냐?”고 말하는 순간 그 스님도 깨달았다고 한다. 

구름 사이에 있는 목마가 우는 게 아니라 바람이 지나가므로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선은 기존의 관념을 깨지 못하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파단은 잡아끊는다는 의미로 언어, 지식, 교설, 정해 등을 절단하는 것이다. 건곤은 곧 세계다. 하늘과 땅을 제멋대로 움켜쥘 주인공은 누구이겠는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동서남북을 찾음은 곧 분별심을 말한다. 그러기에 정저니우하면 주인공을 볼 것이고 구름 사이로 청풍이 불면 무지한 중생도 참다운 생명력을 갖춘다. 나를 모르고 나를 찾는 인간이 바로 등신 같은 인간이다. 찾음에 있어서 언어(사량, 분별)와 동작(쓸데없는 짓)을 스스로 거두어들여야 바위 위에서 꽃이 무성하게 자란다.

사족을 달면 정위 가운데 편위가 있고 편위 가운데 정위가 있기에 정중래라고 한다. 니우는 분별심이고 분별심은 곧 번뇌다. 그러므로 니우는 편위, 진흙을 씻어내는 우물은 정위에 해당한다. 진흙도 없어지고 물도 없어지고 몰록 소만 드러났을 때가 차별이 융해된다. 형체가 없어진 자리이기에 몰종적 또는 단소식에 비유한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81호 / 2021년 4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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