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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조소정의 ‘연습장에서 튕겨나간 곰’

기자명 신현득

연습장에 쓴 ‘곰’ 글자가 실제 곰이 돼
동시의 세계 두 배로 넓힌 판타지 구성

한글공부 시작한 아이가 쓴 ‘곰’
연습장 밖으로 튕겨져 나와서
크고작은 실제 곰 된 상상 표현
판타지 세계와 기법 동원한 시

동시 안에는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있다. 동시의 표현법에도 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실의 세계를 리얼리티의 세계, 상상의 세계를 판타지의 세계라 부르기도 한다. 온갖 동물, 온갖 식물, 온갖 물건이 말하고 생각하는 세계가 판타지의 세계이다. 온갖 것이 걷고 달릴 수 있는 세계, 온갖 것이 날아다닐 수 있는 세계가 판타지의 세계이다. 나무가 걷고, 올챙이가 난다. 

무엇을 심어도(돌멩이나 연필을 심어도) 싹이 나고, 무엇이나 열리는 나무(강아지 나무, 공책 나무…)가 자라는 곳이 판타지의 세계이다. 몸을 맘대로 바꾸고(환신술), 여러 개 몸으로 나누기도 하는(분신술) 곳이 판타지의 세계다. 불가능이 없는 판다지는 옛날 이야기가 지니고 있던 요소이며, 고대소설의 기법이었다. 소설문학이 리얼리즘(사실주의)만을 수용하고 판타지를 버리게 되자, 동화문학이 먼저 판타지를 받아들였고, 이어서 동시가 이를 받아들여서 동시의 세계를 두 배로 넓히게 되었다.  

판타지 이야기가 제일 많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의 48원이 모두 판타지이며, 극락세계의 팔공덕수나 금은보석으로 된 극락세계의 나무가 판타지 구성이다. 아함부 ‘대루탄경’의 ‘울단월품’에는 수미산 북쪽 울단월 세계에 옷이 열리는 옷나무, 그릇이 열리는 그릇나무, 악기가 열리는 악기나무가 있고,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나무도 있다고 했다.  

‘현우경’의 ‘항육사품(降六師品)’은 부처님이 신통력으로 외도 여섯 스승의 항복을 받는 이야기다. 부처님이 버드나무 이닦이 한 조각을 땅에 묻었다. 그러자 이닦이 조각이 곧 살아나서 무럭무럭 자라더니, 줄기는 높이 뻗어 오백 유순이요, 가지와 잎은 구름처럼 퍼져 높게 하늘을 가렸다. 나무는 뿌리‧줄기‧가지가 모두 보석이었고, 금방 수레바퀴 같은 꽃이 피고, 금방 다섯 말들이 병 크기의 열매가 열렸다. 이 신통력을 보고 외도는 부처님 제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판타지 이야기다. 명작 판타지 동시 한 편을 살펴보자.  

 

연습장에서 튕겨나간 곰 / 조소정

한글 공부하는 민수
연습장에 글씨를 쓴다.

 
    ···.

큰곰 작은 곰 삐딱한 곰
여럿이 모였다. 

곰들은 비좁다고 서로 밀치다가
연습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민수는 꾸벅꾸벅 졸고
곰들은 넓은 책상 위에서 
우당탕탕 탕탕 쿵쿵 신났다.

동시집 ‘연습장에서 튕겨 나간 곰’(2021)

 

한글 공부를 처음 하는 민수가 연습장에 글씨를 쓴다. 아직은 ‘곰’ 한 자밖에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곰 곰 곰 곰…. 곰, 한 자만 연습장 가득 썼다. 큰 글자, 작은 글자가 있다. 예쁜 글자, 삐딱한 글자가 있다. 그런데 이들 ‘곰’이란 글자가 모두 진짜 곰이 되었다. 이것이 판타지 세계요, 판타지 기법이다. 큰 글자는 큰 곰, 작은 글자는 작은 곰, 예쁘고 바른 글자는 예쁜 곰, 삐딱한 글자는 못나니 곰이 되었다. 

연습장은 좁은 공간이어서 여간 비좁은 게 아니다. 그래서 곰끼리 서로 밀치고 밀리다보니 튕겨, 연습장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여러 마리 곰이다. “크앙! 크앙! 크앙!….” 연습장 밖으로 나온 곰은 제 목소리를 내며 책상 위를 돌아다닌다. 시인은 곰의 신나는 목소리, 힘찬 발소리를 아울러 “우당탕탕 쿵쿵”으로 듣고 있다. 짐승의 목소리는 듣기 나름이다. 이렇게 여러 마리 곰이 신이 나서 떠드는데 잠든 민수가 깨지 않는 걸 보니 한잠이 든 모양이다. 

시의 작자 조소정 시인은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아동문예 문학상을 통해 동시 시인으로 등단하였다(2002). 동시집 ‘여섯번째의 손가락’ ‘중심잡기’등, 동화집 ‘쿰바의 꿈’ ‘빼빼로데이’ 등이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81호 / 2021년 4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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