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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 벽 허물어야 사람이 보인다”

  • 사람들
  • 입력 2021.04.20 09:33
  • 호수 1582
  • 댓글 0

조계사 장애인전법팀 원심회 김철환 회장

원심회에서 수어강의 들으며 장애인 인권 관심 갖게 돼
TV 자막 도입 이끌고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위해 앞장
매달 논평 발표하며 불교계 장애인 인식개선‧관심 유도

조계사 장애인전법팀 원심회 김철환 회장이 수어로 부처님을 표현하고 있다.
조계사 장애인전법팀 원심회 김철환 회장이 수어로 부처님을 표현하고 있다.

“우린 모두 온전한 권리를 가진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그저 도와야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님에도 이런 편견에 갇혀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들어 내듯,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쭉 그래왔듯 제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겁니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이 되면 조계사 장애인전법팀 원심회 김철환 회장(56.도현)의 몸은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장애인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정서를 제출하고, 집회 현장에 나가 목소리를 높인다. 30여년간 장애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왔지만 그는 장애인이 아니다. 그러기에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고, “장애 당사자도 아닌데 왜 나서냐”라는 비아냥 섞인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는 “처음엔 ‘내가 장애인이 아닌데 그들의 처지를 이해를 못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갈등을 부추길까봐 걱정도 됐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 이건 장애유무를 떠나 누군가는 해야 될 역할이기에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 회장이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0여년 전 원심회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면서 단절된 삶을 살아간 그에게 부처님께 절을 올린 후 서점에 책을 보러가는 것만이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계사로 향하던 그는 우연히 원심회 수어 강좌 현수막을 보게 됐다.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수어에 순식간에 매료됐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이끌려 원심회에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맺은 청각장애인들과의 인연은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됐다. “원심회에서 수어를 배웠던 6개월의 시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수어로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상처도 극복해갔고, 장애인이 사회, 가정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수어도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 분들의 아픔을 듣고 나니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활동가로 뛰어들게 된 이유죠.”

사진 = 김철환 원심회장 제공
사진 = 김철환 원심회장 제공

매주 일요일 법회에 참석해 수어통역 봉사를 했고, 조계사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때때로 수어 공연도 펼쳤다. 이렇게 2년. 원심회 활동에 매진한 그는 잘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뒀다. ‘장애인복지’라는 단어자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청각장애인들에게 들었던 현실들은 충격이었고 뇌리 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엔 사명감 같은 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세상과 청각장애인들을 연결하는 끈 역할을 자처하며 최선을 다해 통역봉사 활동에 임했다.

“계속 수어를 통해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하다보니 저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장애인들이 많았어요. 특히 1996년에 에바다농아학교에서 벌어진 재단비리, 인권유린 등을 폭로한 학생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길로 한국농아인협회장을 찾아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대책을 세우셔야한다’고 외쳤죠. 그때 협회 건물 지하에서 장애인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이 일로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장애인 인권운동에 발을 들였다. 7년간 협회에 몸담으며 시민단체와 함께 장애인 방송 접근권 제고를 위해 투쟁했다. 중간에 IMF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방송권보장운동을 벌인 결과 1999년 자막 도입을 이끌어냈다. 또 그는 장애인들의 욕구가 늘어나면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쉬리’가 인기를 끌자 영화제작사 ‘강재규 필름’을 찾아가 필름을 얻어내 동판을 찍어 자막을 넣어 비디오를 만들었어요. 그걸 가지고 송파에 있는 회관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대박이 났어요. 그 이후로도 계속 자막작업을 진행했어요. 이 활동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장애인영화제도 개최했죠.”

사진 = 김철환 원심회장 제공
사진 = 김철환 원심회장 제공

‘개척자’ 김철환은 직원으로서가 아닌 내 의견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활동을 원했다. 이후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작은 시민단체를 설립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벽을 허물어야 사람이 보인다”고 강조한 그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 소속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알렸고, 미디어권 요구, 문화 접근성, 인권 향상 등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11년 영화 도가니 상영 후 청각장애인 교육권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공동대책위를 꾸렸고 ‘한국수화언어법’제정 운동에 돌입했다.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해나갔다. 그 결과 2015년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 고유의 언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국회나 방송에 수어통역사가 배치 된 것도, 장애인 대상 국가재난지원금 카드 인증방법 변경 등도 힘겨운 노력 끝에 얻어낸 성과다. 최근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서비스하는 콘텐츠에 자막 제공을 의무화해 장애인의 방송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 = 김철환 원심회장 제공
사진 = 김철환 원심회장 제공

불교계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장애인권운동을 하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만 수만 번. 지치기도 했다. “법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그는 이럴 때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방송으로 또는 직접 사찰을 찾아 법문을 듣고, 불교공부를 했다.

원심회 소속 회원으로 부처님오신날 수어통역봉사 활동을 했고, 매주 일요법회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수어로 통역해 불자장애인들의 신행활동을 도왔다. 장애와 수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 향상을 위해 수어강의도 진행했다. 청각장애 불자들이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경전을 수어로 번역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불교용어가 어려워 한글 경전을 수어로 바꿔 전달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어로 표현하다 보니 깊이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다”고 전했다.

장애인 인권 운동과 꾸준한 봉사활동을 바탕으로 그는 2020년 말 원심회 신임회장으로 임명됐다. 거창한 공약은 없었지만 그는 임기 시작과 동시에 1월1일 ‘장애인 포교의 틀을 다지는 신축년이 되기를 바란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장애인 선교 조직들이 체계화된 것이 보였습니다. 불자였던 장애인들이 개종하는 사례를 무수히 많이 겪었어요. 불교계는 아직까지 개인 원력에만 의존하고 있다 보니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래서 임기를 시작하면서 매달 논평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어나면서 주변으로 퍼져나가잖아요. 불교계에도 반향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제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을까요?”

원심회가 조계사 산하단체인 만큼 논평을 낼 땐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장애인 포교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지현 스님이 계시기에 법회와 수어강좌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고, 불교방송과 장애인식 개선 MOU도 체결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수어통역의 일상화와 불교계 인식개선을 이루고 싶다는 김 회장은 “원심회가 그동안 열심히 불자장애인을 위한 토대를 닦아왔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했기에 다시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며 “논평에서 시작된 작업 과정은 이제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년회와 합동법회를 진행하고 수어 챌린지를 통해 인식개선과 관심을 유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 사람이 움직이면 힘이 실리면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3인의 법칙을 믿는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협약을 통해 각 사찰마다 거점 지역을 만들어 원심회와 같은 장애인전법팀을 만들고 나아가 점자, 수어통역 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교는 모든 중생을 보듬고, 상대를 인정해주며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자비의 종교”라며 “장애유무를 떠나 누구나 불교의 주체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불성을 지닌 존재임을 일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582호 / 2021년 4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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