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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61칙 수산차경(首山此經)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의미

선종은 결코 경전 무시하지 않아
다만 경전에 얽매임 경계할 뿐
침묵은 말 없이 말을 하는  언설
분별에 대한 적확한 대답은 침묵

승이 수산에게 물었다. “일체제불은 모두 이 경전에서 출현했다는데, 그 경전이란 어떤 것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조용히 하라. 조용히 있어라.” 승이 물었다. “그러면 경전을 어떻게 수지해야 합니까.” 수산이 말했다. “오염시키지 말라.”

선종에서 널리 말하고 있는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대한 의미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우선은 선종의 경전관에 대한 의미이다. 선종에서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깨침이다. 그 깨침을 위해서 발심을 하고 수행을 하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선지식의 역할이다. 선지식은 구도자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안내해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점검해주고 정진하도록 자극을 부여한다. 그와 같은 교육방식 가운데 가장 흔히 활용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곧 경전으로 대표되는데, 그것은 언설에 의거하여 문자로 표출되어 있다. 따라서 부득불 경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선종의 경전관이다.

이후로 선종에서는 경전이 결코 무시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된 적이 없다. 따라서 항상 경전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불립문자는 문자로 형성된 경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반증으로 제시되었다. 다만 경전에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가 강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전이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의미에서 수단과 방편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경전 자체로서도 큰 의미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구도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로서 충실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 선종의 경전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립문자라는 말은 정작 불리문자(不離文字)일 수밖에 없다.

일체제불이 경전으로부터 출현했다는 말은 ‘금강경’에 보이는 말이다. 나아가 일체제불의 깨달음도 경전으로부터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 경전이란 다름아닌 ‘반야경’을 가리킨다는 것은 불교의 교학적인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승이 수산에게 질문한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 경전에 익숙했던 승은 경전을 초월하는 방법에 대하여 묻고 있다. 그 어떤 경전인가 하는 것은 경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가리킨다. 그 경전이란 종이로 만들어진 경전이면서 자신의 육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수산은 이미 그와 같은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있었기에 ‘조용히 하라, 조용히 있어라’고 일러준다. 조용하다는 말은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자 승은 다시 그와 같이 분별심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전을 어떻게 수지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제 제법 질문다운 질문을 해오자, 수산은 그제서야 ‘오염시키지 말라’고 일러준다. 오염시킨다는 것은 경전을 독송한다거나 수지한다거나 하는 행위가 순수한 독송이 아니고 순수한 수지가 아니라 경험 쌓기 내지 지식 쌓기로 활용되는 것에 해당한다. 때문에 수산은 오염시키지 말라고 당부하는 한 마디의 말로써 수지하는 일체의 방식을 일러주고 있다.

전자의 답변에서 조용히 하라는 것은 침묵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침묵이란 묵언이다. 묵언은 묵(黙)이라는 언설이기도 하다. 곧 말이 없는 말에 해당한다. 침묵의 그 어떤 설법보다도 힘이 실려 있다. 어떤 경전인가 하는 분별심에 대한 단적인 답변으로서 침묵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답변에서 오염시키지 말라는 것은 대단히 자상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 자상한 가르침에는 단호하게 언설로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나대지 말 것을 경계시켜준다. 그러한 분별의 일체가 바로 청정을 오염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오염시키지 않는 그 자체가 바로 청정이고 무분별이며 무집착을 의미한다. 수산은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 개념으로서 무분별과 무집착의 의미를 오염시키지 말라는 한 마디로 일러주고 있다. 그 한 마디는 전자의 침묵의 가르침에 통한다. 또한 오염시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해서 부정의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경전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82호 / 2021년 4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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