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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들음의 초월

기자명 이제열

들음의 궁극은 들음서 벗어나는 것

아난의 미완성은 대·소승 공통
벽화 중 한발로 서있는 동자는
아난 도가 완전치 못함을 상징
역사사실 떠나 불법 묘의 담겨

제1차 결집이 이루어질 당시 아난존자의 나이는 55세 초로의 나이였다. 하지만 대장로 마하가섭존자 눈에는 이런 아난존자가 풋내기로만 보였다. 아난존자는 대중들 앞에서 마치 자신을 애처럼 꾸짖고 나무라는 가섭존자를 향해 “저도 머리가 희끗희끗 센 나이라면서 이에 맞는 대우를 해달라”고 항변한다. 25년간 부처님을 극진히 시봉하고 다문제일의 제자로써 경전 결집에 주된 역할을 했음에도 가섭존자는 아난존자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은 모양새다.

‘쭐라왁가’의 기록에 의하면 가섭존자는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모시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몇 가지 실수를 들어 대중에게 참회를 요구한다. 이에 아난존자는 내키지는 않았으나 결집의 원만한 성공을 위해 가섭존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참회했다.

아난존자가 교단 내 위치나 역할로 볼 때에 크게 대우받아야 할 인물임에도 그는 가섭존자나 사리불존자 등에 비해 위축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초기 경전에서 뿐만이 아닌, 대승경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능엄경’에서는 아난존자가 많이 듣기만 하고 수행을 완성하지 못해 음굴의 마등가라는 여인의 딸에게 유혹을 당해 계체를 깨뜨릴 뻔한 이야기가 나온다.

불법을 많이 들었다고 불법이 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난존자에 관한 일화는 중국 선종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각색됐다. 초기경전에는 아난존자가 칠엽굴에 들어가기 전 아라한이 되기 위해 경행으로써 오온을 통찰했고, 그 결과 가섭존자의 요구대로 마침내 성과를 증득하고 신통으로써 잠긴 문의 열쇠구멍을 통해 결집 장소인 칠엽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선종 문헌에는 가섭존자가 아난존자에게 “그대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경전의 말씀들이 오히려 장애가 되어 도를 깨치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들은 말씀들을 모두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그대는 그 방법으로 칠엽굴 앞에서 참회를 하되 두 발을 딛고 참회할 것이 아니라 한쪽 발은 들고 한쪽 발로만 서서 참회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가섭존자는 “아난 그대가 도를 깨쳤다면 그 신통력으로 굴 앞에 세워진 찰간대를 부러뜨리라. 그러면 비로소 굴 안에 들어 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큰 사찰에 가면 한 동자가 굴 앞에서 한발로 선채 합장하고 있는 벽화가 있는데 바로 아난존자가 참회하는 광경이다. 아난존자가 한 발만 땅에 딛고 서 있는 것은 그의 도가 완전치 못함을 상징한다.

아난존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여기에는 깊은 상징적 의미가 담겼다. 가섭존자가 아난존자에게 도를 깨달은 징표로써 칠엽굴 입구에 세워진 찰간대를 부러뜨리라고 한 대목이 바로 그렇다. 불교에서 찰간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바로 부처님 말씀인 교법이며 경전이다. 예로부터 경을 설하는 법회가 열릴 때면 찰간대에 깃발을 올렸다. 사찰 찰간대에 깃발이 펄럭이면 경전 법회가 열린다는 신호였다. 사람들은 멀리서 그 깃발을 보고 법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런 찰간대를 가섭존자는 부러뜨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바로 수행의 완성은 궁극적으로 부처님의 교설마저 벗어나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무리 금구옥언의 부처님 말씀이라도 듣고 이해하였으면 버려야한다. 지식과 앎의 차원에 머물러만 있다면 그 경전은 또 다른 번뇌가 되어 깨달음을 방해한다. 선종의 이러한 관점은 ‘법도 하물며 버려야 하거늘 비법이랴(法尙應捨 何況非法)’고 한 ‘금강경’ 사상과 맞닿아있다. 뗏목으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야한다. 불교에서의 들음은 들음의 벗어남에 있다. 흥미로운 일은 선종 기록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외별전의 심인법을 전수 받은 사람은 가섭존자 다음에 아난존자라는 점이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가장 으뜸 되는 다문(多聞) 제자였음에도 다문을 버린다. 그 결과 가섭존자로부터 선종의 2대 종사로 인가를 받는다. 부처님의 제자가 마하가섭의 제자로 다시 변화된 것이다. 이 일화가 비록 중국 선종의 자작극이라 하지만 그 속에는 불법의 묘의를 살리고자 했던 진실들이 숨겨져 있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82호 / 2021년 4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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