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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비구니 차별법의 개정

총무원 직제에 ‘비구니 부원장제’ 신설 필요

계급차별 무섭던 인도서 여성 출가·성불 설한 분이 부처님
부처님 평등 정신 되살리려면 비구승가 의지와 결단 필요
종학 차원서 논의결정한 뒤 종법 기구 통해 의결 선포해야

신 교수는 비구니 차별 등 종단에 산적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선행적으로 ‘종학’을 연구하는 종단법령에 의한 기구가 설치되고 운영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전국비구니회 총회에 참석한 비구니스님들.
신 교수는 비구니 차별 등 종단에 산적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선행적으로 ‘종학’을 연구하는 종단법령에 의한 기구가 설치되고 운영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전국비구니회 총회에 참석한 비구니스님들.

요즈음 한국의 불교 교단에 비구니승가를 차별하는 행위가 있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들이대는 ‘부처님의 말씀’을 3장으로 엄연히 수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구니승가에 관련한 ‘팔경법(八敬法)’이다. 이 법을 설하신 세존의 뜻이나 배경이나 그 후 조문의 변형에 관한 학자들의 축적된 연구가 없지도 않다.

학자들이 사용하는 문헌학적 방법, 고고학적 방법, 철학적 방법, 역사학 방법, 문학적 방법, 언어학적 방법, 종교학적 방법, 민속학적 방법, 의례학적 방법, 등등 그런 ‘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으로 비구니 차별 조항을 아무리 연구하고 발표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데에는 원인이 있다. 불교의 신앙과 수행 공동체 현장은 생을 걸고 하는 당사자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게다가 한 수행자 개인의 선택이나 결단을 넘어서는 공동체에 관련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 ‘사방승가’이던 ‘현존승가’이던 모여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해결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 ‘종학(宗學)’의 출발이다.

많은 절에서 설행하는 ‘보살계’만 해도 그렇다. ‘사분율’과 ‘범망경보살계’를 함께 수지하는 것은 계목 사이에 배반 현상이 생긴다. 쉽게 말해 모순이다. 그런 사실을 위에서 말한 문헌적 자료를 통해 철학적 방법과 역사학적 방법으로 밝힌 논문들이 현재 학계에 통용되고 있지만 현실은 안 바뀐다. 종(宗)을 세운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다시 거론한다.

“당부소숭왈종(當部所崇曰宗)”이란 말을 상기하자. “해당하는 부파에서 숭상하는 바를 종이라고 한다.” ‘종’이란 어떤 한 수행공동체에서 핵심 또는 궁극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이다. 불교의 핵심 주장은 인연(연기)인데, 그것의 의미 해석을 놓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부파들이 생겼다. 강원이나 승가대학에서 다 배우는 내용이니 더 논의하지는 않겠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종’에 대한 반성도 없이, 또 초기불교 ‘율장’에 관한 고민도 없이 그저 현실적 이유만으로 ‘종단’을 세웠다면 그것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설사 이런 저런 현실로 종단을 차렸으면 지난 일은 덮어두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종학’의 논의를 거쳐 종단의 입장을 정리해 나아가야 한다.

필자는 비구니승가를 차별하는 현실적 사례를 들추려는 게 아니다. 더구나 비구승가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불법(佛法)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 법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평등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계급 차별이 무섭던 당시 인도에서 여성의 출가와 성불을 설하셨던 분이 부처님이시다. 그런 세존의 뜻을 따르자는 것이다.

출가 불자들은 다 알겠지만 재가 불자들을 위해 환기한다. ‘팔경법’은 율장마다 표기에 차이는 있어도 내용상 그것은 ‘계’가 아니고 ‘법’이다. 부처님의 말씀이니 ‘법’이다. 고칠 수 없다. 경률론 삼장의 ‘경’에 해당한다. 보통 계와 율은 현실에서 사건이나 사례가 선행적으로 발생하면 그런 뒤에 그 문제를 공동체에서 합의하여 정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달라졌다. 인권이니, 성 평등이니, 인구 감소니 이런 등등은 필자가 말 안 해도 이미 세상에 넘쳐나는 이야기이다. 

이 문제를 ‘사분율’ ‘팔리율’ ‘오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구담미경’ 등등 ‘경’과 ‘논’의 조목들을 읽어보면 필자가 무슨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독자들도 알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승단에서 ‘사분율’을 수지한다고 하니 일상에서 제대로 하는지는 불문하고, 그 조목을 들어본다. 부처님의 말씀은 한 글자도 고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옮겨야 마땅하지만 제한된 지면에서 문제를 공유하자는 필자의 뜻이니 참회하고 용서를 빈다.

①백 살 먹은 비구니라도 신참내기 비구에게 절하는 등 위로 모셔야 한다. ②비구니는 어떤 방법으로도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파계 등등을 해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③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하고,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다. ④사미니계를 배워 마치면 비구에게 구족계를 받겠다고 신청해야 한다. ⑤비구니가 승잔죄(대중들에게 잘못을 참회하여 용서받으면 승단에 남을 수 있을 정도의 죄)를 범하면 비구와 비구니 두 대중 속에서 보름 동안 마나타(일정 기간 동안의 자격 정지)를 행해야 한다. ⑥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 ⑦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해서는 안 된다. ⑧비구니승가는 하안거를 마치고 비구승가에 가서 안거 동안 보고, 듣고, 의심스런 것을 여쭈어야 한다.

부파들이 전승하는 율장에 따라 약간씩 자구의 차이는 있으나 비구니와 비구를 차별함에는 일치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은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남자이니 아무리 어려도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법이 없을 텐데, 승가에서는 ①을 지키라고 한다. 승가에서 타인이 잘못했을 때 참회하도록 권하지 않아도 죄가 됨은 다 안다. 요즈음 재자불가들에게도 설하는 ‘범망경’ 48경계에도 ‘계를 범한 이를 참회시켜라’는 조목이 있는데도, ②와 ③을 지키라 한다. 부처님께서 ‘팔경법’을 설하실 당시는 비구들만 있었기 때문에 ④⑥⑦⑧을 말씀하시는 게 당연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법을 설하시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실제 있었다. 1950년대 비구니 ‘강사’가 없던 시절, 공론에 의해 운허 스님께 비구니를 교육하게 하고 전강(傳講)하시게 했던 사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비구니승가가 존재한다. 그것도 3장에 대한 지식이나 청정성으로 보나 대중 통솔력으로 보나 보통 비구보다 출중한 분이 계신다. 봉녕사의 묘엄 스님, 운문사의 명성 스님 등 많은 분들이 그러시다. 또 그분들께서 대를 이을 비구니 제자들을 배출하셨다. 게다가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비구니들이 100명을 전후한다. ⑤도 그렇다. 동일한 ‘승잔죄’를 짓고 비구는 비구승가에서만 처벌받고, 비구니는 양쪽에서 처벌받는다.

필자는 이상의 ‘팔경법’ 자체의 조문이나 유래 등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런 연구는 엄밀한 학적 방법에 의해 공적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마성 스님(팔리불전연구소 소장)의 논문에 집약되어 있다. 마성 스님의 논문에는 외국에서 발표된 연구 성과는 물론 국내의 이자랑 교수, 해주 스님, 신성현 교수 등의 성과를 비평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부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고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현재 한국 승단의 현실을 고려한 해결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필자의 소견을 첨부하면 총무원 직제에 ‘비구니 관련 부원장제’를 신설하여 2부 승가제로 독립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문제는 종단의 종권을 쥐고 있는 비구승가의 의지이고 결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를 대상으로 엄밀한 ‘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힘을 빌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종학’ 차원에서 결정하고, 그런 다음 종법 기구를 통해서 의결 선포해야 한다. 물론 선행적으로 ‘종학’을 연구하는 종단법령에 의한 기구가 설치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82호 / 2021년 4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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