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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종교 존중하되 이용당하진 말아야

기자명 이병두

세계 가톨릭교회를 지배하는 로마 교왕청과 중국 정부 사이에 주교 임명권을 둘러싸고 이어져온 갈등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교왕청에서는 주교 임명이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 요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자신들이 선발한 주교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교왕청과 중국 정부가 서로 “이번에 밀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갈등은 앞으로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해올 것이므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하는 가톨릭 쪽의 사정은 많은 이들이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주교 임명 문제에 중국 정부가 왜 고집을 부리는지 이유와 배경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명청(明淸) 시대에 중국에 온 수많은 가톨릭 선교사들이 가끔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였지만,  겉으로는 현지 관습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인 덕분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884년에 베트남 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나자 베트남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은 정탐활동을 펼치고 신자들에게 프랑스 군대를 돕게 하거나 무장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하고, 성당에 보루를 쌓고 군사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강인철, ‘한국 천주교의 역사사회학’) 역대 왕조 말이면 번번이 종교의 외피를 쓴 저항군이 일어나 중앙정부를 무너뜨린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은 종교 문제에 민감하다. 게다가 청불전쟁에서 ‘이적행위’를 했던 가톨릭에 대하여는 씻기 어려운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왕청의 중국 내 주교 임명 요구와 시도를 ‘내정간섭’이라며 거부하는 것이다.

1801년의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1901년의 제주민란 발생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가톨릭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을 때에는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이토의 죽음은 공공의 불행이다. 증오를 일으켜야 할 사건이다”라고 비난하며 “이토가 한국에서 많은 공적을 쌓았으며,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는데 한국인들은 그 은혜를 모르고 있다”라는 기록을 일기에 남기기도 하였다.(‘뮈텔주교 일기’) 심지어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 재판장이 “종부성사를 할 신부를 파견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이를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단 한 사람도 “가서는 안 된다”는 공문을 전국에 보내기까지 하였다.

1945년 8월에 전쟁이 끝나고 일본인들이 물러갈 때에도 대구교구의 하야사카(早坂久兵衛) 주교는 그대로 남아 1946년 1월 사망할 때까지 교구장직을 지켰다.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에서는 거의 모두 해방과 동시에 친일파 처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져 기존 종권 구도가 뒤집히거나 교단이 분열되기도 하였지만,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이런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본인 주교가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그 배경에 로마 교왕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홍경래란·동학농민항쟁 등 조선시대의 숱한 반역 사건 관련자들을 처형했던 곳에서 가톨릭교도들이 죽음을 맞았다는 이유로 그곳을 ‘성지’로 선포하고, 천도교 등의 반대를 무시한 채 국유지에 중앙정부와 서울시·중구청의 예산으로 거대한 시설을 지어 자신들만의 ‘순교 성지’로 굳히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현대불교미술전 空’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해 여기에 불교를 끌어들이는 작전을 펼치는데, 저들의 의도를 모르는 조계종 총무원은 후원 단체로 이름을 올렸다.

이웃종교와 화합하고 함께 평화를 가꾸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용당하지 않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항해에 지쳐 죽어가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에게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주며 살려냈지만, 노예가 되거나 몰살당하고 살아남기 위해 강제 개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백 년 전 중남미 대륙 선주민들의 슬픈 역사를 우리가 따라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83호 / 2021년 4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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