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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문경 봉암사 동방장 ②

기자명 법상 스님

암자는 주인이 아닌 수행자의 자리

‘태고화상어록’에 실린 시문
도량은 수행 공간 아닌 마음
부처는 참된 마음의 다른 이름

문경 봉암사 동방장 2 / 글씨 해정 김세호(海庭 金世豪).
문경 봉암사 동방장 2 / 글씨 해정 김세호(海庭 金世豪).

先有此庵 方有世界 世界壞時 此庵不壞
선유차암 방유세계 세계괴시 차암불괴
庵中主人 無在不在 月照長空 風生萬籟
암중주인 무재부재 월조장공 풍생만뢰
(먼저 이 암자가 있고 세계가 있게 되었으니 / 세계가 무너져도 이 암자는 무너지지 않으리라. / 암자 가운데 주인이야 있고 없음이 없으니 / 먼 하늘에서 달이 비추니 만 개의 피리 소리가 바람일 듯이 하네.)

봉암사는 특별선원으로 일반 불자들의 접근이 어렵다. 이에 봉암사 주련을 연이어 소개하게 됐다. 봉암사 동방장에는 두 부분의 주련이 있다. 이번에는 14회차 외 나머지 부분이다. 

이 주련은 ‘태고화상어록’에 실린 석옥청공(1727~1352) 화상의 시문이다. ‘수선결사문과석’에도 77세에 적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문의 배경을 살펴보자. 

“정해년 7월인 1347년 내가 있는 산석암에 이르러 고요하게 지내면서 반 달 동안 불도에 대해 주고받으며 그를 지켜보았는데 행동은 침착하고 점잖으며 말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었다. 그와 헤어질 때가 됐기에 전에 그가 지었던 태고암가를 읊어보면 순박하고 중후했으며, 글귀를 음미해보면 한가로운 듯 담연했다. 이러함은 공겁이전의 소식이라서 요즘의 날카롭고 과장된 문장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기에 태고라는 이름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남의 요구에 응답을 끊고 살았는데 나도 모르게 태고암가를 지은 종이의 여백에 노래를 적노라.” 

이 시문의 핵심은 암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파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석옥 선사의 의중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석옥 선사는 원나라 스님으로 임제의현의 제18세 법손이다. 고려 말 충목왕 2년 태고보우 스님은 원나라로 들어가 하무산 아래 천호암에 수행하던 석옥청공을 찾아가 수학하고 법기를 인정받아 고려로 귀국해 임제종의 적통을 이었기에 역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암자는 큰절에 딸린 작은 절이 아니라 마음을 암(庵)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천수경’의 ‘도량청정무하예’를 바로 알면 이해가 저절로 된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자기의 깜냥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이 깜냥을 불교에서는 근기(根機)라고 해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나눈다. 도량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다고 해석하고 수행의 공간으로만 한정 지으면 중, 하근기이며 도량이 심체인 줄 안다면 상근기에 해당한다. 시문에서 말하는 도량은 수행의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 암자가 있고 세계가 있다함은 심조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유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시대에 용성진종(1864~1940) 스님이 저술한 ‘심조만유론’에 보면 “불교는 마음을 가르치는 종교이지 하늘이나 신이나 해와 달과 별 등을 받드는 종교가 아니다. 오직 마음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밖에 마음이 없으니 부처는 바로 참된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나의 본래 참된 성품이 천지만유를 창조한 것이지 따로 하늘과 신이 있어서 대지만유와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세계가 비록 무너진다고 해도 암자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와 같다. 

암자는 주인이 아니라 수행자가 머무는 곳이다. 그러므로 주석이며 주석이 아니다. 심주도 마음이 편히 머무르다 또는 선정으로 구현된 경계에 머무른다는 표현이다. 마음은 주인이 있음이 아니고 용(用)하는 것이기에 심용(心用)이라고 하며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월은 마음 달을 말한다. 하늘의 높이 뜬 달이 천하를 조요함에 있어서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듯이 심월 또한 그러하다. 바람이 부니 만 개의 피리 소리가 들리듯 하다고 했음은 분별과 망상이 사라지니 너와 내가 사라져서 모두가 원음을 내는 것이다. 고로 고승이 가로되 곳곳이 부처 아님이 없고 들리는 소리마다 모두 묘음이라고 했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84호 / 2021년 5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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