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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앵무새 - 하

타인과 공존하는 선한 관계성 지지

곡식 날라 키워준 은혜 갚는 등
부모 봉양 ‘효’ 주제 설화 다수
대가 없는 자식의 사회적 도리
약한 존재 외면 말라는 가르침

앵무새는 인간의 말을 따라하는 영리한 새이지만 감정과 정서도 발달하여 인간과 교감을 나누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다. 지능이 높고 예민한 감성을 지닌 영묘한 동물인 앵무새는 항상 무리를 짓거나 짝을 이루어 다니는 특징이 있다. 앵무새는 소통할 대상이 없거나 혼자 오래두게 되면 자해(自害) 증상을 보이므로 반려조로 삼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불교설화에서도 앵무새는 주로 무리의 왕으로서 집단적 사회생활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들을 주요한 소재로 삼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효(孝)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눈이 먼 부모를 봉양하는 앵무새의 본생담은 앵무새가 갖고 있는 이러한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불교 이야기이다.

늙은 부모를 모시는 앵무새 왕의 이야기는 ‘살리께다라 자따까(Sālikedā ra-jātaka)’에 등장한다. 옛날 마가다왕국의 살린디야 마을에 꼬시야(Kosiya)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넓은 땅에 쌀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앵무새의 왕과 앵무새 무리들이 꼬시야의 넓은 논에 가서 부지런히 곡식을 먹어치운다. 논을 지키는 소작농이 열심히 새들을 쫓아보려고 하다가 앵무새 무리 속에서 부리 안에 곡식을 가득 채워 날아가는 앵무새 왕을 보게 된다. 그는 욕심 많은 앵무새를 보았다고 바라문에게 고하고, 꼬시야는 말털 올무로 그 새를 생포해 오라고 명한다. 꼬시야는 잡혀 온 앵무새 왕에게 다른 새처럼 평범하게 곡물을 먹고 달아나지 않고 부리 안에 가득 음식을 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 앵무새의 왕은 자신은 부모가 키워준 빚을 지고 있으며, 지금은 그들이 나이가 들어 그 빚을 갚는 중이라고 답한다. 바라문은 앵무새 왕이 지키는 고귀한 삶의 원리에 감탄하며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금 접시에 옥수수와 설탕물을 담아 대접하고 자신의 땅까지 하사한다. 

또 다른 앵무새 이야기로는 ‘수까 자따까(Suka-jātaka)’가 있다. 히말라야에 사는 앵무새 왕은 나이가 들어 앞이 안보이기 시작하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아들은 부모를 둥지에 모시고 음식을 가져다 봉양했다. 어느 날 망고섬에 내려가 황금망고를 맛 본 아들 앵무새는 그 맛에 반하여 배불리 먹고 그 열매를 부모에게 가져다 드린다. 이를 맛 본 아버지 앵무새는 그 망고가 황금망고임을 알아채고 다시는 섬에 가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아들 앵무새는 다음 날에도 망고섬으로 날아가 망고를 맛본 후 아버지를 위해 열매를 입에 물고 하늘을 날아오르지만 깜박 잠이 들어 열매 하나를 바다에 떨어뜨린다. 물 표면을 낮게 날면서 망고를 찾던 앵무새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힌다. 아들을 기다리던 앵무새의 왕은 아들이 망고섬에 갔음을 알아차리지만 둥지에 갇힌 채 아사(餓死)하고 만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버지 앵무새가 부처님이셨고, 어린 앵무새는 과식으로 죽은 형제의 전생이었다.

앵무새 자따까는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식이 그들을 모시고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를 이야기한다. 성인이 되어 정당하게 획득한 부(富)는 가장 먼저 부모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이는 앵무새가 ‘부모에게 진 빚(iṇa)을 갚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과 관련이 있다. 바라문을 감동시킨 앵무새의 고귀한 삶의 원칙은 아무 대가도 없이 자신을 길러 준 부모에게 물질적 후원을 해주어야 하는 자식의 사회적 도리를 말한다. 부처님은 출가자도 부모가 어려운 경우 그들을 위해서 탁발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사치스러운 후원이 아니라 생계가 어려운 부모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적 가르침이다. 앵무새 이야기에서 망고라는 맛난 과일은 부모를 잠시 기쁘게 하고 배부르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노후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없는 음식을 상징한다. 반면 부모에게 지속적으로 물어다 줄 수 있는 쌀알은 그들의 굶주림을 제거해주는 겸손한 음식이 되어 부모를 천천히 늙게 하고 노후를 풍요롭게 하는 참된 음식을 말한다. 즉 앵무새 에피소드는 부모가 사회적으로 약한 존재가 되었을 때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공존하면서 살 수 있도록 기본적 복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가족의 전통적이고 선한 관계성을 지지하는 불교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84호 / 2021년 5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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