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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제64칙 임제취모(臨濟吹毛)

반야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서는 깨우칠 수 없다

납자 교화할 때 분별심 없애주려 
때리는 등 다양한 선문답 활용해
칼날 위에서 수행 뜻하는 취모검 
임제 대답에 다루는 법 물었어야

승이 임제에게 물었다. “취모검이란 무엇입니까.” 임제가 말했다. “위험하다, 너무 위험하다.” 승이 예배를 드리자, 임제가 곧장 때려주었다.

임제는 임제의현(?-867)으로 중국 임제종의 개조이다.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은 조계혜능(638-713)의 법맥을 받았고, 임제의현의 사상을 이었으며, 대혜종고(1089-1163)의 수행법을 수용하고 있다. 임제는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도 선종에 큰 족적을 남겨놓은 인물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단순히 취모검(吹毛劒)이라는 용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취모검은 대단히 예리한 칼이다. 칼날 위에 머리카락을 가로로 놓고 입으로 훅 불면 머리카락이 싹뚝 잘린다는 칼이다. 이에 여기에 제기된 질문은 취모검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질문의 주제로 삼고 있는 공안이다. 곧 취모검은 칼날 위의 수행을 의미한다. 예리한 칼날 위에서도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달리 취모검은 뛰어난 지혜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취모검이란 무엇인가, 취모검을 어떻게 터득해야 하는가, 취모검을 자신의 수행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취모검을 교화방식으로 누구에게 써먹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 의견을 묻고 있다.

임제는 납자들을 교화해줄 경우에 실로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납자의 질문에 대하여 분별심을 없애주려는 의도에서 주장자를 들어서 다짜고짜로 때려주기도 하고, 느닷없이 크게 고함을 질러대기도 하며, 질문한 말을 가지고 그대로 답변으로 해주기도 하고, 질문한 말을 그대로 되질문의 말로 활용하기도 하는 등 자유자재로 선문답을 활용한 까닭에 혹자는 임제의 입술에서 빛이 난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본 문답에서 임제는 질문한 승에게 ‘위험하다, 너무 위험하다’고 주의하라고 일러준다.

취모검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그토록 유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취모검을 잘못 활용하기라도 한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 그런 만큼 취모검을 활용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취모검을 활용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깨침의 지혜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취모검은 반야의 지혜를 상징한다. 반야의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서는 제아무리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더라도 그저 무심결에 흘려버리는 가담항설에 불과하다. 이에 질문한 승이 어떤 의미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더 이상 언설을 동원할 수가 없다고 판단을 하고는 감사하다는 의미로 임제에게 예배를 드렸다. 임제는 그와 같은 승의 입장을 이미 헤아리고 있다는 듯이 그런 정도의 이해로서는 얼토당토않다는 점에서 가지고 있던 주장자를 가지로 승을 때려주었다.

임제가 주장자로 때려준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승의 행동에 대하여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출한 것이다. 취모검이 위험하다면 위험하지 않게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은 질문 대신에 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승 자신의 이해를 보다 더욱 깊이 다지지 않았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임제의 답변을 그토록 가볍게 수긍해버렸다는 알량한 깜냥을 고스란히 노출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임제는 선문답이 이런 정도로 쉽게 해결되는 것이라면 승은 멀리서 임제를 찾아올 필요도 없었고, 임제는 구태여 승에게 그토록 자상한 가르침을 베풀어줄 이유도 없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승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임제는 속 깊이 ‘노파심절(老婆心切)’한 모습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까지 무한책임을 지려는 스승의 자격이고 자비이다. 임제는 천 명 이상의 대중을 거느리면서 크게 고함을 해대는 할(喝)과 사정없이 내려치는 방(棒)을 구사함으로써 아직 깨치지 못한 납자를 함께 이끌고 가려는 제스처였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85호 / 2021년 5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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