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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엔 없을 것 같던 미래…부처님 만나 베푸는 삶 발원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동국대 총장상 - 김상아

반 친구들과 거리두기는 세상 향한 저항이자 스스로 만들어 낸 벽
의욕 없이 들어간 불교동아리서 원장스님 지도 아래 불심 키워가
템플스테이로 경험한 긍정적인 변화…사회복지사 되어 회향할 것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수많은 날 가슴 졸여가며 발버둥 치고, 눈코 뜰 새 없이 힘겹게 살아온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맹구우목(盲龜遇木)보다 더 어려운 몸으로 잉태 되고서도 기억되는 인연의 바람조차 느끼지 못했다. 깊은 어둠이 내리면 복받쳐 오르는 울혈로 시든 꽃 영혼 없는 박제마냥 가위눌리다 스스로 지쳐갔다. 실낱같은 미련을 아픈 마음 가리개 삼아 이 어둠이 걷히기를 울타리 없이 떨고 있는 초라한 별빛으로 위안을 삼았다. 스스로 도진 병은 온 몸 구석구석 메말라 뒤틀어지고 엉클어진 가슴으로 시린 아픔과 함께 누구를 향한지 모를 한숨 섞인 기도만이 흘러 나왔다.

기억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이미 진여원이란 시설에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뒤에 알게 됐지만 입양 후 파양까지 겪어 심한 분리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다 그런 줄 알고 생활하다 햇살이 퍼진 봄날 즈음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입학하게 됐다. 유치원에 입학하고서야 ‘엄마’ ‘아빠’라는 말을 알게 됐다. 남들 다 있는 엄마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해거름에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우면 불도 켜지 않는 방 한 켠에 어린 마음을 보듬어 안고 바퀴벌레 모양으로 쭈그려 어둠속 거미줄을 더듬고 있었다. 운 좋은 어느 날은 꿈결 속에서 마음씨 좋은 봉사자의 얼굴에 엄마모습 전이(轉移) 되어 웃음 지을 때도 있었다. 만추의 홍엽처럼 고운 치마 입으시고 호수 같은 큰 가슴으로 꼭 껴안아 주는 그런 꿈이었다.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이런 일들은 취학 후에도 오랫동안 나의 설움인양 가슴을 앓았다. 누군가 다시 온다는 서툰 약속에 기다리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가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기다림조차 기억에 없는 배신은 가슴 밑바닥 너머 숨이 턱턱 막히게 했다.

취학하기 위해 호적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니 세상에 흔적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처음으로 서울의 큰 병원에 나들이를 했다. 병원에서는 나이를 감별해 법원에 제출했다. 병원 결과지가 나온 후 원장스님은 생일을 정해 줬다. 다들 있었던 생일조차 없어 슬퍼한다기보다 새로 생긴 생일에 마냥 기뻤다. 원장스님이 주신 생일은 5월8일 어버이날이었다. 따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나이쯤 이해하리라 생각하신듯하다.

시골의 초등학교는 면소재지의 상징물이자 지역출신들의 모태와도 같은 장소였다. 작은 학교답지 않게 역사가 오래되었다지만 지금은 도회지 한 반도 안 되는 전교생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진여원 아이들 40명 중 10여명이 같은 반이 되었기에 기죽을 필요조차 없었는데도 아이들과 거리두기를 했다. 마음에 두고도 만나지 않았다. 눈물이 나도록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그 곁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싶었지만 다가서지 않았다. 행복에 겨워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는 스스로 두 귀를 막았다.
세상을 향한 나만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자학이었다. 그들과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나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행복이 나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시내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이런 상황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어느 날 원장스님께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중학교 3학년 때쯤이니 고등학교 진학으로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대학교 진학보다는 빨리 취업해서 나만의 독립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원장스님이 동아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도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요리동아리, 영어동아리, 자전거동아리, 그리고 불교동아리였다. 딱히 의욕적이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법당예불에 익숙했던 나는 불교동아리를 선택했다. 불교동아리는 원장스님이 직접 지도했다. 원장스님과의 만남과 대화는 동토의 햇살만큼 반가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간들로 남겨진 체취들이  이미 내 마음의 화살이 됐고 나는 그 과녁이 됐다. 또래 아이들보다는 어린아이들이 좋아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새봄 피어나는 새싹 같은 아이들의 순수함이 내 마음의 화살촉을 무디게 하는 것 같았다. 막연하게 아이들을 돌보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는 평소 생각했던 대로 실업계를 선택했다. 빠른 자립으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나만의 세상에서 탈출하려는 작은 몸부림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정서발달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중에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원장스님이 추천했다. 짧은 2박3일의 일정이었다. 계곡 물안개가 여울진 묵은 숲길을 지나니 오대산 월정사가 있었다. 가람의 크기가 위압적이어서인지 작은 가슴이 더욱 오그라드는 듯했다. 적광전을 비롯해서 팔각구층석탑은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템플스테이 소개를 시작으로 발우공양과 예불이 이어졌다. 그리고 저녁공양 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참선하는 시간이 있었다. 원래 내재한 부처의 성품을 원만구족하고 있으며 청정무애한 부처의 속성을 누구나 차별 없이 가지고 있다는 참선 전 말씀이 맴돌았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 임사체험에서는 생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했던 것이 나에게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속살을 도려내는 아픔과 수치심으로 가득하면서도 기억나지 않던 어릴 적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 어린나이에 왠지 모를 죽음의 두려움으로 온 몸은 몸서리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세상의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을까! 남들이 우러러 보는 정상을 향하지 못한 좌절일까! 무인절도에 스스로 감금된 나에게도 그리움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에 가슴아파하지 못한 후회일까! 봉인된 물음표 앞에서 지난 시간들은 힘겹게 뇌리를 훑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 대신 계곡의 물소리는 음률이 되어 가팔라진 골짜기 속바람에 어우러졌다. 밤하늘 끝에 달이 쓰러지고 새벽조차 익지 않는 도량으로 목탁소리가 이슬을 깨웠다. 지옥중생의 업장이 무너지는 소리에 대지가 울리더니 어리석은 중생들의 심장에 법고가 울렸다. 아침예불이 신심 나는 스님들의 합송으로 마무리되고 따로 108참회를 결심했다.

마음 안에 바람이 일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목 메인 갈증에 숨죽여 우는 바람이 조각되어 기억의 파편들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속살이 드러나는 듯 묵은 슬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가슴을 베이는 아픔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절망의 동아줄이 희망인양 눈물이 차오른 눈가로 시린 바람이 매서웠다. 풀어헤치지 못한 마음 얼마나 더 아파야 봄 햇살 기다리는 그리운 마음이 잉태될까! 오체(五體)를 던져 태운다면 겨울들판 온 몸을 내놓고 기지개를 켤 수 있을까! 간밤에 꾼 꿈처럼 아침이 되면 백지가 되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찢겨져 나간 시간들과 손 시린 바람들도 홀로 선 나무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템플스테이 이후 원장스님께서 차담하자는 문자에 갔더니 갓 따온 목련차를 준비하고 계셨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다 스님은 대학진학을 하는 것이 어떠냐며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오대산 월정사를 다녀온 후 정리 되지 않았지만 변화가 있었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알아차린다고 해서 바로 부처가 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지난 시간들에 익숙지 않은 습관들을 익숙하게 바꾸고, 부정적이고 해태하게 된 익숙한 마음들을 익숙지 않게 하는 것이 공부고 기도란다.”

진여원 뒷산 작은 계곡 작은 도랑에도 봄볕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 스산하기만 하던 진여원은 따스한 햇살이 드는 보금자리 품속 같다. 무채색이던 바람도 무지개빛 수다쟁이가 됐다. 소홀했던 학교생활 덕에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원장스님과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해 애쓰신 진여원 선생님들처럼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다. 2년 과정을 마치고 4년 과정에 다시 편입하여 어려움 없이 다니는 것이 부처님과 많은 분들의 은덕이라 생각한다.

진여원 법당 부처님께 발원한다. 이제 길게 드리워진 기억을 가지고도 미소 지으며 살겠다고. 흩어져버린 사랑의 조각들에 가슴을 저미게 하지 않고 그 흔적에도 감사할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에도 햇살 품은 바람이 불고 있듯이 나의 봄 뜨락에도 부처님 향기 가득한 마음 밭을 일구어 가겠다. 새벽에서 노을 지는 어둠에까지 영혼의 길잡이로서, 구름의 향기로서, 별빛의 눈물처럼 마음에 부처향기 가득하게 하겠다. 마당너머 햇살이 이제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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