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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독존’으로 이 땅에 오신 부처님

  • 기고
  • 입력 2021.05.16 14:44
  • 호수 1586
  • 댓글 0

복덕 힘으로 중생제도 위해 오신 부처님
신 영역 넘어선 불가사의 위신력 갖춰
‘독존’은 부처님께 드리는 마땅한 명호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올해도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거리와 사찰에는 연등이 달리고 늘어나는 연등만큼 부처님의 탄신을 축하하는 불자들의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거리와 절 마당을 수놓은 연등의 밝은 불빛은 아마도 다시금 보살의 길을 서원하는 불자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신에 짓눌린 종교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은 곧 신에 대한 신앙으로 치환되고, 신의 마음에 들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21세기인 지금도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불교는 독특한 종교입니다. 신의 선택이 아닌 자신이 구원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런 지혜는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부처님께서 교사로 또는 메신저로만 오신 것은 아닙니다. 무수한 세월 닦아온 복덕의 힘으로 무한한 자비, 즉 대자대비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인천(人天)의 스승이라 부릅니다. 불교에는 무수히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자들은 신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신은 초월적인 능력으로 자비를 베풀기도 하지만 분노하고 인간을 괴롭히기도 하는, 여전히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들 또한 부처님에게는 중생일 뿐입니다.

이토록 위대한 분이기에 다양한 명호(名呼)로 불립니다. 여래십호(如來十號)가 대표적입니다. 명호를 보면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래십호는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입니다.

여래는 진리의 몸으로 오셔서 진리로 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응공은 마땅히 세상의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한 분, 정변지, 명행족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 지혜와 실천을 겸비하신 분, 선서는 위대한 일을 완성하고 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세간해는 일체를 다 아시고 꿰뚫어 보시는 분, 무상사는 이보다 더 위대하고 완전한 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조어장부는 대자, 대비, 대 지혜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분, 천인사는 하늘과 인간이 스승으로 모든 이를 해탈케 하시는 분이며 불세존은 깨달음을 얻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위대한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 또는 절대자 중심의 종교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부처님을 자꾸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불성이 있지만 그것이 결코 부처님과 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성불하기 전까지 부처님은 부처님이고 우리는 미혹한 중생에 불과합니다. 부처님에게는 인간적인 모습만 있지는 않습니다.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불가사의의 위신력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를 끊임없이 염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입니다. 여기서 ‘유아독존’의 ‘나’는 부처님 개인이 아닌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곤 합니다. “나만 존귀하다”로 해석될 수 있는 ‘독존’에 대한 독선적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경계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유아독존’입니다. 홀로 존귀한 분이 맞습니다. 그렇기에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겠다”는 위대한 서원의 사자후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김형규법보신문 대표
김형규법보신문 대표

그래서 ‘독존’은 우리가 부처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명호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신이나 절대자도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에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탄생게에 담긴 ‘독존’의 의미를 부처님께 온전히 돌려드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존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독존이 되는 길을 또한 쉼 없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imh@beopbo.com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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