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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이 있기에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지요

[자비로 희망 만드는 승가결사체] 나눔0715

허기진 노숙인 위해 새벽녘 거리 나서는 
탄경 스님 모습에 도반들이 팔 걷어 붙여
“선한 도반은 수행의 절반 아니라 전부”

승가결사체 ‘나눔0715’의 가섭, 진광, 정인 스님이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나누고 있다. 스님들은 “국에 밥 가득 담았으니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격려했다.
승가결사체 ‘나눔0715’의 가섭, 진광, 정인 스님이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나누고 있다. 스님들은 “국에 밥 가득 담았으니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격려했다.

5월11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 인근 한 오피스텔 5층. 살짝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도마에 칼이 탁탁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더해졌다. 안으로 들어가니 봉사자 4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다. 빨간 대야에 손질한 홍고추, 애호박, 무, 대파가 알록달록 쌓였다. 맵싸한 파 향기로 잠깐 사이에도 눈물이 찔끔 났지만 재료를 썰고 있는 봉사자들 손길은 멈추질 않았고, 눈매에는 웃음기만 가득하다. 

그 사이를 한 스님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단법인 다나 대표 탄경 스님이다. 스님은 “오늘 밥차가 나가는 날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다나는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조계사 옆 우정총국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다나는 승가결사체 ‘나눔0715’에서 시작됐다. 다나가 최근 법인체로 확대되면서 분리됐지만 ‘나눔0715’의 원경, 가섭, 정인, 진광, 진홍, 보관, 정오, 명조, 종현, 지묵, 본원, 각평, 성지 스님 등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나의 밥차는 이미 유명해졌다. 이제는 ‘다나의 따뜻한 한 끼’라는 디자인 로고에, 탄경 스님을 꼭 닮은 캐리커처까지 그려진 이동식 급식차량이 됐지만 그 시작은 소박했다. 그저 손바닥 크기만 한 두유 하나였다. 

4년 전 스님은 두유 50팩을 수레에 실어 종각역, 을지로입구역, 보신각, 탑골공원을 돌았다. 노숙인들에게 나누고 싶어서였다. 처음이라 어색했고 혼자라 부끄러웠다. 그래서 모두가 잠들었을 새벽녘 움직였다. 웅크린 그들 옆에 두유를 살며시 가져다 놓았다. 혹 잠이라도 깰까 걸음걸이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스님은 고요한 새벽 거리를 매주 나섰다. 

그런 탄경 스님 모습에 도반스님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일손이 부족할 땐 열 일을 제쳐놓고 달려왔고 앞장서 홍보했다. 소임으로 얻은 보시금도 십시일반 모았다. 도반들이 힘을 보태자 두유 하나에 초코파이가 얹어졌고 작은 컵라면과 세면도구가 더 생겼다. 
 

탄경 스님과 봉사자들이 손질한 재료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탄경 스님과 봉사자들이 손질한 재료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2019년 겨울이었다. 매서운 북극발 한파에 영하 20도가 넘나드는 나날이 연속됐다. 새벽녘 간식을 전하는 스님들 손도 꽁꽁 얼어 감각이 둔해질 정도였다. 노숙인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냉랭한 아스팔트 위에 박스를 쌓았고 온몸에 신문지를 휘감았다. 하지만 한기와 맞서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한 켠에 앉아있던 서너 명은 “술이라도 마셔야 좀 따뜻해진다”면서 강술을 들이켰다. 탄경 스님은 그들을 보며 ‘뜨끈한 국밥이라도 있으면 몸이 좀 녹을 텐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온기 있는 밥을 주고 싶었다. 이동식 급식차량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수중엔 남아있는 돈이 없었다. 그런 스님 모습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나눔0715’ 도반들이었다. 하루는 정인 스님이 “이걸로 밥차를 사라”며 모은 돈을 건넸다. 원경 스님은 쌀과 음식 재료를 지원했다. 이어 혜솔 스님이 겨울용 침낭 50개를 마련하라며 지원금을 쥐여줬다. 도반들과 밤새 동대문상가와 남대문시장을 오가며 침낭을 구했다. 노숙인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버텨내기만 바랐던 간절함이 서로에게 전해진 것이다. 

“도반은 제게 가장 귀중하고 든든한 존재예요. 서로에게 단단한 고리가 되어주는 것. 이게 바로 승가결사체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요.”

아난존자는 부처님께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은 도반이 있다는 건 수행의 절반이 이룩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아난아, 선한 도반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그 전부이니라”고 했다. 도반이 수행의 전부라는 그 가르침을, ‘나눔0715’ 스님들은 허기진 이들에게 온기를 불어넣으며 묵묵히 실천하고 있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법보신문·조계종교육원 공동기획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고자 승가결사체를 구성해 전법교화의 길에 나선 스님들이 있다. 노숙자 쉼터, 교도소, 병원 등 사회 그늘진 곳을 찾아 부처님 법음을 전하는 승가결사체는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과 법보신문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자비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승가결사체 8곳을 소개한다. 편집자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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