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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죽비소리

기자명 이제열

해이함 일깨우는 벼락같은 소리

선방 스님들 부러워하던 농부
막상 선방에 앉아 보니 고역
내리치는 죽비소리에 화들짝
죽비도 부처님 설법과 비슷해

큰 절 옆에서 소를 몰면서 밭에 쟁기질하는 농부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내려쬐는 땡볕 아래서 일을 하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소도 지쳤는지 농부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덥고 힘든데 소까지 말썽이니 농부는 이래저래 짜증이 났다. 그런데 여기에 부아를 더 돋우는 일은 절 안 스님들의 행동이었다.

매미 소리 들리는 선방에 문을 활짝 열고 눈감고 편히 앉아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농부의 눈에 거슬렸다. 농부는 자신의 심사를 스님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푸념했다.

“어떤 놈은 팔자가 사나워 이런 더위에 아침부터 하루 종일 소 새끼와 씨름하면서 고생하는데, 어떤 놈들은 팔자가 좋아 시원한 방안에 눈 감고 앉았구나. 에이, 불공평한 놈의 세상!”

그런데 그때 마침 절의 주지스님이 농부가 하는 말을 들었다. 주지스님은 농부에게 다가가 이렇게 제안했다.

“시주님, 이 뙤약볕에 쟁기질을 하자니 매우 힘이 드나봅니다. 제가 출가하기 전 속가에서 농사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시주님을 대신해 소를 몰아 볼 터이니 시주님께서는 대신 저 스님들이 수행하고 계신 선방에 들어가서 편히 쉬었다 오시지요.”

농부는 쾌히 승낙하고는 주지스님의 안내를 받아 선방 안으로 들어갔다. 농부가 선방에 들어서자 매우 까다롭게 생긴 좌선 지도 스님이 다가오더니 결가부좌를 틀게 하고는 수행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러나 평생 좌선은커녕 제대로 양반자세로 앉아 본적도 없는 농부가 결가부좌를 하자니 잘 될 리가 없었다. 겨우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참선지도 하는 스님이 ‘이 뭣고’ 하는 화두를 챙기라고 했으나 화두는 생각도 안 나고 다리 통증부터 참기 어려웠다. 앉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왜 이리 지루한지 몸은 뒤틀리고 좀이 쑤셔 미칠 노릇이었다. 눈을 감은 농부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사서 한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후회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편안하게 앉아 좌선하는 스님들을 보니 농부는 자신의 이런 몸을 이기지 못하고 발가락을 꼼지락대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참아 보려고 애썼다. 그러다 다리가 저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부는 고통을 줄여 볼 심산으로 두 다리를 살짝 뻗기로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깨 쪽으로 무엇이 내려쳐졌다. 철썩~ 수행을 지도하는 스님이 자세가 흐트러진 농부의 어깨를 죽비로 내리친 것이다. 농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통증은 별것이 아닌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쌀쌀맞은지 가뜩이나 괴로운 참에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참다못한 농부는 체면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벌떡 일어나 선방을 뛰쳐나가 자신의 밭으로 달아났다.

“휴~ 저 방안이 사람 잡는 곳이구나!” 농부가 밭에 다다르자 스님이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모습이 보였다. 비록 날씨는 덥지만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밭을 갈고 있던 주지스님이 웃으며 다가왔다. “시주님, 시원한 방안에서 편안히 쉬었다 오셨습니까? 저 소가 아주 말을 잘 듣습디다. 물도 주고 풀도 좀 뜯게 하면서 쉬게 하였더니 밭을 이리 잘 갈아 놓았습니다.” 농부는 주지스님의 말에는 응대 않고 “저 방에 지도한다는 스님이 어깨에 메고 있는 긴 나무는 대체 무엇이오?” 주지스님은 “저건 장군죽비라 합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농부는 대꾸도 않고 소 있는 곳으로 가 쟁기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주지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절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주지스님 귀에 농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이랴! 이놈의 소, 말 안 들으면 저 선방에 쳐 넣고 죽비로 때릴 테다.”

죽비를 죽비자(竹篦子)라고도 부른다. 선방에서 수행자를 경책하거나 공양과 법회 때에 대중들을 통솔하는 기구로 사용한다. 선방에서 사용하는 죽비는 큰 모양으로 장군죽비라 한다. 소리가 클 뿐 통증은 거의 없다. “철썩 짝~” 하고 나는 소리는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말소리, 몽둥이, 회초리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가 죽비 속에 들어 있다. 죽비 또한 부처님의 설법과 다르지 않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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