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 지금 이 시대의 불교미술 : 색 안에서 공을 읽기

기자명 주수완

극락·지옥, 인연 끊고 깨달음 향한 과정 형상화

서소문역사박물관서 열린 전시 종교 넘어 열린 문화공간 제시
스펭글로  감싼 불상은 금박 광채에 가려진 본모습 찾는 과정
진정한 성상이란 어떻게 성스러움을 획득하는지 문제 던져

김기라, ‘세기의 빛-정토’, 영상설치, 2016.
김기라, ‘장님-서로 다른 길’, 영상설치, 2018.

이번 연재는 특별한 전시를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2019년 개관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에서 ‘현대불교미술전: 공(Śūnyat1)’이 열리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처형장이 있던 곳으로서 조선말 천주교 박해 때 100여명의 교인이 여기서 처형됐다. 1984년에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졌고, 최근 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조선말 천주교 관련 상설전 외에 다양한 특별전을 열어 열린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에는 종교를 넘어 현대불교미술에도 그 공간이 열렸다. 구례 화엄사에서는 1653년 제작된 높이 약 12m의 압도적인 괘불탱(국보 제301호)을 특별히 대여해 이번 전시에 화답하고 있다.

여기 전시된 현대적인 불교 주제의 작품들은 일견 난해하다. 전시 팜플렛의 간략한 설명만으로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먼저 다녀와 고심하며 바라본 필자 나름대로의 느낌을 공유함으로써 독자 여러분의 감상에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한다.

우선 화엄사 괘불탱 뒤쪽의 어둡고 넓은 전시실은 이 박물관의 핵심적인 공간이다. ‘콘솔레이션홀’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순교한 분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천장에서 내려온 우물 같은 창에서 빛이 은은히 들어오고 바닥에도 광선이 흐르면서 어둠과 빛이 조화를 이루는 명상적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김기라 작가의 비디오 설치 미술이 360도로 벽면에 펼쳐지고 있다. 두 작품이 번갈아 상영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세기의 빛-정토’다. 도심지 지하에서 이렇게 산사의 정취에 온전히 감싸여 아침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신비롭고 아름다운 체험이다. 영상 속 사찰은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인데 하나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돌아가며 사방의 벽을 메우고 있는 것이지만, 마치 실제로 대흥사 북원 한복판에 와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은 참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도심지 사찰에 이런 공간이 있다면, 바쁜 직장인들이 마치 요가나 필라테스 학원에 가는 것처럼 잠시나마 들려 참선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미래 법당의 내부를 짐작케 한다. 평소에는 사방에 스테인드글라스 영상을 비춰서 성당 안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니, 법당도 그러한 체험적 공간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두 번째 영상은 충격적이다. 고요한 산사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음산한 음향과 함께 세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모두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점차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면서 타인의 손이 등장하는데, 인물들이 괴로워하는 이유가 자신을 만지는 이 손 때문임을 알게 된다. 다시 카메라가 더욱 멀어짐에 따라 사실은 이 세 사람이 한 공간에 얽혀있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원인이고 누가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카메라가 더욱 멀어짐에 따라 이 세 사람에다 한 아이까지 등장하고, 이들 네 사람이 또 다른 사람 위에 올라탄 채 서로 더 높이 기어올라 가려는 것처럼 서로를 밀치고 당기며 괴로워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다 이들을 받치고 있는 사람이 힘에 부쳐 쓰러지면서 붕괴되는 영상이다. ‘세기의 빛-정토’가 극락이라면 다음 영상은 지옥이다.

김기라 작가는 이 영상에서 불교적 ‘라오콘’을 만들어냈다. ‘라오콘’은 뱀이라는 외부적 존재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이 ‘장님-서로 다른 길’에서 괴로움의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서로 얽힌, 그래서 남도 아니고 나라고도 할 수 없는 내부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님은 곧 불교의 ‘무명(無明)’이다. 이 무명으로 인해 나도 남도 아닌 사람들이 인연으로 얽혀 있음을 깨닫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두 영상은 제작 연도도 다르지만, 극락과 지옥, 인연을 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작품처럼 보여주고 있다. 벤치도 있어 잠시 명상하기에도 좋다.

전상용, ‘曉·冥(새벽·어스름’, 석고, 2007.
전상용, ‘曉·冥(새벽·어스름’, 석고, 2007.

전상용 작가는 전통 불상조각의 맥을 잇는 불상조각가이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현대적 시도를 하고 있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2010년 ‘나는 그대로다’전에서는 힌두교 도상인 ‘시바의 춤’을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과 인체로 바꿔 표현하는 파격을 시도한 바 있고, 2013년 ‘나란히 놓다’에서는 불상과 다른 종교상을 대비시켜 불상이 지니는 침묵적 관조적 성격을 조명하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된 ‘曉·冥(새벽·어스름)’은 어떤 스님의 초상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떤 분을 모델로 했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매우 사실적인 조각이지만, 특정한 누구를 지목하기보다는 이 시대 수행자의 모습을 대변하고자 한 것으로 읽힌다. 그 누구인 것 같지만, 어느 누구도 아니고, 어느 누구도 아니지만, 이 시대의 모두가 될 수 있는 이미지를 전상용 작가가 만들어낸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 얼굴도 그렇다. 우리에게 친숙한 부처님 얼굴은 어느 누구도 아니면서, 또한 우리 모두이기도 해야 했다. 그렇게 신라와, 고려, 조선은 시대의 부처님 얼굴을 만들었다. “이 시대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전상용 작가의 ‘효·명’은 불교미술이 나아갈 길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

노상균, ‘For the Worshipers’, 2014-2016..
노상균, ‘For the Worshipers’, 2014-2016..

노상균 작가는 스펭글(spangle)이라는 조그맣고 얇고 동그란 반짝이는 플라스틱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과거에도 이러한 기법으로 불상 설치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멍석에 앉아 검은 스펭글에 감긴 불상 한 구를 ‘For the Worshipers’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그나마 하체는 항마촉지인의 불상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상체는 이 스펭글이 연결된 긴 줄에 칭칭 감겨 제대로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 마치 아래에서부터 스펭글의 줄이 풀려나가면서 점차 형상이 완성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쩌면 지나친 광채에 가려진 부처의 본모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과거에는 금을 구하기도, 불상을 조성하기도 어려워 신심으로 이러한 작업을 했지만, 물질이 풍부해진 이 시대에 우리가 불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저 반짝이는 금박 표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성상(聖像)이란 어떻게 성스러움을 획득하는가의 문제를 던져주는 듯하다. 더구나 화려한 연화대좌가 아니라 투박한 멍석 위에 앉은 부처도 파격이다. 부처를 조금 더 우리 가까이에 앉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지만, 지면 관계상 일부만 소개해 드렸다. 독자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이 시대의 언어로 된 ‘공’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