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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제67칙 문수성로(文殊成勞)

일상서 걷고 머물고 눕는 일체도리가 깨침의 소식

석두 예배에 다리 드리운 청원행사
일상적 삶에서 단순한 과정 보여줘
현묘한 이치나 도리 궁구 필요 없어
말하고 침묵함 역시 구별 없음 구현

승이 정주 문수화상에게 물었다. “고인이 다리 하나를 의자에서 아래로 드리운 의지(意旨)는 무엇입니까.” 문수가 말했다. “오랫동안 앉아있으려니 피곤하구나.”

문수는 운문종 선사로서 정주(鼎州) 문수산(文殊山) 응진(應眞)이다. 그 법계는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덕산연밀(德山緣密)-문수응진이다. 소위 조사선(祖師禪)의 전개와 전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관(機關) 가운데 하나가 선문답이었다. 선문답이 보편적으로 발전하고 번영을 구가하던 선의 황금시대 곧 만당(晩唐) 및 오대(五代)의 시대에는 조사선이 납자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자연스럽고 진실하게 구현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위 선문답은 그 과정에서 전개된 문답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따라서 조사선풍의 보편적 가치가 삶에서 묻어나는 까닭에 특별히 형이상학적 내지 관념론적인 개념을 초월한 측면으로 널리 전개되었다. 이에 신음하고 기침하는 소리가 모두 묘용과 신통 아님이 없고, 눈을 깜박이고 눈썹을 치켜뜨는 것이 모두 법문과 불사 아님이 없었다.

여기에서 다리 하나를 드리운 인연은 청원행사(靑原行思, ?~740)가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에게 보여준 제스처를 가리킨다. 이에 석두는 그저 예배를 드리고 물러났다. 이것이 전부였다. 본 문답에서 승은 청원행사가 석두에게 다리를 드리워 내보인 까닭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문수응진은 벌써 질문하고 있는 승의 행위에 답변이 갖추어져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가장 자연스러운 제스처를 통하여 응답해주고 있다. 승의 질문을 받기까지 문수응진은 제법 오랫동안 좌선을 하고 있었던가 보다. 문수응진은 이제 포행(布行)이라도 하려는 듯이 가부좌를 풀고 일어서려는 차제가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더니 다리가 아프다는 말로 응수해주었다. 이것은 승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궁극으로는 문수응진의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의 지극히 단순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 섬세한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선문답의 묘미로서 세련된 질문과 응답의 한 측면이다. 만약 문수응진의 그와 같은 답변에 대하여 승이 대번에 낌새를 알아차렸다면 제법 두 손을 맞잡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것과 달리 왜 다리를 드리웠는가 하고 승이 의문을 갖는다면 그것은 동문서답과 다를 것이 없다. 문수응진이 그토록 자상한 노파의 마음을 기울여서 우유하고 평이하게 어려움이 없는 곳을 향해서 일러준 것에 대하여 승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그대로 ‘오랫동안 앉아있으려니 피곤하구나’라는 말 그대로만 알아들었다면 끝내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수응진의 답변이야말로 일상에서 걷고 머물며 앉고 누우며 보고 들으며 느끼고 아는 일체 도리가 깨침의 소식인 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깜냥을 갖춘 승이라면 마치 도둑의 말을 빌려 타고 도둑을 쫓아가고 도적의 창을 빼앗아 도적을 찌르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격이기도 하다. 질문은 답하는 거기에 있고 답은 질문하는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주변사를 벗어나서 달리 현묘한 이치를 궁구하고 미묘한 도리를 궁구할 필요가 없으며, 여기를 벗어나 저 멀리서 심오하고 은밀한 이치를 찾아내야 하겠느냐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깨침의 도량이고, 입을 열어 말하고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것이 구별 없이 미묘한 이치 아님이 없는 것을 구현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좌선상 주변에 포단을 깔고 결가부좌할 필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수응진은 눈썹을 치켜들고 눈동자를 굴리는 곳에 깊은 의미가 소통하고 작용하는 줄 이해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승이 문수응진의 응답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과 망설임도 없이 유쾌하게 예배를 드리고 물러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고자 하는 사람은 직접 꼬고 앉았던 다리를 하나 의자 밑으로 드리워보면 좋을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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