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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수행 ⑤

‘능엄경’과 ‘열반경’에서 3종 수행법 설해

사마타, 삼마제, 선나로 구성
선나는 두 수행의 균등 수행
삼마제는 위파사나 다른 표현
‘열반경’은 선나를 우필차 기록 

‘능엄경’ 전10권이 사마타와 삼마제(삼마발제)와 선나의 3종 수행법을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 3종 수행법의 관계성을 ‘원각경’에 이어 재확인시켜 준다. 제1~4권에서는 사마타수행을, 제4~7권에서는 삼마제수행을, 제7~8권에서는 선나수행을 설하고 있다. 제8~10권은 초심자의 수행을 돕기 위한 7취와 50마에 관한 강설로서 3종 수행법의 철학적 기초라 할 것이다.

사마타는 망심(妄心)을 밝혀 진심(眞心)을 찾는 수행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몸과 뜻이 가볍고 편안한 신의경안(身意輕安, 능엄경4)에 이른다고 설한다. 신의경안은 곧 ‘원각경’에서 말씀한 적정경안을 일컫는다.

삼마제는 원통(圓通)을 통해 일문(一門, 무여열반)으로 들어가는 수행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신심쾌연(身心快然, 능엄경7)에 이른다고 설한다. 신심쾌연은 곧 ‘원각경’에서 말씀한 대비경안을 일컫는다. 이것은 번뇌의 원인이 되는 육진과 육근과 육식과 칠대에 대한 25원통으로 자신과 대상을 올바르게 관찰하여 이들을 연민히 여기는 대비심을 갖는 것이다.

25원통 중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이 으뜸이라고 문수보살의 게송 형식을 통해 찬탄하고 있으며(능엄경6), 교학적으로는 관음보살의 32응신과 14무외공덕과 4묘덕으로 설득하고 있다. 32응신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33응신으로 설해지고 있기도 하다. 1응신의 차이는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들고 있는 응신의 일부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통의 방법론으로 ‘능엄경’이 특징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능엄주 다라니 염송이다. 이것은 원통을 함에 있어서 다라니 염송의 공덕을 인정하고 수용한 것으로서 선밀회통(禪密會通)의 방법론이라 할 것이다. ‘능엄경’이 선나수행을 설하고 있으면서도 대장경에서 밀교부에 들어 있는 것은 그 방법론적 특징에 연유하고 있다.

‘능엄경’은 삼마제라는 용어와 더불어 위파사나(毗婆舍那)라는 용어를 병행함으로써 삼마제(삼마발제)가 위파사나임을 나타내고 있다(능엄경9). 곧 “내 이미 참다운 수행법을 설하였으나, 너희들은 아직도 사마타와 위파사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미세한 마사(魔事)가 나타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능엄경9)”고 함으로써 위파사나가 삼마제임을 명시한다. 이 점은 ‘원각경’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능엄경’에서 선나는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사마타와 삼마제의 균등수행이 선나로 자연스레 수렴되는 까닭에서이다. 그 경지를 심려허응(心慮虛凝)으로 표현하였는데, ‘원각경’의 적멸경안에 상당하는 것이다. 선나에 관해서는 다만 12류 중생의 유전, 3종 점차(漸次)와 그 계위들에 관한 설이 주 내용을 이룬다. 계위는 ‘화엄경’과 결부하여 이해할 수 있는 십신위, 십주위, 십행위, 십회향, 십지 등이 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능엄경’을 ‘소화엄경’이라 칭하는 것은 여기에 말미암은 것이다.

한편 ‘열반경’에서도 사마타와 위파사나와 우필차(優畢叉, upekṣā)의 3종 수행법이 설해지고 있다. ‘증도가’를 지은 현각의 또 다른 작품 ‘영가집’도 이들 3종 수행법을 노래한 것이 근간을 이룬다. 우필차는 평등과 부쟁(不諍) 등의 의미인데, 사마타와 위파사나의 구족수행으로 선나에 이른 중도수행을 일컫는다. 우필차가 선나이다. ‘열반경’ 제28권에는 3종 수행법이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기에 청해서 듣기로 한다.

“사마타는 능히 없앤다 이름하나니 온갖 번뇌를 없애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조복한다 이름하나니 모든 근(根)의 악하고 선하지 못한 것을 조복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고요하다 이름하나니 3업을 고요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멀리 여읜다 이름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5욕락을 멀리 여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맑힌다 이름하나니 탐진치의 흐린 법을 맑히는 연고니라. 이런 뜻으로 고요한 모양[定相]이라 이름하느니라.

위파사나는 바르게 본다 이름하며, 또 분명히 본다 이름하며, 또 능히 본다 이름하며, 두루 본다, 차례로 본다, 딴 모양으로 본다 이름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우필차는 평등이라 이름하며, 다투지 않는다 이름하며, 관찰하지 않는다 이름하며, 행하지 않는다 이름하나니, 이것을 사(捨)라 하느니라.”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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