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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보다 인권이다

기자명 진원 스님

남성중심적 성의식이 강한 군대에서 피해자는 피해지원을 받을 수가 있는가. 군대내 성폭력을 견디지 못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공군여중사로 군이 발칵 뒤집혔다. 

몇 년 전 제대 남성군인을 상담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 당했던 성추행과 준강간 피해 트라우마로 여자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는 상담이었다. 군대 다녀온 남성들은 군대 내에서 야한 농담 정도의 성희롱은 늘 있다고 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참고 넘겼지만 지금까지 그 불쾌함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2013년 6월을 성폭력 예방의 원년으로 삼았다. 형법, 성폭력 특례법, 아동청소년보호법 등 관련 제도가 대폭 개정시행 됐고, 60여년 만에 친고죄도 폐지됐다. 

남성도 강간의 객체에 포함시키는 개정도 이뤄졌다. 그간 부녀자에만 국한 됐던 성폭력이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즉 동성 간 성폭력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는 형법이 생겼다. 이와 함께 동성피해자에 대한 성폭력피해자지원도 가능해졌고, 군대 내에서 알게 모르게 이뤄지던 성희롱·성폭력의 피해를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처벌법이 생긴 후 군인권센터는 군대내 성폭력피해를 세상에 알렸다. 반향은 컸고 군대에서 양성평등사무관 등이 배치되고 외형적으로는 예방과 피해자 지원에 힘쓰는 듯 보였다. 그러나 피해는 잊을만하면 다시 발생했고, 지원 역시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 책임을 진다는 명분으로 물러나거나 전역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 가장 문제 되는 것은 권위적인 남성중심의 성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군대에 성폭력예방교육을 다녔다. 정작 예방교육에 임해야 할 책임 있는 장성들은 한 명도 없고, 일반 사병들만 교육에 임했다. 교육은 수동적이었고, 현장 장교들은 상당히 권위적이어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예방교육을 하고 피해자 지원을 한다지만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군문화의 특성상 명령복종의 계급중심 조직에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군장병이나 장교들의 성비위나 사병들의 성폭력이 발생하면 군은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경험인 군기강과 계급을 이용한 처리 방법에 익숙하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피해자는 그야말로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버리는 것이다. 결국에는 피해자가 전역하거나 이번 일처럼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둘째는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그냥 군의 명예를 실추하거나 또는 덮어야 하는 실수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다. 예전 캠페인에서 겪은 일이다. 남자가 한번 실수한 것 가지고 인생을 막아서면 되겠냐는 것이다. 이번 공군여중사에 성폭력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군은 가해자가 명예롭게 전역할 수 있도록 회유하고 피해자를 2차, 3차 피해자가 되도록 방치한 것이다. 어디 공군뿐이겠는가. 아마도 전수 조사하면 성인지 감수성이 비슷한 수치일 것이다. 책임의 소재가 부재하고 피해자 지원 또한 떠넘기기 일쑤다.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 걱정까지 해야 하는가.

셋째로 과연 군대의 성폭력예방교육은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군대에 있는 조카에게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 시간은 가서 마음 놓고 졸고 오는 시간, 휴식의 시간”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성폭력예방교육은 어떤 방법일까. 내부의 교육이 효과적일까? 외부 민간단체에서 지원하는 예방교육이 효과적일까. 고민할 시기가 됐다.

군의 사기는 내부 기강과 자긍심에서 비롯된다. 인권이 무시되고 문제가 벌어지면 덮기에 급급한 군대에 어찌 기강이 바로 서겠으며 자부심을 갖겠나. 죽음만이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던 공군 여중사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관련자들도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 인권이 위계나 명령보다 상위 개념이 될 때 군대가 신뢰 받고 설 자리가 있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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