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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 

연기의 바다가 만들어내는 세계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 인물
입체적인 교차 방식으로 서술
전체적 관점서 볼 수 있게 해
책 보며 세상 읽는 눈도 배워

‘진리의 발견’
‘진리의 발견’

현대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과거에 비해 인류의 역사가 발전되어 왔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발전해왔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크다. 우매한 대중들이 먹고살기에 바쁜 와중에 몇몇 천재들이 나타나 한 단계씩 끌어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류의 에너지가 거대하고 역동적으로 흐르는 가운데 몇몇 천재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천재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전의 ‘위인전’들은 천재의 업적에만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 책은 그런 서술방식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광대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불가리아 출신 작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 400년에 걸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살펴본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글은 마리아 미첼, 허먼 멜빌, 마거릿 풀러, 찰스 다윈, 에밀리 디킨슨을 거쳐 레이철 카슨까지 10명의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그 사이에 별처럼 많은 이들이 명멸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 인물들의 궤도는 그 주인공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교차한다. 이 교차점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몇 십 년 혹은 몇 세기를 두고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한다. 사실은 다른 사실과 이리저리 얽혀 한층 더 큰 진실의 음영을 드러낸다. 이는 상대주의가 아니다. 가장 광대한 규모의 사실주의다.”

이 책은 각각의 인물들보다, 그들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더 각별하게 다루는 듯하다. “아름다움의 큰 부분,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힘의 큰 부분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에서 유래한다. 사상과 사상 사이, 학문과 학문 사이, 특정 시대와 특정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 선구자의 내면세계와 그들이 문화라는 동굴 벽에 남긴 자취 사이, 변혁의 횃불이 새로운 날을 밝히기 전의 어둠 속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성냥을 건네주던 그 희미한 인물들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세계는 오로지 관계만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연기법에 기반하여 역사를 쓴다면 이 책의 방식이 적절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보자. 케플러는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시각의 변화를 노린 소설 ‘꿈’에서, 아홉 개의 정령을 소환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중 주인공에게 가장 친절했던 정령의 이름은 “우라니아”. 천문학을 관장하는 뮤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우라니아’라는 이름을 살짝 잡아 역사의 실오라기를 뽑아낸다. 이렇게.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태양에서 일곱 번째 자리에 있는 행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이 행성에 케플러가 언급한 뮤즈의 이름을 따서 우라누스(천왕성)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독일 어딘가에 살고 있던 젊은 베토벤은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악보의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우라니아의 별에서는 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할까?’ 다시 두 세기가 지난 후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은 소리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인류의 초상인 골든 레코드를 만들면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보이저호에 실어 우주로 떠나보낸다. 이 레코드에는 또한 로리 스피걸이 케플러의 ‘세계의 조화’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 수록되어 있다.” 한 명의 천재는 이렇듯 일파만파의 파도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천재 또한 일파만파의 파도가 만들어낸 것이다. 저자는 마리아 미첼을 만든 수많은 조건들을 열거하며 말한다. “혜성처럼 다가오는 기회와 조수처럼 밀려오는 환경 안에서 우리를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만드는 자아의 해안선이 형성된다.” 연기의 바다는 그렇게 요동치는구나.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읽는 눈을 배운다. 오래 전 부처님이 가르치셨던 대로 읽는 법.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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