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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공작새 - 상

일체 재난 제거하는 ‘공작명왕’ 추앙

독 품은 동물의 천적으로 간주
미려한 깃털 해독 결과로 여겨 
무지·욕망 등 유독한 말과 마음
지혜로 변성시키는 보살의 상징

인도의 국조(國鳥)는 인도 공작새(Indian Peafowl)이다. 학명 ‘Pavo Cristatus’는 고전 라틴어로 ‘볏이 있는 공작’을 뜻하는데, 여기서 볏은 머리 위 부채 모양의 화려한 장식깃털을 말한다. 목주변이 푸른색이어서 ‘블루 공작(Blue Peafowl)’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힌두신 쉬바(Śiva)의 목이 파란 색인 것과도 연관된다. 인도신화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인 ‘우유바다 휘젓기(Samudra Manthana, 乳海攪拌)’에서 선신과 악신은 불멸주(不滅酒)를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한다. 이때 줄다리기 줄인 거대한 독사 바수끼(Vāsuki)의 목에서 할라할라(halāhala)라는 독이 나와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는데, 쉬바가 할라할라를 마시고 자신의 목 안에 담아두어 세계를 구제한다. 이후 푸르게 변한 목 때문에 쉬바를 ‘공작의 제왕’인 마유레샤(Mayūreśa)라 부르게 된다.

불교에서도 공작새는 독사(毒蛇)의 천적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 지혜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자주 언급된다. 독사뿐 아니라 독충, 독풀을 먹어도 죽지 않는 불멸성과 자체적인 해독작용을 신격화하여 밀교(密敎)에서는 일체의 재난을 제거하는 ‘공작명왕(孔雀明王, Mahāmayūrī-vidyā-rājñī)’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나무를 하던 사저(莎底)비구가 뱀에게 물려 고통 받을 때 부처님이 ‘마하(摩訶) 마유리(摩瑜利) 불모(佛母) 명왕(明王)’ 대다라니(大陀羅尼)라는 진언을 외워 치유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도인들은 예로부터 공작을 뱀이나 전갈 등 독을 품은 모든 동물의 천적으로 간주하며, 공작의 미려한 깃털을 독이 해독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으로 변화하는 살아있는 연금술의 실례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을 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으로 전환시키는 보살의 지혜에 비견한다. 독을 먹지만 꼬리를 펼쳐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작새의 움직임을 무지, 욕망, 증오 등을 담은 유독한 말과 마음, 의지를 자신 안에서 지혜로 변성시키는 보살의 행위력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공작새가 보살과 부처님, 혹은 그들의 지혜로 비유될 때 이와 대조적인 동물로 등장하는 것이 까마귀이다. 그리스 이솝우화에도 ‘공작새와 까마귀’ 이야기가 있다. 허영심 많은 한 까마귀가 공작새가 떨어뜨린 깃털을 주워 자신을 꾸민 후 친구들 앞에서 우쭐댄다. 친구들을 얕잡아 보던 까마귀는 자신만만하게 공작새 무리를 찾아 자신을 뽐내지만 공작들에게 털이 뽑혀 정체가 드러난다. 뒤늦게 옛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간 까마귀는 자기 무리에서도 쫓겨난다. 공작새와 까마귀의 이야기는 불교경전 ‘생경(生經)’ 51권 ‘불설공작경(佛說孔雀經)’에서도 대조적인 성격으로 나타난다. 아주 옛날 북방 지환국(智幻國) 사람들이 까마귀를 데리고 바차리국(波遮梨國)을 방문한다. 바차리국에는 새가 없어 사람들은 처음 본 까마귀를 귀하게 여기고 음식과 열매를 바치고 섬기며 존경했다. 어느 날 한 장사꾼이 공작새를 가지고 와서 화려한 깃털과 우아한 날갯짓을 보여주고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려주니 모두가 까마귀를 버리고 공작새를 사랑하고 공경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해가 없을 때 등불이 빛나듯이 공작이 없는 세상에서 까마귀가 존귀한 것처럼,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세상을 이끌어줄 스승이 없어 외도사문범지(外道沙門梵志)가 공양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일한 이야기가 ‘바웨루 자따까(Bāveru-jātaka)’에도 전해진다. 여기에서 바웨루는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바빌로니아(Babylon) 왕국을 말한다. 자따까에서 공작(mora)은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이고, 까마귀(kāka)는 자이나교(Jaina)의 개조(開祖)인 니간따 나따뿟따(Nigaṇṭha-Nātaputta)의 전생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부처님의 진리의 광명이 드러날 때까지 외도(外道)를 따르다가 부처님의 설법이 시작되자 그들에 대한 선물과 칭찬을 철회하는 장면을, 진귀한 까마귀에 매혹되었다가 공작새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바빌로니아인들의 모습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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