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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72칙 천팽당호(天彭當戶)

중생 없는 곳에 굳이 부처가 존재할 이유 없어

부처님 어떤 분이냐는 질문에
친절과 자비의 속성으로 대답
끊임없이 설법하는 부처님은
단도직입적인 조사와는 달라

승이 천팽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천팽이 말했다. “집에서는 항상 친절하였기에, 집에 있어도 적막하지 않다.”

본 문답의 주제는 선문답에서 가장 흔히 언급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불조(佛祖)와 관련한 것이다. 

불조는 부처와 조사라는 의미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모든 납자들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수행을 하고 깨침을 얻어서 조사가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야말로 납자들에게는 가장 전형적이고 궁극적인 인간상을 성취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조에 대한 문답은 납자의 본분사와 직결되는 물음이다.

여기에서 승이 질문한 부처는 두 가지의 개념을 함께 지니고 있는 개념이다. 하나는 부처의 속성으로 산하와 대지 등 일체만물이 그대로 법왕(法王)의 몸으로 드러나 있는 불성의 현성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둘은 인격을 갖추고 있는 부처님의 속성으로 중생을 향해 가르침을 베풀어 일깨워주는 설법의 소유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승이 질문한 여하시불(如何是佛)은 ‘부처란 어떤 것인가’라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에서 천팽은 49년 동안 멈추지 않고 설법해온 부처님의 자비로운 면모에 대하여 두 가지로 답변해주고 있다. 하나는 부처님의 모습을 상징하는 친절한 자비의 속성이다. 친절은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고 구원해주려는 관음보살의 자비로운 이미지로 부각되어 있는 까닭에 부처님은 집에 계시면서 항상 친절하다고 답변한다. 집은 중생이 깃들어 살고 있는 바로 그 자리를 가리킨다. 중생이 있는 곳이면 부처가 있고, 부처가 있는 곳이면 중생이 있다. 왜냐하면 부처는 부처를 위해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중생을 위해 설법하기 때문에 중생이 없는 곳에는 부처가 없고 중생이 없는 곳이라면 굳이 부처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있는 부처가 친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적막하지 않다는 상황과 잘 어울린다. 친절이란 중생으로 하여금 일거수일투족 섬세하고 자상하게 일러주는 설법자로서 부처의 속성을 가리킨다. 부처님은 평생 동안 혀를 움직여 언설로 설법한 까닭에 혀의 근육이 모두 닳아 없어져버렸다고 한다. 그 모습에 대하여 끝이 없는 중생을 위한 부처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켜서 적막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부처가 지니고 있는 자비의 속성과 더불어 실제적으로 설법을 구사하여 구제해주는 속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곧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승의 질문에 대한 천팽의 구체적인 답변이었다.

이런 점에서 부처님은 지극히 친절하고 말이 많으며 구체적이고 분별적이다. 이것은 직접적이며 단도직입의 속성을 지닌 조사(祖師)의 이미지와 대조적이다. 따라서 이어서 ‘조사란 어떤 분입니까’라는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본 문답에는 굳이 이에 대한 질문은 드러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번거롭게 그것에 대하여 질문한 것 자체가 이미 조사라는 이미지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에 천팽 또한 그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행여라도 부처에 이어서 조사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했더라면 그리고 그에 대하여 답변을 해주었다면 질문한 승과 답변한 천팽은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으로 한 통속으로 분별의 굴레에 빠져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애써 질문과 답변이 설정되지 않은 까닭을 여기에서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본 선문답은 제법 선문답다운 질문이고 답변이다. 

선문답은 선문답으로 끝나야 한다. 질문할 것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하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부처에 견주어 조사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군더더기만 되고 만다. 부처의 문제만으로 문답을 마무리하고, 천팽에게 더 이상 조사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승과 그에 대하여 깔끔하게 선문답을 마무리한 것은 제법 그럴듯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94호 / 2021년 7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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