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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 발표 후 3일만에 1만여명 문상 다녀가

기자명 채한기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生死 한 뿌리라지만 중생은 슬퍼합니다”

결제 하던 통도사 극락암 수좌 단체 조문도

해인사 대중 6일까지 산중 출입 삼가며 애도.



2001년 마지막 날 혜암 스님의 입적 소식이 전해지면서 2002년 새해 벽두부터 해인사에는 영하 11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큰 스님의 수행정신을 추모하는 사부대중의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해인사는 조문객 맞이와 함께 1월 6일 봉행될 영결식과 다비식 준비에 여념이 없는 분위기다.(1월 4일 현재)



입적 첫 날 스님 500여명 헌향



큰 스님의 입적 소식이 전해진 첫날인 12월 31일에만도 500여명의 대중이 원당암과 궁현당 빈소를 찾았다.

2002년 1월1일엔 원로의장 법전 스님과 원로회의 부의장 종산 스님, 원로의원 성수 스님 등이 조문했으며 이날만도 2000여명이 해인사를 찾아와 스님 영전에 헌향했다. 안거결제 중 종정 스님이 입적하면 선방 수좌 스님들은 영결식 당일날 모두 참석하지만 이례적으로 1월 3일 통도사 극락암 수좌 스님들이 빈소를 찾아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2일과 3일 날이 갈수록 조문객은 늘어 4일까지 약 14000여명의 사부대중이 빈소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인과 도리 깨우쳐 주신 분”



1월 3일 원당암 빈소를 찾은 김순권(대구, 48세)씨는 “법회 때 마다 큰 스님은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면서 “인과를 믿지 않으면 함부로 행동을 하는 만큼 모든 일은 인과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며 생전의 스님을 돌이켰다.

궁현당 빈소를 찾은 이일순(합천, 51세)씨도 “끈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시 쓸 만큼 근검절약했던 스님의 일상은 우리 세속인들에게 귀감이 됐다”며 “큰 스님의 원적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좀더 계시면서 중생을 제도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못내 안타까워 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조화 보내와



각계각층의 조화도 연일 해인사에 당도했다.

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 원로회의 의장 법전, 중앙종회의장 지하 스님을 비롯해 전두환 전 대통령, 문화관광부 남궁진 장관, 대한불교진흥원 서돈각 이사장 등이 보낸 60여개의 조화가 1월 3일까지 해인사에 전달됐다.

특히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보낸 조화는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세 스님 방명록에 추모시 남겨



방명록에 남긴 글 중 세 분의 스님이 추모시를 써놓아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고운사 회주 근일 스님은 “장좌불와 오십년에/ 보살행과 수행이 뭇중생들의 스승이 됨이라/혜암스님께서는 무심히 조계봉에 오르셨으니/ 성품을 관한 고불이시여 본래자리로 돌아오소서”(장좌불와오십년長坐不臥五十年/보살수행위중선菩薩修行爲衆先/혜암무심조계봉慧菴無心曹溪峰/성관고불본래환性觀古佛本來還)라고 했으며 송광사 전 주지 법흥 스님은 “땅과 하늘이 모두 정토이며/호랑이 굴과 마귀의 궁전이 모두 연꽃핀 곳이로다/천하가 모두 걸림없이 고향가는 길이니/어느 곳에서나 자재하게 노닐도다” (천지천당구정토天地天堂俱淨土/호혈마궁총연방虎穴魔宮總連邦/천하무애가향로天下無碍家鄕路/찰찰진진자애유 刹刹塵塵自在遊)고 추모했다.

동국대 교수 법산 스님도 “가도 간 곳이 없고/와도 온 곳이 없다/대천세계는/본래 오고감이 없구나” (거무소거去無所去/ 내무소래來無所來/대천세계大千世界/본무래거(本無來去)라며 원적의 아쉬움을 달랬다.



만장 수 사상 최대 규모 될 듯



해인사 대중방에 마련된 만장 제작장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만장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대중으로 북적거렸다. 대부분의 대중은 스님의 수행정신을 기리고 싶어서인지 달마도와 함께 ‘수행가풍 용맹정진’이라는 글귀를 만장에 새겼다.

해인사측은 당초 500여장의 만장을 준비해뒀으나 1월 3일 오전 9시께 동이나 1500여장을 추가로 준비했다. 6일 다비식날에는 2000여장의 만장이 가야산 자락에 휘날릴 것으로 보인다.



영구 차량 생화로 특별 장엄



해인사 대중 스님들도 조문객 맞이와 함께 영결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1월 1일 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과 50여명의 문도 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체안치(입관)식을 봉행한 해인사는 1월 3일 오전부터 영구차량과 영결식장, 다비식 연화대 장엄에 들어갔다. 생화로 특별 제작되는 영구차량 장엄은 비구니 스님들이 맡았다. 해인사는 6일까지 산중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영결식과 다비식이 모두 끝날 때까지 모든 스님의 외출을 금지시켰다.



해인사=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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