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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스님, 역경‧인재양성·포교 헌신하고 불교현대화 견인”

  • 교학
  • 입력 2021.08.13 21:01
  • 수정 2021.08.13 21:07
  • 호수 1597
  • 댓글 0

만해학회, 8월9일 인제 만해마을서 ‘석주 스님 생애와 만해사상’
20세기 격동 한국불교사 온 몸으로 겪었던 생애 다각도로 조명
만해정신 계승해 역경사업 헌신하고 승가대 설립·정착에도 앞장

만해학회(회장 한중옥)가 8월9일 인제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극복의 시대, 석주 스님의 생애와 만해사상’을 주제로 제21차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만해학회(회장 한중옥)가 8월9일 인제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극복의 시대, 석주 스님의 생애와 만해사상’을 주제로 제21차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삶 자체가 20세기 한국불교사라고 할 만큼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겪었던 석주정일 스님(昔珠正一, 1909~2004). 어린이 포교에서부터 노인복지, 군포교, 교육불사, 역경사업, 종단행정 등 근현대 한국불교에 그 손길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스님은 크나큰 원력의 삶을 살다가 입적했다.

만해학회(회장 한중옥)가 8월9일 인제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극복의 시대, 석주 스님의 생애와 만해사상’을 주제로 제21차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석주 스님의 생애와 그간 행보를 다각도로 탐색해 ‘석주’라는 인물의 외연을 넓히고자 마련됐다.

승속 막론하고 존경 받았던 근현대 한국불교 혁신운동가, 석주정일 스님.

첫 발표는 김광식 동국대 교수의 ‘석주의 삶과 한용운’이었다. 김 교수는 석주 스님의 생전 증언을 토대로 만해 스님과 석주 스님의 인연을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석주 스님과 만해 스님의 첫 만남은 1923년 선학원에서 시작됐다. 당시 백담사와 서울을 오갔던 만해 스님은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경에 잡혀 수감생활을 한 뒤 선학원을 중심으로 대중불교 운동을 펼쳤다. 이때 석주 스님은 15세 선학원의 행자였다. 조국의 독립과 불교유신을 열망한 만해 스님의 강직함은 어린 석주 스님에게 큰 귀감이 됐다.

만해 스님이 ‘님의 침묵’을 출간했을 때는 그 시집을 알리기 위해 책방마다 시집을 돌렸고, 책을 판 돈을 수금해 스님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런 만해 스님과의 인연은 훗날 석주 스님이 불교혁신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배경이 됐다. 두 스님의 인연은 6년간 이어졌고, 석주 스님은 이 시기 만해 스님의 모습을 솔직 담백하게 회고했다. 만해 스님의 성격, 일상, 강연 분위기도 가감없이 묘사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스님의 증언은 매우 기록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석주 스님의 ‘역경 포교’ 사업에서도 만해사상을 계승하고자 하는 석주 스님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석주 스님의 역경사업은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심했던 1949년 국문선학간행회에서 본격화됐다. 용담 스님이 번역한 ‘선가구감’ 발간을 시작으로 1957년 ‘법보원’을 설립, 한글 경전 30여편을 간행했다. 김 교수는 “불교정화운동으로 혼란스럽고 재정기반도 빈약한 상황에서 역경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입한 석주 스님의 행보는 만해 스님의 한글에 대한 사랑과 역경에 대한 소신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석주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에 재임하던 1973년, 회의를 마치고 스님들과 함께 했다.
석주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에 재임하던 1973년, 회의를 마치고 스님들과 함께 했다.

석주 스님의 생전 증언과 편찬서를 통해 스님의 역사 인식을 꼼꼼히 탐색한 연구 논문도 발표됐다.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논문 ‘석주 스님의 생애와 근현대 불교사 기록’을 통해 석주 스님이 은사인 남전한규 스님(南泉翰奎, 1868~1936)의 글을 모아 편찬한 ‘남전스님문집’ ‘남전법묵’ ‘남은글월모음’ 등 3권과 생전 증언 자료를 수집, 분석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석주 스님을 근현대 불교사의 주요 무대에 등장했던 참여자이자 ‘기록자’였다고 표현했다.

석주 스님의 구술로 기록된 ‘한국불교최근백년사’에는 조선불교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과 불교개혁 운동의 당위성이 담겨 있어, 스님의 역사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 학예연구사는 설명했다. 특히 석주 스님의 구술이 가진 공신력과 가치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혔다.

석주 스님은 1923년 선학원에서 출가해 그곳에 머문 6년동안 고승들을 직접 시봉, 대면할 수 있었다. 현재 근현대 불교사에서 신화처럼 알려진 인물들 일상도 관찰할 수 있었다. 석주 스님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스님의 눈에 비친 만해 스님은 머무는 방에 책 한권이 없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박식했고 술에 취해 선학원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면서도 나라 독립을 위해 최일선에 나섰던 어른이었다. 이 학예연구사는 “석주 스님의 구술은 문헌 사료가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근대 한국불교사 정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면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던 불교인의 자취를 되살리고 신화적인 고승들 일상과 인간적 면모를 이렇게 생생히 묘사할 수 있는 건 석주 스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가대 개원 석주 스님이 1979년 4월14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보현사에서 열린 중앙승가대 전신인 중앙불교승가학원의 개원법회에서 법어를 하고 있다.
승가대 개원 석주 스님이 1979년 4월14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보현사에서 열린 중앙승가대 전신인 중앙불교승가학원의 개원법회에서 법어를 하고 있다.

석주 스님의 교육불사를 탐색한 연구도 소개됐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는 논문 ‘석주 정일대종사의 교육활동과 중앙승가대’를 발표해 승가대 기틀을 다진 석주 스님의 업적을 기렸다.

김 교수는 먼저 중앙승가대 설립 이전 단계 과정을 설명하며 고난과 혼돈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종단 지도자들은 중앙승가대 설립을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여겼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도 설립 논의는 진척되지 못한 채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또 1976년 중앙승가대 설립을 위해 삼화사 재산을 처분해 마련했지만 그 기금이 흐지부지 사라져 승가대 설립에 대한 기대는 더욱 무너져 갔다. 이에 일부 학인스님들이 1979년 의정부 소재 쌍룡사에서 중앙불교승가학원 설립을 위한 모임을 갖고 출범했다. 하지만 종단은 일부 스님들에 의해 시작된 교육 기관을 공식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시기 석주 스님이 중앙승가대 초대 학장 소임을 승락하며 중앙승가대 운영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김 교수는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초대학장을 수락했던 석주 스님은 종단 원로 중진스님들에게 승가대학 필요성을 강조, 도움을 청하고 운영 경비 마련을 위해 학인스님들과 동분서주 했다”면서 “빈번한 종단 분규로 학인스님들이 고난을 겪을 때에도 스님은 재도약할 수 있도록 크나큰 버팀목이 돼 줬다”고 분석했다.

석주 스님은 학장에 이어 명예학장 소임까지 역임하며 학교 대소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특별한 법어나 기념사를 하지 않아도 항상 행사장이나 단상 앞자리에 앉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석주 스님의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아직도 중앙승가대 초기 역사를 기억하는 스님들은 석주 스님을 ‘수호신장’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외에도 한상길 동국대 교수가 ‘석주 스님의 불교혁신 활동’을 통해 석주 스님의 종단 활동을 집중 조명했고,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가 ‘석주의 생애와 포교사상’을 주제로 석주 스님의 포교 활동을 입체적으로 소개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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