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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옥스퍼드대 곰브리치 교수

기자명 황순일

대기설법 조명…초기불교 재정립

전통주의 대변…기존 초기불교자와 논쟁

퇴임후 불교학 센터 건립…인재양성불사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영원한 화두 중의 하나는 팔리 경전과 한역 아함 및 율장 그리고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범어 자료들과 간다라 문서류 등을 비교 분석해 붓다의 가르침에 최대한 접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팔리 경전은 현존 자료들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AD 4∼5세기 경까지 새로운 자료들이 첨가되고 몇몇 경전들이 수정된 흔적이 발견되고 있고 붓다 당시 및 그 이후의 다양한 종교적 요소들이 혼재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팔리 경전마저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실정에 놓이게 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곰브리치 교수는 이러한 자료적 문제로 여러 판본들의 비교연구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자칫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붓다의 독특한 대화법인 대기설법과 다양하게 사용된 메타포(metaphor)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기설법과 비유적 언어들에 투영되어있는 붓다의 의도를 살려내는 작업이 초기불교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적하면서 학계에 주목을 받았다. 곰브리치는 1994년런던의 SOAS에서 있었던 ‘조던 강좌’(Jordan Lecture)에서 자신의 초기불교에 관한 연구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발표했는데 이 강의 내용들은 1996년 『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란 제목으로 런던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94년 팔리경전협회 회장 선임

대기설법이란 다양한 종교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대화에 임하는 붓다의 독특한 대화법으로, 스스로를 질문자의 입장에 가깝게 접근시킨 후 상대의 견해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토의를 시작해 각각의 용어들에 새로운 불교적 관점 또는 좀 더 고차원적인 의미를 삽입하여 붓다 자신의 결론으로 상대를 유도하는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러한 방법론이 붓다 당시 다양한 교리들과 우파니샤드로 대표되는 브라만 사상들을 불교 내부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글자 자체의 정의에 바탕을 둔 아비달마 논사들의 직역주의적 경향 하에서 붓다의 방법론과 비유적 언어들 속에 투영된 숨은 의도가 잊혀지면서 초기경전의 교리들이 점차 다르게 해석되고 조직화됐다. 또 그런 과정에서 어떤 교리적인 발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내세우고 있다.

곰브리치의 이러한 입장은 영국의 불교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런던 킹스 컬리지의 수 해밀턴(S Hamilton)과 함께 아비달마적 변형을 일종의 오염으로 보는 전통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아비달마적 변형과 다양한 해석을 일종의 교리적 발전으로 보려는 랑스 카진(L Cousins)으로 대표되는 팔리 아비담마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76년 이후 범어학자로 명성

『계율과 실천: 스리랑카 고원지대의 전통적인 불교』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보여주듯 초창기 곰브리치 교수는 불교를 인류학적으로 접근했다. 이 논문은 6개월 이상 스리랑카의 한 시골 마을에 거주하면서 그곳의 불교 승려들과 주민들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분석해 1970년대 초반 문헌 중심의 불교 연구 풍토에 현재 살아있는 불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곰브리치 교수는 점차 문헌 중심의 고전적인 불교 연구로 방향을 돌리게 되는데, 1976년 옥스퍼드대학의 동양학부에 소속된 ‘보던 범어 교수’(Boden Professor of Sanskrit)로 임용되면서부터다. 이 교수직은 1831년 영국 동인도 회사의 조셉 보던(Joseph Boden) 대령이 범어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경을 범어로 번역해 인도를 복음화하려는 목적으로 대학에 기부하여 만들어진 자리다. 그러나 현재 이 자리에는 불교학의 대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곰브리치 교수가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범어 학자로서 곰브리치 교수의 모습을 우리는 『범어: 고전 언어 입문』에서 볼 수 있다.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마이클 쿨슨(Michael Coulson)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사라져 버릴 뻔했던 미완성 범어 문법책 원고를 물려받아 세심하게 교정해 『Teach Yourself Books』 시리즈로 출판하게 되는데, 현재 이 책은 범어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반듯이 거쳐야하는 기본 교재로서 특히 오류가 전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라틴어를 어느 정도 익히고 대학에 들어온 영국 학생들을 주요한 대상으로 쓴 책이라 고전으로 한문을 주로 익히고 대학에 들어온 한국 학생들의 실정에 맞지 않아 너무 어렵다는 것이 흠이다.

곰브리치 교수는 1984년에 『불교의 세계』란 책을 편집하면서 좀더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1958년 이래 에띠엔느 라모뜨(Etienne Lamotte) 교수의 『인도불교사』가 학문적으로 초기 인도불교에 접근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좀더 쉽고 풍부한 사진과 함께 사회 문화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일반교양서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당시 유럽의 유명한 불교학자들이 참여해 이 책을 만들게 됐다. 1991년에 첫 보급판이 출판된 이래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불교 입문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불교의 세계』편집…대중성 인정

한국 불교계에 곰브리치 교수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94년에 팔리경전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팔리경전협회의 향후 목표로 팔리 경전의 주석서인 아타카타의 번역 사업을 내세웠다. 그때를 즈음해 현재 조계종 사회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산 스님과 경주 동대 불교학과 안양규 교수가 옥스퍼드 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직접적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다.

2004년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곰브리치 교수의 주요한 관심사는 옥스퍼드 불교학 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퇴임 후 자칫 옥스퍼드의 불교학 전통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 배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옥스퍼드 불교학 센터를 통해 벨리올 컬리지(Balliol College)에 불교학 전임 강사 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옥스퍼드의 불교학 연구 전통이 영구적으로 계속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황순일/동국대 강사

hwangsoonil@dongjene.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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