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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나누는 자연과의 대화

  • 불서
  • 입력 2021.08.30 11:33
  • 호수 1599
  • 댓글 0

50여년 산사에 머문 대강백
산·계곡서 만난 소리와 풍경
나·너 구분없이 시 안에 담아
일상 속 깊은 관조·통찰의 결실

바람의 자유
지안 스님 지음 / 사유수
237쪽 / 1만4000원

통도사 산내암자 반야암 계곡을 굽어보는 지안 스님. 사진제공 사유수

숲에 들어가면 숲을 보지 못하고, 일상에 갇히면 일상을 볼 수 없다. 타인의 욕망을 덩달아 욕망하며 비교와 집착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시는 관조이며 이러한 타성에 대한 저항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 인간의 심연과 욕망의 매커니즘을 깨닫도록 한다. 간화선 주창자 대혜 선사가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 했듯 시는 선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시는 불교를 만나 더 심오해지고 불교는 시를 만나 더 풍요로워진다. 대강백 지안 스님의 시가 그렇다. 젊은 날 입산해 50여년을 산에서 지낸 스님은 산이 좋아 산에 머무는 산거인(山居人)이다. 매일 산을 보고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구름을 바라다본다. 스님이 산사에서 마주하거나 산길을 걸으며 떠올린 상념과 언어들이 자연스레 시가 됐다. 온갖 착(着)에서 자유롭고 애써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기에 스님의 시에는 탈속의 멋과 여유로움, 일상에 대한 관조와 통찰이 배어있다.

‘무슨 인연이 그렇더냐 전생에 놀다 금생에 우는 허공에 매달린 나무가 된 슬픈 물고기… 뱃속을 도려낸 채 두드림의 울림으로 제 장송곡을 만들어 수족(水族)에게 전생사를 알리고 있다’ (목어) 
‘시간이 부서져도 꿈쩍 않는 인내로 하늘과 땅을 지키는 수문장… 하염없는 세월을 떠나보내며 나 홀로 자리 지키며 서 있노라’ (탑의 슬픔) 
‘산천에 불을 밝힌 계절의 신호등 정열의 화신이냐 분노의 역신이냐 무심한 너를 두고 망상 피워 미안하다’ (철쭉) 
‘가라 어디든지 가라 길을 묻지 말고 그냥 가라… 가을 단풍 바람에 떨어져 회상의 숲에 낙엽 쌓이면 먼 기억들 주워 꿰어 염주처럼 목에 걸고 구름처럼 강물처럼 떠나가라’ (구름처럼 물처럼)

깊은 산중에서 스님은 오랜 세월 도를 닦아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신통력이라도 터득한 걸까. 목어, 석등, 탑, 철쭉, 안개, 구름, 바람, 물, 불두화, 솔씨, 산다화, 구절초와 한 송이 버섯에까지 귀를 기울여 세상사 이치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 시를 따라가면 보면 산사의 삶을 담아낸 자연이 보이다가 나중에는 시를 읽는 자신이 들여다보인다. 문학평론가 정효구 충북대 교수가 “시와 도를, 세상과 산중을 한 자리에 무사히 앉힌 고승의 무르익은 시법(詩法)이자 시어(詩語)”라고 찬탄한 것도 이 때문일 듯싶다. 스님의 시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세상을 깊고 따사로이 바라보는 시선임을 새삼 일깨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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