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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토끼 - 하

달 속 토끼 형상은 지계·보시의  상징

보름 포살 맞이한 수행자에게
공양하려 불속에 몸 던진 토끼
보름달 바라보며 소원 빌기 전에 
 팔재계 지키려는 마음 새겨야

달의 외형과 표면을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연구를 월면학(月面學, selenography)이라고 한다. 월면학을 통해 달의 앞면은 수많은 운석 충돌구(crater)로 덮여있고, 뒷면은 어두운 현무암과 용암대지인 넓고 편평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졌다. 특히 달의 뒷면은 검고 짙은 회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얼룩무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달의 바다(lunar maria)’라고 불렀다. 우리가 보름달을 보고 토끼가 절구방아를 찧는다고 말하는 그 얼룩무늬가 바로 달의 바다이다. 달 표면의 음영이자 그림자 무늬인 ‘달의 바다’를 유럽인들은 ‘큰 집게발을 높이 든 게’로 보았고, 아프리카와 페루는 ‘두꺼비’, 스페인은 ‘당나귀’, 인도네시아는 ‘베를 짜는 여인’이라고 보았다.

‘달 속의 토끼’는 고대 인도의 우화집 ‘빤짜딴뜨라(Pañcatantra)’에서 달의 ‘토끼 자국(Hare-marked)’으로 나타난다. 옛날 옛적 열두 해 동안 가뭄이 지속되자 코끼리 무리는 ‘달의 호수’라 불리는 담수처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곳은 본래 토끼들이 살고 있던 곳이지만 코끼리 떼가 들이닥쳐 많은 토끼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에 토끼 왕이 코끼리 왕을 만나 토끼가 달의 사신(使臣)이며 달이 보호하는 존재임을 알리기 위해 누구나 볼 수 있게 달에 ‘토끼 자국(śaśa-lakṣaṇa, śaśa-lakṣman)’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토끼 왕은 달의 호수를 되찾기 위해 코끼리 왕을 속이고자 달에 새겨진 토끼 자국을 달의 사신의 증거라며 꾀를 부린 것이다. 토끼는 범어(梵語, Sanskrit)로 샤사(śaśa), 혹은 샤사까(śaśaka)라고 하는데, 달(candra)을 부르는 대표적 별칭이 샤사까라는 점도 인도인들이 달과 토끼를 깊이 연관지어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달 속의 토끼 이야기는 인도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도 공통적으로 퍼져 있다. 그 기원이 되는 가장 유력한 이야기가 불교경전 자따까에 전한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중에서 토끼 전생을 다루는 ‘사사 자따까(Sasa-jātaka)’이다. 숲에 살던 토끼(sasa)에게는 원숭이(makkaṭa), 자칼(sigāla), 수달(udda) 등의 세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비록 동물로 태어났지만 숲에서 오계를 지키며 정진하며 살고 있었다. 지혜로운 토끼는 보름달이 뜨는 포살(布薩, uposatha)일을 맞이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전한다. 포살일에는 금식하고 청정한 생활을 해야 하며 구걸하는 이를 위해 공양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을 나선 수달은 어부가 모래 속에 숨겨놓은 일곱 마리의 물고기를 발견하고 이를 공양하기로 결심한다. 자칼은 오두막에 숨어들어가 도마뱀과 응유(凝乳) 한 병을 가져오기로 하고, 원숭이는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모아둔다. 하지만 토끼는 쿠샤풀만 먹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공양할 음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보시하기로 서원한다. 

토끼와 친구들의 성스러운 행위를 알아챈 제석천(Indra)은 바라문 사제로 변장하여 그들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제일 먼저 수달을 찾아가 음식을 청하자 수달은 기꺼이 일곱 마리의 물고기를 바친다. 이어 자칼도 도마뱀과 응유를, 원숭이도 모아놓은 망고열매를 공양한다. 마지막으로 토끼는 기쁨에 차 불을 지펴달라고 하면서 혹시라도 자신의 털 속에 있는 벌레를 죽일 것이 걱정되어 몸을 세 번 턴 후 불길로 뛰어든다. 그러나 제석천이 피운 불길은 서늘했고 토끼의 몸을 태우지 못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토끼에게 제석천은 자신이 토끼의 공덕을 시험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제석천은 토끼보살의 미덕을 일체중생에게 알리기 위해 달에 토끼의 형상을 새겨 놓는다. 여기에 등장한 수달은 아난다(阿難陀), 자칼은 목건련(目健連), 원숭이는 사리불(舍利佛)의 전생이었다. 

동일한 설화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전하는데, 여기서는 제석천이 노인으로 변신하고 토끼의 친구가 생선을 공양하는 여우와 과일을 가져오는 원숭이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보름달이 뜨는 포살일은 재가자들에게도 중요한 날이다.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며 그날만이라도 출가자처럼 청정한 생활을 해야 한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들어주는 토끼를 찾기보다는 비록 동물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매달 15일마다 출가자처럼 계를 지키며 지극한 보시의 공덕을 쌓아 올린 토끼보살의 서원을 마음속에 ‘토끼 자국’으로 아롯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진영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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