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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건 고쳐 쓰고 악도 선하게 만드는 것이 월산 스님의 중도선”

  • 교학
  • 입력 2021.09.10 23:05
  • 수정 2021.12.14 10:55
  • 호수 1601
  • 댓글 1

9월9일, 월산문도회·대각사상연구원 주관으로 불국사문화회관서
사부대중 49명 동참…생애·사상 심층 조명하고 열띤 토론 이어가
‘중도선’부터 불국선원·강원건립과 법보신문 창간까지 집중 탐색

불교수행자의 사표로 일컬어지며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의장을 역임하고 불국사 재건 및 법보신문을 창간했던 성림당 월산 대선사(月山, 1913~1997)의 삶과 사상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열렸다.

불국사 월산문도회(대표 성타 스님)·대각사상연구원(원장 보광 스님)은 9월9일 오후 1시 경주 불국사 불교문화회관에서 ‘월산 대선사 사상의 재조명’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19년 9월1일 ‘월산 대종사의 생애와 삶’을 주제로 제1회 학술대회를 연지 2년만이다. 이날 학술대회는 경주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맞춰, 참석 인원을 49명으로 제한하고 발열 체크 후 입장, 마스크 착용, 좌석 간 간격 두기, 발표자와 토론자 사이의 칸막이 배치 등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며 진행됐다.

월산문도회 대표(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월산문도회 대표(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월산문도회 대표(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 불국사 승가대학원장 덕민 스님, 불국사 관장 종상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불국사 주지 종우 스님의 기조 발제로 본격적인 학술대회가 시작됐다.

불국사 주지 종우 스님.
불국사 주지 종우 스님.

발제를 통해 종우 스님은 월산 스님을 ‘쉼없이 정진하던 진솔한 수행자’라고 회상했다. 1979년 9월 제대해 10월 불국사로 출가, 1997년부터 월산 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18여년 가까이서 스님을 모셨던 종우 스님은 “월산 스님은 종단 일을 하고 사회서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도 쉼 없이 정진했다”면서 “월산 스님은 ‘소임을 보든 염불하든 경전을 읽든, 수행자라면 참선을 해야한다’고 늘 강조하셨다”고 밝히며, 월산 스님의 방에 휘호돼 있던 ‘일만물지종(一萬物之宗)’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종우 스님은 “당신 방에 가끔 손님이 찾아오면 ‘일만물지종’을 해석해보라고 했다. 보통은 ‘일만은 사물의 근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스님이 원했던 답은 ‘하나는 만물의 근본’이었다. 만물의 근본은 이름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 없어 그저 열반, 부처, 원각 등으로 불릴 뿐이다. 이러한 스님의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감회가 남다르다. 스님의 사상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이어 5명의 연구자가 논문을 발표했다. 사회는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이 맡았다. 먼저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월산 스님의 생애 전반을 정리했다. 김 교수는 스님의 생애를 수행기(1943~1954), 불교정화운동 참여 및 종단 활동기(1954~1974), 불국사 사격 고양기(1974~1986), 불교사상 회향기(1986~1997) 등 4기로 구분해 전반을 개괄했다. 특히 1954년 불교정화운동 당시, 월산 스님은 선학원 조실이자 불교교단 정화대책위원회의 책임자였던 은사 금오 스님을 시봉하며 자연스레 정화운동 일선에서 활동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월산 스님은 종단 재무부장, 신흥사 주지, 동화사 주지, 비상종회 의원, 감찰원장, 법주사 주지를 맡았지만 정화에 대한 소신은 지속됐고, 총무원장 취임하기 직전인 1969년 8월까지도 “종단은 사부대중 것”이라며 정치승의 행태와 사무승의 관료의식과 재산관리인으로 전락된 비구승의 현실을 지적하고, 이해와 공리를 초월해 사부대중 중심의 종회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월산 스님의 집행부는 출범 10개월 만에 해산됐으나 종단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의식, 지향점은 다시 짚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각사상연구원장 보광 스님.
대각사상연구원장 보광 스님.

대각사상연구원장 보광 스님은 월산 스님의 선사상을 ‘중도선(中道禪)’이라고 명명했다. 보광 스님은 월산 스님의 불국선원 결제·해제 법문을 분석해 “스님의 중도선은 ‘나쁜 것은 고쳐 쓰고 악도 선하게 만들어야 중도,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월산 스님이 정의한 ‘하나도 버리지 않는 것이 중(中)이며, 어떠한 경계에도 마음이 산란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도(道)’를 언급하며 “스님의 간단명료한 중도에 대한 정의는 그간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사상이자 학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평생 중도선으로 수행한 월산 스님이었기에 중도와 선을 접합할 수 있었다. 용성 스님의 선은 ‘대각선(大覺禪)’이고, 성철 스님의 선은 ‘돈오선(頓悟禪)’이라면 월산 스님의 선은 ‘중도선’이라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광 스님이 정리한 ‘월산 스님의 간화선 특색’에 사부대중은 깊이 공감하는 듯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동국대(경주) 불교학부 교수 혜명 스님.
동국대(경주) 불교학부 교수 혜명 스님.

월산 스님이 건립한 불국선원과 강원으로 스님의 원력에 담긴 의미를 조명하는 발표도 이어졌다. 동국대(경주) 불교학부 교수 혜명 스님은 “1974년 불국사 주지로 취임했던 월산 스님은 불국선원 건립에 온 힘을 쏟았다”면서 “관광 사찰의 이미지를 넘어 본래 승가의 선수행 풍토를 회복하려 했으며 수행자로서 본분을 지킬 수 있도록 공간과 환경을 조성하려 했고 그 결실이 불국선원”이라고 설명했다. 혜명 스님은 그간 불국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했던 수많은 고승 대덕을 소개하며, 현재 불국선원이 계승하고 있는 선원 정신을 강조했다.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또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불국사 강원(승가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밝혔다. 한 교수는 최치원이 찬한 발원문 ‘왕비김씨봉위선고급망형추복시곡원문’에 언급된 “불국사 표훈·유가·원측 스님의 삼성(三聖) 강원”을 설명하며 세 스님을 ‘삼성 강원’이라 불렀으며 이 기록이 ‘강원’의 최초 표기 사례라 설명했다. 이후 월산 스님의 원력에 의해 1975년 개원된 불국사 승가대학의 전개 과정도 밝혔다. 특히 불국사 강학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강주와 강사의 면모를 소개하며 강맥의 전승을 파악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법보신문’을 창간한 월산 스님의 언론관도 처음 조명됐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월산 스님이 ‘법보신문’을 창간할 당시 불교계 안팎의 상황, 스님의 역할과 언론관, ‘법보신문’ 창간 과정과 성격, 창간 이후의 ‘법보신문’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특히 신문 창간을 위해 발의, 논의, 기획하던 첫 단계부터 실무에 참여한 고성 화암사 정휴 스님을 인터뷰 해 월산 스님의 언론관을 탐색했다. 이 편집국장은 “월산 스님은 단순히 발행인으로서 이름을 올려둔 것이 아닌 ‘법보신문’ 제호와 사훈을 손수 정하고 비판적 언론 및 불교계 전체를 아우르는 범불교지를 표방했다”면서 “스님의 기명으로 게재된 창간사에선 ‘잠들지 않고 쉬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굽힘 없고 쓰러짐 없고 부서짐 없는 목탁을 만들었다…법보신문은 목탁이 돼 영원할 것’이라고 명시하며 불교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잃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편집국장은 “법보신문은 단순히 신문을 만들고 기사를 쓰는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불교계가 건강하고 불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면서 “그것이 초대발행인 월산 스님과 법보신문을 창간하고 유지해왔던 이들의 숭고한 뜻이자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로는 불국사 승가대학장 정수 스님, 불국사 부주지 성웅 스님,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이재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이필원 동국대 경주 파라미타칼리지 교수가 참여해 발표 논문을 보완하고 월산 스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학술대회 후 김광식 교수는 ‘법보신문’ 창간호부터 스님이 입적한 1997년까지의 자료, ‘대한불교’ ‘불교신문’의 1960~1997년 등에 나오는 스님 관련 기록을 모두 확보, 정리해 ‘월산 스님의 연보’를 만들어 박수를 받았다.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

이번 학술대회와 관련해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은 “만송행수(萬松行秀,1166~1246) 등 옛 선지식들이 깨달음을 주고 받은 선시(禪詩)를 보면 제자의 안목이 스승을 추월해야 비로소 유발 전수가 이뤄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20여년 째 조실 월산 스님의 덕을 갉아먹고 사는 것 같다”면서 “오늘 세미나를 통해 우리 모두 조실스님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도록 정진해야 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본분 납자의 조실스님 세계를 연구하고 노력하다보면 우리가 조실스님이 되고 조실스님이 우리가 되지 않겠냐”면서 “불국사에 있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마음 바깥의 경계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 자신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월산 스님의 선풍이고, 이 선풍이 이어지도록 우리 모두 수행하고 정진하자”고 당부했다. 학술대회 총도감을 맡았던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 스님도 “초지일관으로 정진하면 못 이룰 것이 있겠냐”면서 “자기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활용해 이차인연공덕을 잘 짓길 바란다”고 사부대중을 격려했다.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 스님.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 스님.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 스님이 학술대회를 총괄한 보광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전달했다.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 스님이 학술대회를 총괄한 보광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전달했다.

경주=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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