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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 스님의 대각선, 위기의 한국선 대안될 수 있다”

  • 교학
  • 입력 2023.06.27 18:03
  • 수정 2023.06.28 19:54
  • 호수 1687
  • 댓글 0

대각사상연구원, 6월25일 목동 법안정사서 ‘백용성 대종사 종합 고찰’
보광 스님, 용성 스님의 자각각타 깨달음 ‘대각선’ 새로운 화두로 제시

근래 한국선의 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가운데 자신도 깨닫고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용성 스님의 대각선(大覺禪)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계종 대각회 부설 대각사상연구원(원장 보광 스님, 조계종 호계원장)은 6월25일 서울 법안정사 2층 관음전에서 용성 스님(1864~1940) 탄신을 160주년 기념해 ‘백용성 대종사 대각선의 종합적 고찰’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보광 스님은 ‘백용성 스님의 대각선 연구’ 주제 논문을 발표하며 “저는 오늘 학계에 ‘대각선’이란 화두를 던져보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용성 스님의 일생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대각’이다. 용성 스님이 가장 즐겨쓴 단어도 대각”이라며 “용성 스님은 대각사상을 정립해 대각교와 대각운동을 전개하면서 대각을 사회화했다 ‘백용성 총서’에는 ‘대각’이 654회 등장한다. 이렇게 일생 동안 하나의 단어를 내세우며 외길 인생을 살아온 분도 많지 않다”고 밝혔다.

보광 스님에 따르면 용성 스님의 ‘대각선’은 자신도 깨닫고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는 ‘자각각타(自覺覺他)’의 의미다. 여기서 ‘자각적 대각’은 1910년까지의 산중 수행에서의 깨달음을, ‘각타적 대각’은 1910년 이후의 도심 경성에서의 깨달음을 뜻한다.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한 용성 스님은 23세까진 신묘장구대다라니·옴마니반베훔 등 주력신앙을 했고, 이후 무자 화두를 참구해 깨달음을 이뤘다. 만공, 혜월, 제산 스님 등 당대 고승들과의 법거량으로 깨달음을 점검하고 수행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4차례의 깨달음이 있었다. 그런 스님의 오도송은 저서 ‘어록’과 ‘수심론’에 기록돼 있다. 이로부터 7년 뒤에는 지리산 칠불선원에서 ‘귀원정종’(1910)을 지었다. 기독교의 논리적 모순점을 논파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1911년 2월 서울에서 처음 마주한 성당·교회는 책과 사뭇 달랐다. 각황사(조계사)의 텅빈 법당과는 달리 명동성당과 정동교회는 인산인해였다. 교리의 수승함과는 관계 없었다. 여기서 용성 스님은 자각적 대각이, 각타적 대각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가진다. 1916년 종로 한복판에 대각교당을 지은 것도 이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보광 스님은 분석했다. 여기다 1919년 3·1운동에 앞장서 투옥됐을 때 경험도 한몫했다. 보광 스님은 “목사·장로들과 생활해 보니 이들이 읽는 성경과 찬송가는 한글로 돼 누구나 이해하기 쉬웠던 반면 불교 경전은 모두 한문이라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불교가 이렇게 돼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용성 스님은 2년2개월 감옥에서 나온 직후부터 일반인들이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팔상록’ ‘원각경’ ‘금강경’ 많은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전념했다. 뿐만 아니라 망월사에 만일참선결사회를 결성해 참선 포교에 주력했다. 선농불교를 실천해 자급자족하는 생산불교도 장려했다. 보광 스님은 “대각선의 실천은 철저히 민중에 뿌리를 두고 있고 대각운동의 원동력은 각타적 대각”이라며 “용성 스님이 한역 경전 서문에 ‘해인사 대장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하면 오물덩이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오물이라고 표현할 만큼 커다란 위기의식을 가졌다”고 했다.

논평자로 나선 동국대 명예교수 도업 스님도 “용성 스님의 ‘각타적 대각’은 오늘날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이다”며 “보광 스님의 분석대로 용성 스님의 대각선은 오늘날 다시금 ‘화두‘처럼 곰곰이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오늘날 전국 선방엔 안거철마다 2000여 수좌가 수행정진을 한다. 하지만 막연한 모습처럼 보인다. 대각선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선원이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보광 스님은 “선방에서 수행하지 않는 제가 이를 언급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2000명이 정진하면 이 가운데 1%는 해제마다 국민 앞에 나서 메시지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어떤 공부든 평가(시험)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선원에서 수행 평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오늘날 선수행 풍토를 애둘러 지적했다.

김광식 대각사상연구원 연구부장도 논문 ‘만일참선결사회와 봉암사 결사의 비교’를 발표하며 “대각선이라는 화두와 함께 용성 스님의 만일참선결사회도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결사회에는 1925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시작해 동산, 고암, 석우, 운봉, 인곡, 강고봉, 고송 스님 등 중견 수좌 50여명이 동참했다. 목적도 분명했다. ‘활구참선’해 ‘견성성불’하고 ‘광도중생’하는 것이었다. 선중(禪衆)은 소수정예를 지향해 30명으로 한정했다. 김 연구부장은 “용성 스님은 결사회의 목적을 담은 11가지의 개칙을 제시하며 ‘이런 규칙을 감당하지 못할 수좌는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이 개칙들을 통해 소수 정예의 수좌들이 치열한 선수행을 하고 계율을 준수하도록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람직한 선수행 풍토를 정착시키고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만일참선결사회처럼 이념적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부장은 “2000년대 이후 선방은 ‘휴대폰 소지 금지’ ‘나가지 말 것’ 등 매너와 규칙만 있을 뿐 이념적 정체성은 약한 것 같다”며 “용성 스님의 만일참선결사회 같이 이념적 정체성이 바로서면 선원 문화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허정선 동국대 철학박사가 ‘백용성의 참선포교-1910~1920년대를 중심으로’를,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용성선사의 법거량’을,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가 ‘용성진종 선교관의 특징’을 이재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부교수가 ‘대각회 자료 DB 구축의 성격과 전망’을 발표했다.

앞서 대각사상연구원장 보광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음력 5월8일인 오늘은 용성 스님의 탄신 160주년 되는 날이다. 탄신 160주년을 맞아서 용성 스님을 드러낼 방법을 고민했다. 오늘 행사는 용성 스님의 사상을 대각선으로 정리하고 대각선이 임제선 간화선 묵조선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행사”라고 했다.

법안정사 주지 법수 스님도 “용성 스님은 한국불교 정체성을 확립하고 불교 대중화를 위한 큰 업적을 남긴 선지식이다. 또 독립운동가로서 3.1운동 불교계 대표로서 민족해방 활동에 진력을 다하신 분”이라고 환영사를 했다.

한편 대각회는 용성 스님 탄신 160주년을 기념해 올해 9월 우즈베키스탄 성지순례 및 워크숍과 11월 인도성지순례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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