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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는다

기자명 성진 스님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시험 점수를 고쳤다 발각된 적이 있다. 일명 올백(전부 100점)이면 당시 유행하는 무전기(워키토키)를 사주신다는 것에 욕심을 내어 비록 ‘촉법소년’의 나이였지만 사문서를 위조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성적표를 고치는 그 순간도 두렵고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가장 무서웠고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은 그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였다. 두려움에 오히려 강력하게 부인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명백한 물증과 확실한 증인(당시 함께 공모했던 누님)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정했을 때 차라리 편안했던 기억이다. 

살다보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잘못이 드러나지 않지만 누군가에 의해 밝혀지게 될 수도 있다. 만일 자신의 허물이 밝혀졌을 때 얼마나 성숙한 마음자세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와 행복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가장 많이 보게 되는 행동은 “기억나지 않는다”이다. 그리고 오히려 화를 내거나 진실을 말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2500여년 전, 부처님 당시에도 승가공동체 안과 밖에서도 이러한 일들로 구성원 간에 분열과 투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과경(有過經)’에서 지금 벌어지는 부끄러운 세태와 너무나 일치하는 여덟 가지의 허물을 말씀하셨다. 

첫째, 성을 내어 사실을 밝힌 그를 되레 비난하면서 “너는 어리석고 착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은 너의 죄를 지적하는데 너는 왜 나의 죄를 들추냐”고 말한다. 이것을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뒷발로 사람을 밟고 땅을 뚫는 것과 같다.’ 둘째, 도로 남의 죄를 들추어낸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성난 목으로 배띠를 끊거나 멍에를 부수는 것과 같다.’ 셋째, 바르게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일을 대중없이 지껄이면서, 성내고 거만하거나 숨기고 앙심을 품는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길을 가지 않고 수레를 뒤엎는 것과 같다.’ 넷째,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라고 말하면서 뉘우치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뒷걸음치면서 물러가는 것과 같다.’

다섯째, 그 사람을 업신여겨 상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떠나 버린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이리저리 달리는 것과 같다.’ 여섯째, 높은 자리로 가서 윗자리 사람들과 옳고 그름을 따진다. ‘이것은 나쁜 말이 두 발로 사람처럼 서는 것과 같다.’ 일곱째, 잠자코 대답하지 않아 대중을 괴롭힌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움직이지 않고 꼿꼿이 버티며 꼼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덟째, 곧, 지켜야 할 계율을 버리고 “너희들은 말없이 유쾌하게 살아라. 나는 계율을 버리고 나간다”라고 말하며 승가를 떠난다. ‘이것은 저 나쁜 말이 네 다리를 한데 모으고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마치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정말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실지실견(悉知悉見), 다 알고 다 보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그토록 학교와 집에서 배운 ‘잘못한 것보다 거짓말하는 것이 더 나쁜 것’이라는 가르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른이 되면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부끄러운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칠 것인가. 분명 아닐 것이다. 경전에 나오는 이러한 여덟 가지의 자세로 자신의 잘못을 대하고 사회가 이것에 속아 넘어 가고 모른 체 한다면 거짓을 행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사회는 진실은 사라지고 거짓의 안개에 갇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채 부딪힘과 밀침, 권모술수(權謀術數)의 그물에 걸려 모두가 병들어 버릴 것이다. 부디 지금이라도 우리사회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의 변명들과 위의 나쁜 행동들을 가장 추악하고 부끄러운 행동으로 규정하여 더 이상 공공의 영력에서라도 보지 않기를 바란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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