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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수행자, 정치가, 교육자로 살다간 ‘다면불’의 진면목

  • 불서
  • 입력 2021.10.05 11:13
  • 수정 2021.10.05 11:24
  • 호수 1603
  • 댓글 0

금강산 수행자이자 시대 활불로 불린 백성욱 박사 전집 출간
금강경 강화, 인류문화사 강의, 법문집·문집, 전기까지 집대성
극적인 변화와 기록들, 비범한 통찰과 다채로운 이야기 담겨

백성욱 박사 전집 전6권
백성욱·정종·고세규 등 지음
김영사 / 14만4000원

백성욱 박사는 동서고금의 사상과 문화, 종교와 철학에 정통했던 깊은 혜안으로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서 전무후무한 자취를 남겼다. 사진은 소사법당 대문 앞의 백성욱 박사.
백성욱 박사는 동서고금의 사상과 문화, 종교와 철학에 정통했던 깊은 혜안으로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서 전무후무한 자취를 남겼다. 사진은 소사법당 대문 앞의 백성욱 박사.

서구열강과 제국주의 침탈로 시작된 구한말은 혼돈과 격변의 시기였다. 오랜 쇄국의 빗장이 풀리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과 사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기, 전화, 전철을 비롯해 온갖 최신 무기들은 서구화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우리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전통 사상과 문화는 폄하되고 개혁 대상으로 간주됐다. 한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의 근간이었던 불교도 그 같은 역사의 흐름을 비껴갈 수 없었다.

‘시대의 활불(活佛)’로 불렸던 백성욱(1897~1981) 박사는 이러한 통념을 넘어 불교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역동적인 종교이자 사상임을 보여주었다. 동서고금의 사상과 문화, 종교와 철학에 정통했던 깊은 혜안으로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서 전무후무한 자취를 남겼다. 

백 박사의 인생 역정은 파란만장하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13세에 서울 봉국사 하옹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학문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1919년 중앙학림 재학 중이던 그는 만해 스님과 함께 3·1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상해임시정부와 한반도를 오가며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그는 24세 때 선진학문의 보급과 국민 계몽이 조국 광복의 첫 걸음임을 깨닫고 유럽으로 떠났다. 프랑스에 도착한 그는 파리 보베(Beauvais)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라틴어 등을 배운 뒤 다시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철학과에 입학해 고대 희랍어, 독일 신화사, 가톨릭 의식 등을 연구했다.

삭발한 머리에 양미간에 우뚝 솟은 백호. 유럽인들은 극동의 한 젊은이가 호기심의 대상이었겠지만 그는 궁핍과 외로움을 딛고 무섭도록 학문에 몰두했다. 1924년 10월, 마침내 그곳에서 ‘불교순전철학’이라는 논문으로 한국인 최초로 독일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다음해 9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1928년 현 동국대 전신인 불교전수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다 돌연 수행의 길에 올랐다. 금강산에서 수행에 매진하고 종단 활동에도 참여했지만 일제의 탄압이 거세져 사정이 여의치 않자 서울 돈암동 자택에서 칩거하며 정진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그는 이승만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건국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50년 2월에는 내무장관에 임명돼 국내치안유지와 내무행정 발전에 진력했으며, 1953년 7월 동국대 총장을 맡아 동국대 중흥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백 박사는 1962년 총장직을 사임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부천 소사동에 현대식 법당을 신축해 ‘백성목장’이라는 현판을 걸고 84세로 입적하는 그날까지 ‘금강경’과 ‘미륵존여래불’ 염송을 근간으로 제자 지도와 중생교화에 진력했다.

이렇듯 독립운동가, 수행자, 사상가, 정치가,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다간 백 박사는 다면불(多面佛)의 위대한 선지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나 연구, 기록은 많지 않다. 대중적으로도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백 박사가 강설한 ‘금강경 강화’, 제자들이 전하는 일화와 법문 일부가 책으로 엮여 있고, 불교학 연구자들이 그의 금강산 수도 시절을 중심으로 논문을 몇 편 발표한 정도에 그친다.
 

백성욱 박사 전집 전6권.
백성욱 박사 전집 전6권.

‘백성욱 박사 전집’은 그동안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백 박사의 글과 어록, 강의를 새롭게 수집·정리해 출판한 것이다. 그의 말이 기록된 릴 테이프를 디지털 전환해 수차례 재청취하고 다듬어 가면서 강의와 법문을 정리했고, 역사 자료와 도서관 문헌 등을 추적·발굴해 오늘의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편집·수록했다.

‘백성욱 박사 전집’은 모두 6권으로 이뤄져 있다. 백 박사의 독창적인 시각과 해석이 단연 돋보이는 ‘금강경’ 해설서인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 불교의 관점에서 인류와 세계 그리고 문화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파헤친 인문학 특강인 ‘불법으로 본 인류문화사 강의’, 여러 자료에 흩어져 있던 백 박사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집약한 법문집인 ‘분별이 반가울 때가 해탈이다’, 백 박사가 직접 쓴 논문·시·에세이·편지·법문 등 글 모음집인 ‘백성욱 박사 문집’, 시인·교육자·학자·정치인·종교인·문화계 인사 등 22명이 백 박사의 진면목을 밝힌 ‘금강산 호랑이’, 백 박사의 지인과 제자들의 회고 및 각종 기록과 언론 자료를 토대로 정리한 백 박사에 대한 최초 본격 전기 ‘응작여시관’ 등 6권으로 구성됐다.

이번 ‘백성욱 박사 전집’ 출판으로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출생과 성장, 청년기의 독립운동, 유럽 유학 시절, 금강산 수도 시절, 동국대 진흥을 비롯한 사회활동, 소사 백성목장 시절 등 다양한 면모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기사·편지·메모·녹음·영상·출판물 등 풍부한 자료 수집과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및 취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내용을 정리했으며, 그동안 잘못 알려진 채 인용되고 있던 내용도 수정·보강했다. 기록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다 정확하게 연보와 생애를 꿰맞추고, 생생한 법문과 학인들의 수행기를 통해 백 박사의 깨달음과 가르침의 방향을 명확하고 풍성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대석학이자 시대의 스승이었던 백성욱 박사. 한 사람의 삶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극적인 변화와 기록들, 비범한 통찰과 다채로운 얘기를 담고 있는 ‘백성욱 박사 전집’은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묻는 현대인들의 지침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03호 / 2021년 10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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